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 COP30, ‘회의 그 자체‘가 도마에 오른 기후대응 회의

딸기21 2025. 11. 2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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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렝. 포르투갈어로 베들레헴을 가리킨다. 브라질 북부 파라 주의 주도이자 아마존 강의 관문, 인구 140만 명의 분주한 항구 도시다. 적도 바로 아래, 아마존 지류인 파라 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제30차 당사국 총회(COP30)가 열렸다. 기후협약에 가입한 나라들이 매년 모여서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점검하는 자리다. "향후 10년 동안 기후대응 속도를 높이고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하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6일 개막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21일까지 이어진 이 회의에는 협약에 가입한 200개 가까운 나라 가운데 대부분이 참여했다. 총 193개국과 유럽연합(EU)이 참석했고 북한도 대표단을 보냈다. 한동안 국제 무대에서 떨어져 있었던 시리아도 모습을 비췄다. 불참한 국가는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유럽의 작은 공국 산마리노 정도다. 과거에도 불규칙적으로 참석한 나라들이다.
 

 
그리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공식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1995년 첫 번째 당사국총회 이후 미국 정부가 대표단을 보내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현장에서 존재감이 뚜렷했다. 주·지방정부와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트럼프 정부의 ‘탈퇴 조치’로 모든 논의가 장애물을 만난 것이 두번째 이유다.
 
’미국기후동맹(U.S. Climate Alliance)’이라는 이름으로 기후대응 정책을 추진해온 주지사, 시장 등 100명이 현장에 갔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럼프가 세계 무대를 외면하는 동안, 캘리포니아는 이 자리에 서 있다”고 했다. 경제규모로 보면 세계 상위 10위권 국가들과 어깨를 맞대는 캘리포니아이니 목소리를 키울만 하다. 로드아일랜드주 셸든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 문제에서 미국 국민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후환경 운동가로 더 유명해진 앨 고어 전 부통령도 회의 둘째 날 연설을 했다.
 
백악관 입장은 이런 회의가 아니라 무역협상에서 기후대응을 충분히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ABC뉴스에 “대통령은 각국 지도자들과 에너지 문제를 직접 논의하고 있으며, 그동안 체결된 역사적인 무역·평화 협정들은 에너지 파트너십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후환경 얘기를 싫어하는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에너지 장관 크리스 라이트는 AP 인터뷰에서 COP30을 “본질적으로 사기”라고 표현했다. 반응은 싸늘하다.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의 패트릭 드럽은 “현실은, 미국 정부가 있든 없든 기후대응은 계속된다는 것”이라고 했고 파리 기후협약의 설계자 중 한 명인 코스타리카 외교관 크리스티아나 피구에레스는 미국의 불참이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그들이 직접적인 깡패식 압박(bullying)을 할 수 없으니까.”
 

Governor of California Gavin Newsom attends a press conference during the COP30 UN Climate Change Conference in Belem, Para State, Brazil on Nov. 11, 2025. Mauro Pimentel/AFP

 
지난달 자메이카는 초강력 허리케인 멜리사로 약 100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고 수십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자메이카 경제성장부 장관 매튜 사무다는 “우리는 피해자로만 있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국제사회, 특히 주요 배출국들이 약속을 지켜줄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올해 큰 홍수를 겪은 루마니아의 환경장관은 홍수 피해자의 말을 인용했다. “밤새 지붕 위에 앉아 이웃들을 바라보며, 물이 우리 모두를 삼켜버릴지 고민했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올 초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존재론적 위협이며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태평양 소국 투발루 법무장관은 이 판결이 작은 섬나라들의 지렛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P] Nations hit by natural disasters tell ministers at climate talks to act
 
문제는 말이 아닌 행동이다. “약속만으로는 높아지는 바다를 막을 수 없다”는 인도양 섬나라 세이셸 대표의 말에 현실이 요약돼 있다. 개최국 브라질은 회의 진행에 관한 5쪽짜리 문서를 제출하면서 참가국들에게 “올해는 새 약속을 내놓지 말고 기존 약속을 어떻게 이행할지에 집중하자”고 요청했다. 각국이 기후대응 약속을 얼마나 실천했는지 점검하는 ‘이행 점검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도 내놨다. 세계 기후 외교를 ‘협상 중심’에서 ‘이행 중심’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브라질은 이번 회의를 ‘진실의 정상회의’라고 부르고 있다. 실제로 과거 회의에서 나온 주된 약속과 이행 상황을 보면 못한 것, 안한 것이 많다. 제일 큰 약속은 화석연료에서 단계적으로 졸업하자는 것이었다. 2023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COP28)에서 채택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은 의미가 컸다. 세계 모든 나라가 처음으로 석유·가스·석탄 사용을 줄이는 데에 동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 2년 동안 세계 화석연료 사용은 오히려 늘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유·가스 수요가 앞으로 수십 년간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2030년이면 석유 수요가 정점에 달할 것이라는 이전 전망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Activists participate in a demonstration to protect the Amazon rainforest during the COP30 U.N. Climate Summit, Nov. 14, 2025, in Belem, Brazil. Andre Penner/AP

 
그 이유 중 하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다. 미국은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을 포기하고 ‘화석연료 르네상스’를 추구하는 중이다. 개도국들 중에도 기후대응을 꺼리는 나라들이 적지않다. 브라질의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화석연료 감축 ‘로드맵’을 제안했고 콜롬비아, 독일, 케냐, 영국 등이 지지했다. 그러나 공식 의제로는 채택되지 않았다. 두번째 목표는 2023년 회의에서 제안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3배로, 에너지 효율을 2배로’ 높인다는 것이다.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부문에선 세계가 목표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다. 주로 중국의 태양광 활용이 폭증한 덕분이지만. 반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먼 과제로 남아 있다. 
 
세번째 이슈는 기후금융이다. 2022년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기금’부터 보자. 기후재난 피해국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3년이 지나도록 8억 달러도 채 안되는 돈만 모였다. 첫해에 약속된 기금에서 거의 늘어난 게 없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기금 2억5000만달러가 재난 피해국에 처음으로 배분될 예정이라고 발표됐지만, 모금을 독려하기 위한 발표에 가까웠다.
 
이 기금 말고도 적응기금(Adaptation Fund)이라는 주요한 재원이 있다. 기후대응은 크게 탄소배출을 줄이는 ‘완화’와 재난 피해를 줄이는 ‘적응’으로 구분되는데, 이 기금은 이름 그대로 후자를 위한 것이다. 2001년 만들어졌고 2009년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주로 기후변화에 취약한 나라들의 적응력을 높이는데 쓰인다. 17일 고위급 회의에서 스페인 등 유럽 6개국이 총 5850만 달러를 내겠다고 했다. 지금껏 제일 많이 기여해온 독일도 이튿날 힘을 보태, 예년처럼 올해도 6000만 유로를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연간 예산은 적은 수준이지만 당장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라 효과가 크다고 기후환경단체 어스 등은 평가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부금이 줄어드는 추세다. 2021년만 해도 3억5600만 달러가 모였는데 올해엔 1억2000만 달러 수준이니 말이다. 
 

People gather among debris near a bridge in Black River, Jamaica, Oct. 30, 2025, in the aftermath of Hurricane Melissa. (AP Photo/Matias Delacroix, File)

 
이런 기금 외에도 부자 나라들은 개도국들을 위해 매년 자체적으로 기후대응 예산을 책정한다. 2009년부국들은 “2025년까지 매년 1000억 달러를 개도국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 회의에서는 2035년까지 이를 3000억 달러로 끌어올리기로 다시 약속했다. 하지만 EU 협상대표 제이크 웍스먼은 “미국이 사실상 개발원조를 중단한 상황에서 EU를 비롯해 어떤 나라도 그 공백을 메우기는 힘들다”고 실토했다.
 
네번째는 메탄 문제다. 2021년 회의에서 미국 조 바이든 정부와 EU가 주도해 2030년까지 메탄 배출을 30% 줄이기로 약속했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 즉 지구를 덥히는 효과를 더 많이 내지만 대기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게 문제라고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적한다. 메탄 줄이자는 협약에 150개 넘는 국가가 서명을 했지만 실제로 감축 계획을 구체화한 국가는 거의 없다. 그나마 EU가 배출량 측정, 보고, 검증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미국이 이를 완화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과거 세계는 ‘몬트리얼 의정서’를 만들어서 지구 상공 오존층의 파괴를 막았다. 그처럼 메탄 감축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일부에선 말한다.
 

Attendees sit under a globe in a lobby at the side events pavilions at the COP30 U.N. Climate Summit, Tuesday, Nov. 11, 2025, in Belem, Brazil. (AP Photo/Fernando Llano)

 
여러 논의가 있지만 이번 회의의 특징은 ‘회의 그 자체’가 도마에 올랐다는 점이다. 지금의 기후협상 구조는 목표를 정하고 이행을 점검하는 데에 맞춰져 있다. 정작 실제로 이행하도록, 조치를 밀어붙이는 데에는 한계가 많다. 부국과 개도국 외교관들과 전문가들을 인터뷰한 로이터통신은 “기후대응 체제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기후협약 사무국은 15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만들어 COP 개혁안을 마련 중이다. 유엔 내부 태스크포스는 본부와 별도로 운영되는 기후협약 사무국을 다른 부서에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속만 많고 실천이 잘 안 되는 데에는 모든 회원국 만장일치가 필요한 회의 의사결정 구조 탓도 크다. 예를 들어 2021년에는 석탄 사용 ‘단계적 폐지(phase out)’에 의견이 모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인도가 반대해 ‘단계적 감축(phase down)’으로 약화됐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만장일치 제도를 다수결로 바꾸려면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하다. 
 

Global March of Indigenous Peoples - The Answer is Us, a side event at COP30. [UN News]

 
논의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한쪽에서는 한 때 원주민 시위대가 행사장을 점거했다. 2년 전 두바이, 지난해 아제르바이잔 바쿠, 그리고 이번 벨렝까지, 최근 COP 개최국들은 모두 에너지 대국들이다. 미국 언론들은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에너지 전환을 강조했지만 캘리포니아 에너지 기업들은 벨렝 앞바다 해상 석유채굴로 원주민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석유뿐 아니라 농축산업도 문제다. 아마존 숲을 망치는 최대 요인은 소 사육이고, 그 다음은 사료용 콩 생산이다. 세계 최대 육류회사 JBS를 중심으로 한 브라질 농축산연합회는 원주민이 산업형 농장 주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을 밀어주고, 숲을 파괴하고 대두를 심는 것을 막기 위한 ‘아마존 콩 모라토리움’을 뒤집으려 해서 비난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번 회의에는 300명 넘는 애그리비즈니스(거대 농축산업) 로비스트들이 참석했다. 육류와 유제품 산업 쪽에서만 72명을 보냈다. 자메이카 대표단의 두 배다. 심지어 업계 참석자의 4분의1인 77명은 개별 국가의 공식 대표단에 이름을 올렸다. “로비스트 300명 이상이 회의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자리는 숲 사람들의 몫이어야 한다.” 디스모그 등 환경사이트에 소개된 브라질 원주민 활동가 반드리아 보라리의 말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도 숲 사람들, 섬 사람들의 자리는 좁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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