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 병자가 돼가는 독일 경제, AfD와 ‘자라 바겐크네히트‘

딸기21 2024. 9. 25. 21:02
728x90

9월 1일 독일 튀링겐주, 작센주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독일대안당(AfD)이 승리했다. 득표율 32.8%, 2013년 창당 이후 처음으로 지방선거에서 제1당에 올랐다. 기민당 23.6%로 2위, 급진좌파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SW) 3위. 집권 연정의 사민-녹색-자민당은 모두 한 자릿수 득표율로 참패했다. 사민당 지지율이 6.1%였단다. 작센 주의회 선거에서도 AfD(아에프데)가 30.6%를 얻어 2위로 선전했다. 22일 치러진 브란덴부르크 주 선거에서는 사민당이 체면치레를 했지만 역시나 '극우의 약진'이 돋보였단다.
 
독일은 연방국가다. 외교 및 국방은 연방이 맡지만 나머지는 주와 연방의 공동 권한이다. 16개 주로 구성돼 있는데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은 슈타트슈타텐 (도시 주)이고 나머지 13개 주는 플라헨란더 (지역 주)다. 2차 대전이 끝나고 1949년 미-영-프 통치 하의 서부 3개 지역을 합쳐서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 만들어졌다. 이 때는 10개 주였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고 옛 동독 지역의 브란덴부르크, 작센, 작센-안할트, 튀링겐(튀링겐), 그리고 이름이 엄청 길고 어려운 메클렌부르크-보르포메른 5개주와 베를린이 더해져 16개 주가 됐다. 
 

State Premier Dietmar Woidke spent the day before the vote surveying flood defenses and talking to first responders as Brandenburg braces for floodwaters from central Europe Image: Patrick Pleul/dpa

 
서쪽에 있는 북(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인구가 1800만명, 뮌헨이 있는 바이에른은 1300만명, 남쪽 스위스랑 접한 바덴-뷔템베르크는 1100만명. 이런 주들과 비교하면 옛 동독 지역에 속한 유권자 수는 확실히 적다. 이번 달에 선거를 치른 3개 주 인구 850만명, 독일 인구 8200만명의 10%다. 그중 작센이 400만명이니까16개 주 가운데 중간 규모이고 나머지 동독 지역 주들은 인구 규모가 작다.  브란덴부르크 주도 인구가 250만명으로 작은 편이지만 베를린을 에워싸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심에 가깝다는 상징성이 있다.
 
과거 동독이었던 지역의 정치환경을 지배하는 것은 현재 3개 정당이다. 하나는 전통의 보수 정당, 기민당이다. 그리고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 아에프데, 사회정책에선 보수적이면서 경제에서는 좌파적인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SW)'이 있다.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 낯선 이름이다. 생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 2024년 1월에 설립된 신생 정당이다. 공식 이름은 이성과 정의(Vernunft und Gerechtigkeit)인데 설립자 이름을 따서 자라 바겐크네히트 동맹(Bündnis Sahra Wagenknecht), 약칭 ‘베에스베’라고 부른다. 자라 바겐크네히트는 경제학자 출신이고 작가이기도 하다. 1969년생으로 2009년부터 연방의회 의원을 했다. 
 

독일의 주와 주도

 
원래는 민주사회주의당(PDS) 소속이었다. 이름이 비슷하지만 민주사회주의당은 사회민주당(사민당)과는 다르다. 1989년 동독 지역에서 결성된 좌파 정당이다. 과거 동독 공산당이라고 알려졌던 정당의 이름이 독일사회주의통일당 (SED)이었고 그걸 계승한 것이 민주사회주의당이었다. 2007년 다른 정당과 합쳐져서 이 정당이 좌파당(Die Linke)이 됐고 바겐크네히트는 거기서 활동했다. 그런데 작년 10월 바겐크네히트가 몇몇 동료들을 데리고 탈당하더니 새 정당을 창당한 거다.
 
바겐크네히트는 1990년대 초부터 민주사회주의당 내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또 좌파당 창당 뒤에도 당내에서 맨 왼쪽에 있는 공산주의 계열의 리더였다. 그러면서도 바겐크네히트는 좌파 주류와 생각이 달랐다. 바겐크네히트 본인도 그렇고, 그가 주도하는 베에스베 동맹도 그렇고
색깔이 뭐다, 기존 좌우 구분으로 말하기가 참 어렵다. 이를 테면 좌파당 정책은 여러 면에서 진보적이다. 동성 결혼 합법화, 이민자를 위한 사회 복지 강화 등등. 유럽의회에서도 북유럽 녹색 좌파 그룹과 함께 좌파 동맹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에 바겐크네히트는 전통적인 독일 좌파, 특히 동독 좌파들과 달리 이민자와 난민에 부정적인 발언을 하곤 했다. 또 2018년 이 사람이 시작한 좌파 운동이 있었다. 아우프슈테헨 (독일어로는 ‘일어서다’)이라는 것인데, 이들의 목표는 독일 정당들에 압력을 가해서 더 좌파로 끌고 가자는 것이었다. 더 좌파적인 정책으로, 극우파들한테 잃고 있는 유권자들을 되찾아오자는 얘기였다. 프랑스 좌파 장 뤽 멜랑숑이나 영국 노동당 좌파 제레미 코빈은 정당 외곽에 운동단체들을 두고 활용해왔는데 그걸 본뜬 것이기도 했다. 즉 정당 내 인사이면서, 정당 바깥에 외곽단체를 만들어서 당을 압박하는 것이라고 할까.
 

자라 바겐크네히트.

 
이 ‘일어서다’ 운동은 별로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활동들이나 인종주의적 요소가 있는 발언들 때문에 바겐크네히트는 당에서 많이 부딪쳤고 결국 독립해서 새 당을 만들었다. 정작 바겐크네히트 본인은 아버지가 이란계다. 그리고 함께 창당한 인사 중에 연방의원 아미라 모하메드 알리는 아버지가 이집트계인 이주민 2세다. 
 
그렇게 탄생한 베에스베는 좌파 포퓰리스트, 민족주의, 사회주의,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색깔로 분류된다. 유럽통합에 회의적이고,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뒤죽박죽 노선이 실제로는 극히 '현실적'이었다. 유권자들의 생각 역시 이 정당의 색깔만큼이나 뒤죽박죽이니 누군가에게는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2~20%, 동부에서는 한때 32%까지 나왔다. 그러니까 옛 동독 지역은 기민당, 그리고 극우-극좌 포퓰리스트 정당이 경쟁하는 구도가 된 거다. 
 
숄츠 연정에 참여한 사민, 녹색, 자민당은 전부 죽을 쑤고 있다. 다만 극우 대안당이 1당 되어도 다른 정당들이 협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주별 정부 구성은 셈법이 복잡할 것이다. 기민이 극좌 베에스베와 손잡으면 다소 간단해지는데 기민당 성향과 안 맞고. 그러려면 전통적으로 협력을 많이 했던 중도좌파 사민당과 손잡아야 하는데, 사민당 득표율은 너무 낮고. 작센과 브란덴부르크에서는 보수-사민-녹색 주정부들이 집권해왔는데 이번에도 그런 연정을 꾸릴 것 같고. 하지만 숫자가 모자라면 베에스베에 손을 벌려야 한다.
 

Peter Brugger, the singer and guitarist in the band Sportfreunde Stiller, called for people to stand up against the far-right  Image: Annette Riedl/dpa

 
이렇게 되면 베에스베는 창당 1년만에 일부 주 정부에 들어가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극우 아에프데는 비록 정부를 장악하지는 못하겠지만 극우 돌풍을 최소한 동독 지역에서는 대세로 만들었음을 보여줬다. 주정부를 주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주 의회 의석 3분의1 이상을 차지하면 헌법 개정이나 판사 임명 등에서 다수의 결정을 저지할 수 있게 된다. 또 제1당이면 주 의회 의장을 지명할 수도 있다. 통과는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 기존 양대 정당, 사민-기민이 이제 이들 눈치를 보는걸 넘어 양극단 사이에서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독일 정치의 안정성은 많이 흔들릴 것이 뻔하다.
 
독일이 어쩌다 이렇게 됐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독일 경제야말로 '어쩌다 이렇게?'라는 물음을 던지게 만든다. 2000년에 미국보다 컸던 유럽경제는 현재 미국의 70%도 안 된다고 한다. 미국 25조4645억달러 vs 유럽 16조6426억달러, IMF가 집계한 2022년 기준 미국과 EU의 GDP다. 캘리포니아(3조5981억달러)보다 GDP가 큰 EU 회원국은 그나마 독일(4조754억 달러)뿐이다.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의 집계에 따르면 2008년~2023년 미국 경제는 82% 성장했는데 유럽 경제는 6% 커졌다고 한다. 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EU 주요 국가들의 2021년 임금은 예외 없이 감소했는데 미국 노동자의 임금은 6%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Economic forecast for Germany
[로이터] Exclusive-German economy expected to contract again in 2024, say sources
 
가장 큰 문제는 유럽의 경제를 견인했던 독일이다. 유럽의 엔진이던 독일이 이대로라면 ‘유럽의 병자’가 될 판이다. 독일 경제는 작년에 유로존 주요국들 중 가장 약세였다. 2024년 성장률도 1%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주요 산업국가들 평균을 밑돌 것이 확실하다.
 

 
올해 연초부터 농민들이 디젤 보조금을 삭감하려는 정부 계획에 반대하는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올라프 숄츠의 연정은 급하게 예산안을 재조정하고 디젤 보조금 삭감안을 철회했다. 예산 문제도 불거졌다. 올해 예산안에 대해 작년 11월 연방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코로나19 대응 예산을 기후대응 예산으로 전용하기로 한 게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연정은 큰 타격을 받았다. 
 
숄츠 정권은 사민-녹색-자민 삼색 연정인데 색깔은 제각각이다. 재정 부족분 170억 유로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를 놓고 연정 내 이견이 불거졌다. 숄츠는 사민당 소속이지만 기민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끌던 대연정에서 경제를 맡아 코로나19 때 경기 침체가 심해지는 것을 막은 공을 세웠다. 당시 '바주카포처럼' 돈을 풀었고, 재정적자를 그리도 싫어하던 독일이 바뀐 것이냐 하는 얘기가 나왔었다. 
 
그러나 지금의 재무장관 크리스티안 린트너는 친기업 자민당 소속이다. 재정 보수파, 예산을 엄격하게 관리하자는 쪽이다. 린트너는 170억유로 규모의 재정 구멍을 정부 비용절감으로 메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기가 안 좋은데 재정을 줄이면 소비는 더 줄고 결국 서민들의 생활을 희생시키게 된다. 사민당의 생각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경제적 보수파가 펼치는 이런 정책의 가장 큰 정치적 수혜자는 결국 극우파 아에프데가 되고 있다.
 

Scholz is facing pressure from parties on the Right and the Left to clampdown on immigration.  (Image: Getty)

 
독일의 노동력과 인프라를 둘러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독일 기차들은 수시로 몇 시간이고, 심지어 하루를 넘겨가며 연착되곤 한단다. 이 얘기 듣고 깜짝 놀랐는데 실은 철도 투자를 끊으면서 이미 오래 된 이야기란다. 독일은 기술자들의 나라인 것 같지만 숙련노동자는 심각하게 적다. 이 문제를 다룬 글을 2000년대 중반에 독일 언론에서 보고 놀란 적 있다. 독일, 하면 엔지니어링의 나라인데 엔지니어들이 전부 더 높은 임금을 주는 미국으로 탈출하면서 독일 내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것이었다(함께 거론된 것이 영국의 간호사 대탈출과 인력부족 사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받겠다는 건데, 거기엔 또 반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거기다 고질적인 관료주의와 투자 부족 문제도 지적된다. 야심차게 유럽 차원의 기후 전환 계획을 내놨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이 돼야 할 에너지 전환은 늦어지고, 고속인터넷 연결도 늦춰지고.. 헌재 판결로 기후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겼으니 앞으로 자금조달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또 하나의 문제는 수출이다. 독일 경제는 수출 지향 구조다. 중국에 자동차 팔아서 먹고 산다. 그런데 글로벌 성장 둔화에 중국의 내수 침체가 겹치면서 독일이 그 충격파를 받고 있다. 
 
.... 쓰고 보니 우리가 독일 걱정할 처지가 아니긴 하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