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서 9월 18일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헤즈볼라 이동식 통신장비를 해킹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테러공격으로 의심된다고 한다. 레바논, 우리에게 아직은 낯설면서도 뉴스에 늘 등장해 이름만큼은 귀에 익은 나라다. 어떤 역사가 있기에,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왜 그렇게 복잡해졌을까.
먼저 위치를 알아야 레바논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시리아, 남쪽으로는 이스라엘,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한 나라다.
인구는 530만 명. 면적은 10,452제곱킬로미터이니 꽤나 작은 편이다. 수도인 베이루트가 최대 도시다.
지중해 문명권의 일부였고, 역사가 아주 길다. 7000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멀리 동쪽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부터 지중해로 이어지는 비옥한 초승달의 서쪽 끝부분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레바논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세계사 시간에 나오는 온갖 단어들을 만나게 된다. 기원전 3200년부터 기원전 6세기 정도까지 지중해 일대에 걸쳐 활동한 해양 제국 페니키아의 일부였다. 쐐기문자와 상선으로 유명한 그 페니키아다. 기원전 64년 레바논 일대는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됐다. 하지만 로마 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갈라졌고, '소아시아'라고 불렸던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 지역은 동로마 즉 비잔틴 제국 아래에서 동방 기독교(정교)의 주요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7세기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이 시작됐다. 그후 레바논을 비롯한 '근동' 지역(중동의 서쪽 끝을 부르는 이름은 많기도 하다;;)은 우마이야, 압바스 등 여러 이슬람 칼리프 국가의 통치를 받게 됐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곡절 많은 이 땅은 11세기에 유럽 가톨릭 세력이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뒤 여러가지로 유린당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랍 이슬람 세력과 싸우겠다던 십자군은 실상 비잔틴 뜯어먹기에 급급했고 레바논에도 한때 십자군 국가가 설립됐다. 십자군 시대가 끝난 뒤에는 아유브 왕조와 맘루크 왕조, 그리고 마침내는 유라시아 거대한 지역을 거느렸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여러 문명이 이 땅에서 명멸했다. 그래서 여러 종교가 자리를 잡았는데 그 양상이 다른 나라들과는 좀 다르다. 현재 레바논의 인구 구성을 보면 민족적으로는 아랍계가 95%, 아르메니아계가 4%, 그 외의 민족이 1%를 차지한다. 종교로는 무슬림이 68%에 이르지만 그 구성이 다른 아랍국들과 차이가 난다. 이슬람의 메인스트림인 순니가 32%, 세계 무슬림 전체로 봤을 때에는 소수인 시아가 31%다. 거기에 이슬람 내의 소수 종파인 알라위파와 이스마일파가 있다. 알라위파는 시리아 독재정권의 기반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종파이고 이스마일파도 비슷한 소수파다.
레바논 인구의 나머지 32%는 대부분 기독교도인데 이쪽 구성도 역시나 다른 나라들과는 사뭇 다르다. 가톨릭 일파이고 사실상 레바논에만 있는 마론파 기독교(미국에도 레바논계 중에 일부 있기는 하다)와 로마가톨릭 비중이 높다. 역시 사실상 레바논에만 존재하는 드루즈 교도들이 좀 있고, 소수의 유대인과 바하이파(19세기에 이란 등 중동에서 시작된 평화주의 종교)도 있다. 이주민들이 있다 보니 불교도도 있고 힌두교도도 있고... 참 복잡한 나라가 레바논이다.
여러 문명이 거쳐갔다는 것은 역사가 깊고 다채롭고 풍요롭다는 뜻이다. 베이루트는 한때 ‘중동의 파리’라고도 불렸다. 유럽 영향 속에 번영했던 까닭도 있고, 20세기에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세기부터의 중동의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너덜너덜 찢겨져 나간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레바논 지역은 프랑스가 '관리'를 했다. 식민지와는 형식이 좀 다른 '위임통치령'이긴 했지만 프랑스가 쥐락펴락했던 것은 사실이다.
1943년 독립한 후 레바논에는 종교 분포에 따라 정치 권력이 배분되는 체제가 들어섰다. 콘페셔널리즘(confessionalism), ‘고백주의’ 혹은 '신조주의'라고도 번역하는데 우리에겐 매우 낯선 개념이다. 한마디로 신도 집단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의석이나 정치권력을 배분해주는 것이다. 분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바람직한 민주주의 방식이라고 보기엔 좀 어색하다.
독립 후 짧은 기간 동안 번영을 누렸는데 1975년 내전이 일어났다. 1990년까지 이어진 15년 내전으로 전국이 황폐해졌다. 종교적으로 갈라져 있었던 탓도 있지만 외국 세력들이 끼어들어 레바논을 갈갈이 찢었다. 레바논은 작은 상업 국가지만 옆에 있는 시리아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인 하페즈 시절부터 '강성 국가'였다. 내전이 시작된 이듬해인 1976년 시리아 군이 들어와서 2005년까지 주인 노릇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전신 격이고 반이스라엘 투쟁을 주도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레바논으로 대거 들어온다. 요르단에 거점을 두고 있었는데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요르단 왕실에서 쫓겨나 레바논으로 오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제거한다며 레바논 내전에 끼어들었고 기독교 무장세력들을 지원했다. 레바논 남부의 일부 지역은 1985~2000년 사이에 이스라엘에 두 차례 점령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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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내전 중에 벌어진 참극 중에 세계에 많이 알려진 것이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1982년 벌어진 학살이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내부의 기독교 민병대를 무장시켜서 저지른 일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던 아리엘 샤론이 이 사건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면서 군복을 벗었다.
그후 샤론은 주택건설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땅에 이른바 '유대인 정착촌'들을 지었다. 유대인 인구를 늘리려고 외국 사는 유대계를 대거 받아들여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땅을 빼앗아 짓는 마을들 말이다. 그리고 샤론은 2000년에는 이스라엘이 무단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인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를 방문해 의도적으로 팔레스타인 봉기를 유도했고, 정해진 수순처럼 이스라엘군의 유혈 진압이 반복됐다. 그 덕에 강경파들을 결집한 샤론은 총리가 됐다. (부질없는 이야기이지만 정착촌 건설을 주도한 샤론은 이 때 총리가 된 뒤 정착촌 문제를 나름 '결자해지'하려던 생각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너무나 뚱뚱했던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버렸고, 이-팔 문제를 조금이라도 풀 수 있었을지 모를 실마리는 안타깝게도 사라져버렸다) 아무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역사는 여기저기서 섞이고 꼬여 있어, 따로 떼어놓고 보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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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조직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실제론 이스라엘에 의한 가자지구 대학살이지만) 이 과정에서 '레바논'과 '헤즈볼라'가 뉴스에 툭툭 튀어나온다. 앞서 언급한 폭발물 공격도 있고,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드론 공격과 공습도 벌어지고... '헤즈볼라(Hezbollah)'는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 정당이자 무장 단체다. 내전 중이던 1982년 시아파 성직자들 주도로 결성됐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를 점령한 것에 저항해 시아파들이 합쳐져 만든 조직이었다. 이름은 히즈브 알라, ‘신의 정당’이라는 뜻이다.
헤즈볼라가 결성되기 3년 전인 1979년 이란에서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다.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기도 하다. 헤즈볼라를 만든 시아파들은 호메이니가 제시한 이슬람 모델에 이끌렸고, 헤즈볼라라는 이름도 호메이니가 골라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헤즈볼라 출범 때부터 이란 혁명수비대 교관들이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헤즈볼라는 1985년부터 레바논 정부군과 이스라엘군에 맞서 무력 투쟁을 했다. 하지만 1990년부터는 정치 집단으로 변신하는 듯했다. 2004년 레바논에서 ‘백향목 혁명’이라 불리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고 그 여파로 레바논을 점령했던 시리아군이 철수했다. 이 때 새 정부가 구성됐는데 여러 집단들로 이뤄진 일종의 연합 정부였다. 거기에 헤즈볼라도 참여했다.
그러나 정당처럼 변신해가고 있었다 해도 이스라엘에 맞선 싸움은 계속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한 뒤에도 무장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지금은 헤즈볼라 군대가 레바논 정규군 부대보다 강하다고들 한다. 각 종교-종파 집단이 권력을 분점한 중앙정부 권력은 취약한 반면에 남부 일대를 장악한 헤즈볼라는 사실상 정부로 기능하면서 강력한 위상을 유지해왔다. 지금 헤즈볼라는 레바논이라는 국가 안의 국가가 됐다. 하지만 이들을 보는 시각은 '진영'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 국가들은 헤즈볼라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는 반면에 아랍연맹 대부분 국가들과 러시아는 정당하게 존재하는 정치세력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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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이 직접 전쟁을 치른 적도 있다. 2006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대대적으로 공격, 전쟁을 벌였다. 34일 동안 국경지대에서 교전을 해 레바논인 1200명 가량이 사망했고 이스라엘인은 군인 포함 165명이 죽었다.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정치적 패자는 이스라엘이었다. 미국이 대주는 첨단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의 막강한 화력과 맞서 싸움으로써 헤즈볼라는 아랍세계의 환호를 받았다. 1992년부터 헤즈볼라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봄 뒤 시리아에서 내전이 벌어졌을 때 헤즈볼라는 시리아 군사독재정권 편에 섰고, 신뢰가 훼손됐다. 이유는 단순하다. 시리아가 그동안 헤즈볼라를 지지해왔기 때문이었다. 아랍 민중들의 영웅이었던 헤즈볼라와 아랍 최악 독재정권의 결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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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는 2010년대 이후 이란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미국의 거센 압박을 받아왔다. 헤즈볼라는 전투기를 비롯해 무장조직 수준 이상의 군사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돈은 주로 어디에서 올까. 레바논 내의 지지자들, 그리고 외국에 나가 있는 레바논 출신 지지자들에게서 온다고들 한다. 서방(=미국+이스라엘)은 서아프리카 다이아몬드 거래에 관여하는 레바논계와 남미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접경지대에서 마약 밀매조직과 관련을 맺고 있는 레바논계도 헤즈볼라에 불법 자금을 전달해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헤즈볼라 지도자 나스랄라는 남미 마약 거래와 헤즈볼라의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말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또 헤즈볼라의 중요한 돈줄이 이란이라고 주장한다. 2018년 미국은 이란이 연간 7억달러를 헤즈볼라에 지원했다고 추정했다. 재정뿐 아니라 군사훈련, 무기 등도 이란이 지원해주고 있으며 헤즈볼라는 다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를 지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번에 하마스를 집중 공격해서 군사력의 상당부분을 제거했고, 이제 주된 타깃을 헤즈볼라로 바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남쪽에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싸울 때마다, 지리적 배경은 레바논이라는 국가임에도 레바논 정부의 존재는 사라지고 헤즈볼라가 레바논을 대표하는 정치적 주체처럼 표현된다. 어찌 보면 국제정치 맥락에서는 그것이 더 현실적인 묘사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레바논 정치는 혼란의 연속이니 말이다.
2019년 10월부터 레바논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휘발유, 담배, 왓츠앱 같은 온라인 통신에 세금을 매긴다는 정부 발표 때문에 시위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내 종파별 통치로 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에 대한 총체적 반발, 경제 침체와 행정서비스 실패 등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는 쪽으로 향해갔다. 2020년 8월 4일에는 베이루트 항구에서 폭발이 일어나 곡물 창고가 날아가고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정치적 공격이 아닌 폭발 사고였지만 정부의 무능이 그대로 드러났고 식량 불안이 커지면서 반정부 시위가 더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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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는 전력난이 심각한 상태로 치달았다. 2022년에는 현지 통화인 파운드 가치가 폭락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좁은 회랑>에서 여러 국가들을 비교분석하면서 '최소한의 권력을 갖는 정치체제를 선택함으로써 행정에서 실패한 나라'로 레바논을 꼽았다. 그들 아니더라도, 이대로라면 ‘실패한 국가’가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는 정부가 거의 부재 상태나 마찬가지이고 무법천지인, 국가가 기본 인프라도 제공하지 못하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소말리아 같은 나라들을 가리켜 많이 쓰는 표현이다. 내전 중인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가 없는 것도 아닌 레바논을 '실패한 국가'라 하면 레바논 사람들은 매우 억울하겠지만, 식량불안이 반복되고 전력이니 폐기물 처리니 하는 기본 행정서비스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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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레바논은 아주 가난한 나라는 아니다. 2022년 1인당 실질 GDP가 1만2000달러였다. 하지만 현재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2018년부터 2023년 사이에 경제규모는 40% 줄었고 통화 가치는 무려 95% 하락했다. 유엔에 따르면 레바논 주민 4명 중 3명이 빈곤선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스만 시절과 프랑스 위임통치 기간을 거쳐 1960년대까지 레바논은 꽤 괜찮게 사는 나라였다. 페니키아 상인들의 후예답게 상업적으로 번영했고 이미 18~19세기부터 세계로 진출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업하는 갑부 중에도 레바논계가 적지 않다. (유명한 레바니즈들을 꼽자 보면 르노닛산 회장이던 카를로스 곤(레바논+브라질계), <블랙스완>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나심 탈레브, 시인 칼릴 지브란 등이 떠오른다.) 아프리카나 중남미에도 식당이나 상점들 중에 레바논계가 운영하는 것들이 많다.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에는 이미 그 시절부터 아마존에 나가 있던 레바논계 이야기도 나온다)
원래부터 중동의 금융, 상업 중심지였고 외국 나가 있는 사람들이 송금해주는 것도 많다. 그러던 레바논이, 40년 내전으로 무너졌고 그후 회복되지 못했다. 이제는 외국으로 탈출하겠다고 배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가 빠져 죽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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