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둥의 정신은 살아 있다.”
70년 전 인도네시아 자바 서부의 반둥에 세계사의 주역들이 모였다. 1955년 4월 18~24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반둥 회의’로 알려진 역사적인 행사였다.
인도네시아, 버마(미얀마), 인도, 실론(스리랑카), 파키스탄이 공동주최하고 인도 외교장관 루슬란 압둘가니가 회의를 이끌었다. 목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협력을 강화하고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29개국 대표들은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 양 진영 어느쪽에도 들어가지 않고 식민주의, 제국주의를 거부하며 독자적인 노선을 걷겠다며 10개항의 ‘반둥 선언’을 채택했다. 참여국들 인구를 합치면 총 15억 명으로 당시 세계인구의 절반이 넘었다. 당시 참석자들의 사진을 보면 면면이 쟁쟁하다.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총리, 이집트의 가말 압둘 나세르 대통령, 아프리카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가나 초대 대통령 콰메 은크루마, 소련에 맞서 독자노선을 걸었던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요시프 티토… 이후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신생 독립국들이 속속 합류하면서 1957년 이집트 카이로 아시아-아프리카 연대회의를 거쳐 1961년 비동맹운동(NAM)의 공식 출범으로 이어졌다.


2015년 60주년 기념회의의 주인공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었다. 시 주석은 반둥에서 다시 열린 회의에 참석해 개도국들의 맹주 역할을 자임했다. 올해는 인도가 ‘반둥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다. 인도 중부 텔랑가나 주의 주도이고 정보기술(IT)산업 중심지인 하이더라바드에서 이달 24~26일 ‘반둥의 유산을 기념하기 위한 바라트 정상회의’를 열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인도 측은 450명 이상의 글로벌 대표단, 라훌 간디 등 인도의 주요 정치인이 참여하는 “글로벌 대화와 정의의 허브”가 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정작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비동맹 노선을 이끈 네루와는 결이 다른 힌두 민족주의 성장주의자다. 그래서 정상회의에도 모디 총리 대신에 야당 대표이자 하원의장인 네루의 후손 라훌 간디가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바라트(Bharat)’는 인도인들이 자기네 나라를 부르는 힌두식 이름인데, 반둥 회의의 유산을 바라트 회의가 얼마나 보여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일으키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진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반둥 정신을 다시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지난 12일 시작해 16일 폐막한 국제의회연맹(IPU) 총회에는 ‘반둥 정신 70주년 기념, 반둥 원칙을 지키기 위한 의회의 역할’이라는 세션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하나피 알게발리 이집트 하원의장은 “반둥 회의의 핵심 원칙에 따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추방당하지 않게 하면서 가자지구를 재건하자”고 촉구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이른바 ‘가자지구 리비에라(해안 휴양지) 플랜’에 반대하며 이집트가 제안한 가자지구 재건방안을 지지해달라는 호소였다.
같은 회의에서 파키스탄의 유수프 라자 길라니 상원의장은 정치적 자결권, 불간섭, 국가 주권, 평화 공존이라는 반둥 원칙을 재차 강조하면서 글로벌 이슈 대응의 원칙으로 삼자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 지정학적 긴장, 기후 위기 같은 글로벌 도전에 함께 대응하기 위해 비동맹운동 국가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했고, 팔레스타인에서 계속되는 폭력을 ‘이슬람에 대한 전쟁’이라 부르며 비난했다. 70년 전 반둥회의 때에도 참석자들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난민 신세가 돼 쫓겨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옹호하며 강대국들을 규탄했는데, 그런 상황이 지금껏 달라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가자지구는 더욱 처참한 처지가 됐다는 것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이란 대표 하미드 레자 하지 바베이 국회 부의장은 “일방주의에 맞서 단결하고 정의, 평화, 다자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자”고 촉구했다. 방점은 ‘반미’에 찍혔다. 그는 “지금처럼 복잡하고 격동적인 세계에서 글로벌 의사결정 기관의 실패 때문에 공백이 생겼다”며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에 휘둘리는 유엔을 겨냥한 뒤, “40년 넘게 이란은 미국의 일방주의와 불법 제재에 저항해왔다”고 했다. “이 저항은 단지 우리 국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립과 정의, 존엄성을 위한 세계적인 투쟁”이라면서 비동맹운동이 새로운 국제질서의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국제법을 어기고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 동조하는 것이 반둥 정신에 모순된다는 인식은 보이지 않았다.

비동맹운동 회원국 의원들은 IPU 회의에서 저마다 목소리를 높인 뒤 반둥 원칙을 다시 확인한 타슈켄트 선언을 채택했다. 그러나 반둥 70년을 가장 강조하는 나라는 중국인 듯 싶다. 차이나데일리에는 16일 “반둥은 계속해서 길을 보여주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신문은 반둥회의에 당시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중화인민공화국이 초청을 받았던 사실을 강조하면서 “수십년 동안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나 상하이협력기구를 통해 평등하고 포용적, 협력적인 안보 개념이 유지돼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국가를 국제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는 중국의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를 부각시켰다. 관영언론 글로벌타임스는 “7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반둥 정신을 소중히 해야 한다”면서 국제협력의 토대를 재건하기 위해 평등, 상호이익, 집단적 협의 같은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고 썼다.
이렇게 반둥 정신을 외치는 중국에 인도네시아도 동의할까? 한때의 동료들은 이제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싸우는 처지가 됐고, 70년 전의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은 글로벌 양강(G2)으로 성장한 뒤 이제는 강압적으로 이웃들을 찍어누르고 있다. 10년 전과 달리 올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반둥 70주년 회의는 형식적인 행사일 뿐 홍보도 없고 거창한 기념식도 없다. 작년에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비동맹의 주역 수카르노 전 대통령을 몰아낸 군부쿠데타 세력의 후계자라는 점, 인도네시아가 이제는 유럽 식민제국 대신에 중국을 경계하며 미국과 친해지려 눈치를 살피는 입장이 됐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 반둥 정신, 혹은 ‘비동맹’은 현재진행형 고민이다. 인도네시아는 건국 이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비동맹 노선과 쿠데타로 집권한 수하르토 독재정권의 친미 정책 사이를 오갔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1990년대말 이후 민주화 이행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비동맹이라는 노선을 공식 포기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올초에는 브릭스(BRICS)에 가입하면서 강대국 추종이 아닌 ‘글로벌 사우스(개도국 진영)의 일원’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브릭스와 비동맹의 주도 세력인 중국과의 관계는 골칫거리다. 경제적으로는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지만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에 시달리는 처지다. 그래서 미국을 끌어들여 종종 군사훈련을 하고, 한국 무기도 사들인다. 얼마 전 프라보워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비동맹 노선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하마드 아누그라 우타마 같은 학자는 인도네시아가 비동맹을 내세우면서 실상은 ‘다동맹(multi-aligned)’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갈색의 세계사(The Karma of Brown Folk)>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 저술가 비제이 프라샤드는 인도네시아가 반둥 70주년이 되는 해에 브릭스에 가입했지만 주요 수출품인 니켈 채굴권을 장악한 중국 자본의 압력과 환경파괴 위험 속에서 다시 반둥 정신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행보는 현재로선 지그재그를 그리고 있다. 올초 인도네시아는 국군법을 고쳐 군의 역할을 늘렸다. 군 출신 대통령 프라보워가 집권하고 두 달 만에 일어난 일이다. 개정된 법은 사이버위협과 테러 등 ‘진화하는 안보 문제’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군이 민간 영역까지 손 대게 했다. 국가정보국, 사이버암호국, 마약국, 심지어 대법원과 법무장관실에도 군 장교들이 배치될 수 있게 했다. 시민단체들과 학자들은 “정작 필요한 해양 안보는 도외시하고 국내 통제만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70년 전 반둥에서 시작된 비동맹 시대와 지금의 세계는 이처럼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나라마다 걸어온 경로는 비슷하기도 하고, 제각각이기도 하다. 한국은 어떨까. 사실 한국에선 비동맹이라는 흐름을 많이 가르치지 않았다. 한국은 냉전의 양축을 거부한 나라들에 끼기는커녕 철저하게 냉전의 한 축을 선택한 나라였다. 친미국가 하면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일본과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도 반둥회의 29개국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많다. 2005년 반둥회의 50주년을 기념해 자카르타와 반둥에서 열린 정상회의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를 비롯해 90개 가까운 나라 정상들이 참석했지만 그 회의도 한국에서는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옆에 있는 말레이시아 역시 반둥 멤버는 아니었다. 1957년 말레이연방이 설립됐고 1963년 독립국이 됐으니 공식 참가국이 아니었던 것은 당연하지만 세계 120개국이 참여한 1960~70년대의 비동맹운동과도 이 나라는 거리를 뒀고 냉전이 다 끝난 뒤에야 끼어들어갔다. 현지언론 말레이메일에 최근 이런 글이 실렸다. “70년 전 반둥 회의가 열렸을 때 말레이시아는 사실 국가도 아니었다. 하지만 반둥의 반식민지 정신은 말라야(말레이)의 독립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식민주의에서 진정으로 벗어났을까? 1950년대에는 유럽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수탈했고 이제는 미국이 관세를 무기 삼아 타국을 억압한다. 2025년과 1955년이 비슷한 것처럼, 반둥의 해법이 우리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70년전 비동맹의 주역이었던 중국은 지금 미국과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혹자는 ‘신냉전’을 말한다. 한국은 그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할 것이냐를 놓고 논쟁 중이다. 지금 한국이야말로 반둥 정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게 아닐까.
* <주간경향>에 실린 글입니다.
'딸기가 보는 세상 > 수상한 GP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정은의 ‘수상한 GPS’] 중국-인도, 미국-멕시코… 불 붙는 ‘물 분쟁’? (2) | 2025.04.17 |
---|---|
[구정은의 '수상한 GPS'] 트럼프 시대를 견뎌내는 세계 사람들 (0) | 2025.04.06 |
[구정은의 ‘수상한 GPS’] 트럼프의 ‘납치 특사’와 가자지구 ‘리비에라 플랜’ (1) | 2025.03.22 |
[구정은의 '수상한 GPS'] AfD와 세계의 '극우 바람(?)' (0) | 2025.03.03 |
[구정은의 ‘수상한 GPS‘] 태국, 동성결혼 합법화…정치적 민주화와 ‘관용‘ (0) | 2025.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