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브레니차에 갈까 말까 망설였다. 당일치기 투어에 1인당 10여만원.
하지만 이번에 안 가면 언제 그곳을 가게 될까 싶어서 용기를 냈다.
돈이 비싸서가 아니라, 마음이 힘들 것이 뻔해서 용기가 좀 필요했다.
동행이 오애리 선배였기에 둘이 같이 마음을 다잡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사를 써왔던가.
스레브레니차 추모관은 '유엔의 실패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관'이다.
영상 자료를 보는데... 역시나 힘들었다.
유엔의 실패는 교전 권한이 없었다거나 경험이 부족했다는 따위로 변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시 네덜란드 평화유지군 사령관은 유엔 기지로 피신해온 무슬림 남성들을 학살자들에게 내줬다.
학살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그뿐 아니라, 사령관이 세르비아계 학살자 우두머리로부터 선물을 받으며 히히덕거리는 장면까지 영상으로 남아 있다.
[구정은의 '현실지구'] 보스니아와 우크라이나, 학살과 사과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사과를 했다.
가이드님은 1976년생. 사라예보 봉쇄를 그 역시 겪었다.
보스니아 사람들은 아주 무뚝뚝하고, 그러면서도 정직하고 정확하고,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이야기에 자신의 스토리는 없다. 그저 객관적으로 전달할 뿐.
유엔이 방침을 바꿔서 무력개입을 하기로 하자 학살자들은 파묻은 시체를 다시 끄집어내 두 번이나 옮겨 묻었다.
뒤죽박죽이 된 유해를 발굴하고 유전자 감식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래서 지금도 스레브레니차의 묘비들은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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