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로버트 케이건, <밀림의 귀환>

딸기21 2025. 4. 1. 12:53
728x90

밀림의 귀환
로버트 케이건. 홍지수 옮김. 김앤김북스. 4/1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게 아니며, 아끼고 가꿔야 하는 정원 같은 것, 가장 애써야 하는 것은 결국 미국인데 미국이 가꾸길 포기하려 하니 밀림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는 것. ‘지정학의 귀환’을 얘기하는 요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자유주의 체제를 살리자고 말하지만 아이켄베리 같은 이들과 비교하면 극히 현실주의적이다.


전후 세계질서를 설계한 이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현실주의자였지만, 그들이 보편적이고 부인할 수 없다고 믿었던 자유주의와 그 이념이 표방하는 이상과 원칙에 봉사하는 현실주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미국 건국의 아버 지들과 비슷했다.
그들은 당대의 그리고 현재의 이상주의적 국제주의자들이 지닌 낙관론, 즉 자유로운 상거래와 민주정체만으로, 혹은 전쟁을 불법화하는 조약과 법으로, 혹은 유엔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과 국가의 행동을 변모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공감하지 않았다. 그들은 평화, 번영, 진보는 힘의 행사에, 구체적으로 미국의 힘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1930년대의 현실주의자와 현시대의 현실주의자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진보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55-56

(냉전이 끝난 후) 러시아를 위한 마셜플랜은 없었다. 곧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배신(stab-in-the-back) 스토리와 같은 러시아판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미국과 서구 진영은 러시아의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 러시아의 야망과 자부심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러시아 장군들과 전략가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대는 이 동맹기구의 전체적인 군사역량을 중진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공식석상에서는 솔직히 시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대는 러시아의 안보보다는 러시아가 역내의 이익 권역을 재주장할 역량과 동유럽과 중부 유럽에서 지배적인 국가로서의 지위와 세계무대에서 미국에 맞먹는 국가로서의 입지를 되찾을 역량을 훨씬 더 위협했다.
-145

2009년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노력은 실패했다. 러시아의 진정한 속내와 동기를 오판한 게 가장 큰 이유다. 불안감과 긴장의 해소는 푸틴이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었다. 그는 양측에서 긴장과 불안이 고조되기를 바랐다. 러시아가 직면한 문제는 푸틴과 많은 러시아인들이 추구하는 위대함이 안전하고 안정된 세계에서는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세계질서에서 러시아는 안전을 유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초강대국이 될 기회는 없다. 세계무대에서 위대함을 성취하려면 러시아는 러시아도 그 어떤 나라도 안보를 누리지 못하는 과거로 세계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
-146-147

그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대에 반대한 진짜 이유는 이 동맹기구의 군사력이 동쪽으로 진출할까봐 우려했다기보다 민주정체 국가들이 러시아의 국경에 훨씬 근접하게 되기 때문이였다. 전략적이라기보다 심리적이고, 외부에서 비롯된 원인이라기보다 내재적 원인인 이러한 복잡다단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려면 미국과 서구 진영이 어떤 양보를 해야 하는지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미국이 러시아 역내에서 러시아의 이익 권역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러시아의 역사적인 이익 권역은 우크라이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러시아의 이익 권역은 발 트해 국가들과 폴란드까지 아우른다.
-148

오바마가 시인했듯이, "(시리아에) 개입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장기간 전쟁을 치른 미국으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시리아 위기가 야기한 유럽의 난민 위기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심장부에서 민주적 제도들을 뒤흔들었다. 오바마와 그의 보좌진은 유럽이 알아서 위기를 해결할 수 있고, 그리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에게는 합리적인 주장처럼 들렸을지 모르지만 이는 "중대한 변화"였다. 미국은 1945년 이후에도, 냉전시대 동안에도, 심지어 냉전이 종식된 후에도 유럽의 문제를 유럽이 해결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미국이 유럽에 대한 관심을 줄여도 된다고 주장하면, 유럽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국이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수호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난다. 오바마는 "아시아로의 선회 (pivot to Asia)"를 주장했지만, 이 정책을 집행할 자원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아시아 동맹국들을 안심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170-171

자유주의 자체가 미국 내에서 공격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주의 세계질서를 뒷받침하기는 어렵다. 좌우 진영을 막론하고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자체에 대한 불만이다. 외교정책에 대한 논쟁은 흔히 국가의 의미와 정체성에 대한 논쟁의 대리전 양상을 띤다.
-178


728x90

'딸기네 책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성황, <중국필패>  (0) 2025.03.28
Karns 외, <국제기구의 이해>  (1) 2025.03.21
칼 슈미트, <땅과 바다>  (0) 2025.03.18
김성건, <글로벌 사회와 종교>  (1) 2025.03.18
해퍼드 존 매킨더, <심장지대>  (0) 2025.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