외교론 DIPLOMACY
해롤드 니콜슨 경 지음. 신복룡 옮김. 평민사. 2/1

옛날 책(초판이 1939년에 나왔다)을 읽으면 재미있다. 번역된 것도 1979년이라 ㅎㅎ 지금 같으면 깜놀할 젠더차별적인 표현들이 눈에 띄고 고유명사는 전부 영어식으로 번역해놨는데, 그 또한 재미있다.
문서 보관이 하나의 직업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고문서학(paleography)이 생겼다. 17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이 두 가지의 직업은 고문서나 diploma를 다루는 이른바 문서직(res diplomalica) 이라고 불렸다. 선례와 경험에 기초를 둔 과학으로서의 외교 용어가 최초로 확립된 것이 능력 있는 '두루마리문서 보관책임자'의 지시와 권위에 따라 교황청과 기타의 문서기록소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카롤링 왕조(Carolingjian)의 문서기록소는 chancellor라는 관리의 책임 하에 두었다. 후대의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역사에서 그토록 엄청난 영향을 행사하게 된 이 단어는 로마 시대 법정의 수위를 의미하는 cancellarius라는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카롤링 왕조에 이르러서는 황실 문서기록 책임자인 chancellor의 부서가 없이는 어떠한 왕명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44
디플로마, 외교와 챈슬러. 첨 알았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현대적 의미로서의 외교는 13~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였다. 이탈리아를 조직적•직업적 외교의 어머니로 인정해야 하는 사실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불가피한 사실이었다.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은 무자비한 적대 국가들에 의하여 갈기갈기 찢겨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수한 공통 이익으로 얽혀 있었다. 그들은 끝없이 권력 투쟁에 휘말려 있었으며 제휴와 동맹 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탈리아에서는 13~14세기에 외교관적 정치가(ciplomatist-statesman)가 등장하였다. 피렌체는 그와 같은 대사로서 단테, 페트라르크, 보카치오를 자랑할 수 있으며 후대에는 마키아벨리와 귀치아르디니를 뽐낼 수 있다.
기록에 나타난 최초의 상주 사절은 1455년 밀라노 대공인 스포르차(Francesco Stora)에 의하여 제노아에 설치된 것이다.
-46-47
이탈리아 엄청 싫어함 ㅎㅎ
외교관의 술책이 아니라 진실성을 강조하는 것과 상통하는 맥락.
민주 외교의 근본 원리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릴 수가 있다.
"외교관은 공직자이기 때문에 외무장관에 종속된다. 외무장관은 내각의 일원이기 때문에 의회의 다수당에 종속된다. 의회는 대표 기관이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에 종속된다."
만약에 이 원리가 1918년에 인식되고 받아들여졌다면 많은 혼란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중들은 자신들이 무분별하게 외교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수립하려고 정당하게 노력하면서도 자신들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합법적 주제인 정책과 합법적 주제가 아닌 협상의 본질적인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했다.
-118
이러한 혼란에 의해 초래된 변칙은 윌슨 대통령의 이론과 행동 사이의 괴리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 윌슨은 '공개 외교' 의 예언자였다. 그는 1918년 1월 8일에 공표한 14개 조항'의 1항에서 ‘미래에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평화에 대한 공개적인 규약이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향후에는 어떤 종류의 국제 간 사사로운 이해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년도 못 되어 윌슨 대통령은 베르사이유조약에 관하여 협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조약은 확실히 공개적이었다. 여러 서명국에서 정부의 비준을 얻기 위해 제출되기 전에 그 내용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상의 어떠한 협상도 그처럼 비밀에 싸여 있었던 것도 없었다. 독일과 그의 맹방들은 일부 토론 과정에서 배척당했고, 모든 약소국들은 협상에 대한 몇 가지 단계를 몰랐고, 언론은 가장 빈약한 공식 게시판 이외의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총검으로 무장한 미 해군은 심지어 미국 대통령의 동료를 포함하여 전문가, 외교관, 또는 전권대사가 회담 장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었다.
-119
민주주의 시대에 외교도 점점 더 민주적 통제를 받게 되지만 대중들은 ‘(공개적이고 투명해야 하는) 정책‘과 ’(비공개로 이뤄져야 하는) 협상‘의 차이를 모르며, 신문들이;; 상황을 자주 망친다는 지적이 여러번 나온다. 대체로 동의함 ㅋㅋㅋ
허세는 직업 외교관으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은 외교적 보편성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외무성은 맹목적이고도 완고하여 자기의 충고를 무시한다는 무서운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허세는 또한 자기의 상사인 장관에 대하여 불충하고 매몰스러운 말을 하게 한다. 허세는 부정확, 흥분, 성급, 감정주의, 그리고 심지어는 허위 등의 여러 가지 악습을 초래한다.
개인적 허세가 인간의 취약한 마음을 불행으로 이끌어 가는 것 중에서도 교섭의 관행에 대하여 특수한 연관성을 가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기 만족이다. 자기 만족은 우선 적응성을 상실케하며 다음으로는 공상에 빠지게 만든다.
외교관들, 특히 하급 직위에 임명되었거나 또는 언제나 하급 직위에 머무르고 있는 외교관들은 보통 인간적인 허세가 점차로 자신을 과도하게 중요시하는 경향으로 서서히 변모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언사, 행동, 지각 작용 등이 거의 거만하게 보일 정도로 느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
적응력이 없어지면 상상력도 없어진다. 연로한 외교관이 상상력마저 잃어 버리면 그는 항해하지 않는 배의 용골이나 밸라스트가 되고 만다.
-160-161
외교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듯.
국가별 외교에 대한 평가는 넘 오래전 상황이긴 하지만 표현들이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독일에 대해서는
“독일인이 가지고 있는 굳세고도 탁월한 모든 덕목의 밑바닥에는 신경질적인 불확실성의 심층 심리가 깔려 있다. 이 불확실성은 그들이 날카로운 지리적 • 종족적 • 역사적 개념이라든가 윤곽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요새화된 국경 선'을 엘베로부터 다뉴브로 철수시킴으로써 결국 독일 사람들을 문화인과 미개인으로 나누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피히테로부터 시작하여 헤겔과 챔벌린(S. Chambertain)을 거쳐 히틀러에 이르기까지의 독일의 근대 정치사상은 모두가 다소 신비주의적인 통일을 강조하고 있다.“(188-189쪽)
”독일의 정책은 본질적으로 힘의 정치'(Machipolitk)이다. 외교 정책의 전사적 개념이 가지는 특징적인 현상은 ‘느닷없이 대드는 외교‘(sudden diplomacy)라고…그러나 이와 같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외교 업무와 영사 활동은 매우 유능하고 영예로운 사람들의 보좌를 받아 훌륭하게 수행되고 있다.“ (190-191쪽)
이탈리아에 대한 평가도 재미있다.
“이탈리아 외교 정책의 목표는 자기의 국력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을 협상에 의하여 얻는 데 있다. 따라서 이탈리아의 외교는 물리적인 힘을 근거로 한 외교에 바탕을 두는 대신에 외교에 국력의 기초를 둔다는 점에서 독일의 체계와 대조적이다. 이탈리아의 외교 정책은 영원한 적에 대항하여 영원한 동맹국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동맹국이나 적국이야말로 상호가변적인 것이라고 보는 점에서 프랑스와도 대조를 이룬다.
또 국가가 추구하는 것은 영원한 신뢰가 아니라 목전의 이득이라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외교는 영국의 제도와도 상반된다. 이탈리아의 외교관들은 협상의 기술이라는 면에서 빼어나다. 그들의 통상적 방법은 우선 협상하려고 하는 국가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놓은 다음 '우호 관계'를 제안하는 것이다.“ (196쪽)
보다 강화된 민주적 통제, 경제와 재정의 중요성 증가, 현대 과학의 발명, 그리고 아직은 제한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국제적 이해를 함께하는 공동체에 대한 진보된 개념 등과 같이 전후의 발전에 의해서 외교 관례에 도입된 중요한 개혁에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외교 교섭이 거의 전적으로 원탁회의에 의해서 수행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였다. 이제 각국은 위에서 바라보면서 상황에 정책을 부과하는 대신에 정책에 상황을 부과하는 체제의 시대가 온 것이다. 공통된 위험의 압력을 극복하는 동안 국제 전문가들은 전문적 외교관들이 업무를 처리하면서 체득한 것보다 더 지속적으로 상호 신뢰와 상호 협조의 기준을 체득하게 되었다.
회담식 외교의 장점들은 자명하다. 그것은 정책을 수립하는 데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협상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이 방법에 의하면 막대한 시간이 절약되며 보다 높은 유동성을 취할 수 있다.
-203-205
회담식 외교가 성공하려면 사전에 회합의 기초가 매우 주의 깊게 마련되어야 한다. 회담의 범위와 계획이 모든 참석자들에 의해서 합의되었고 정상적인 외교 계통을 통했다 할지라도 참석자의 견해가 무망할 정도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회담을 주선해서는 안 된다.
-207
정치 선전에 대한 설명은, 반중 혐중이 넘실거리는 지금 한국 상황이나 미국 트럼프의 언행늘 떠올리며 읽게 됨.
히틀러가 확언한 바와 같이, 선전은 지식의 가장 낮은 상태를 겨누지 않으면 안 된다. 선전은 모든 지적 사고를 회피해야 하며, 그 방법은 '열광시키고 경우에 따라서는 병적인 흥분을 유발 하는 것‘이어야 한다.
허위는 굉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전적인 허위는 너무도 엄청나게 거짓된 것을 말함으로써 듣는 사람들이 그럴 수 없으리라고는 도무지 의심도 품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선전의 보다 더 큰 위험은 이 선전을 이용하는 사람이 그 선전에 의해 희생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218-219
외교가 어떻게 선전의 위험을 완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제시하기는 곤란하다. 역선전은 충돌을 가열시킬 뿐이다.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그러한 방법의 독성 그 자체와 허위의 반복이 종국에 가서는 그 스스로의 목적을 좌절시킬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신경질적인 방송자(선전가)에 대한 가장 좋은 해독제는 진실하고 삼가고 또 냉정한 정책을 지향하는 것이다.
에피소드들도 많아서 읽기에 재미있었음.
“최근 런던에 주재하는 어느 강대국의 대사관은 자신의 북구어로 공식적 환영연의 초대장을 발송한 적이 있었다. 중동 지역의 대표자들은 이 초청에 아랍어로 응신하였다. 그러다 보니 손님들이 초청을 수락하는 것인지 안하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데 정작 애를 먹은 것은 초대장을 보낸 그 대사였다.” (282쪽)
맨 뒷부분은 저자의 3판 서문에 설명한 것처럼 1961년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글인 듯.
투표에 의하여 평화가 보장된다는 생각은 허구이다. 소련이나 미국에 의해 지탱될 수 있는 힘에 세 계의 미래가 의존하는 현상을 수락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국제 도의는 눈에 보일 만큼 경계선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국경선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다. 만약 경계선을 침범하는 국가가 있더라도 우리는 최소한 그 경계선을 존중해야 한다. "다른 사람은 그럴지라도 너마저 그래서는 안 된다." (Aliis si licet tibi non lices). 바로 이 점이 우리의 지표가 되어야 하며, 이 지표를 따를 때 우리는 결국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322
'딸기네 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I> (0) | 2026.01.12 |
|---|---|
| 필립 맥마이클 <거대한 역설> (0) | 2026.01.02 |
|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 세계의 시간> (0) | 2025.12.28 |
|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 - 교환의 세계> (2) | 2025.12.19 |
| 찰스 킨들버거, <대공황의 세계> (0) | 202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