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 유권자 10억명, 인도 총선의 ‘1인 투표소’

딸기21 2024. 4. 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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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인도 총선거가 시작됐다.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인도. 명목 상의 의회인 중국 전인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의회를 갖고 있는 나라다.

인도 총선을 훑어보기 전에, 먼저 작은 마을로 가보자. 아루나찰프라데시 주는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악지대, 중국과 늘 국경분쟁을 벌이는 곳이다. 그곳에 Anjaw 라는 지역이 있다. 아루나찰프라데시에서도 완전 동쪽 끝자락인데 중국, 미얀마 국경과 만나는 곳이다. 거기에 말로감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Supporters of India's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wear masks of his face, as they attend an election campaign rally in Meerut, India, March 31, 2024. REUTERS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투표소가 하나 있다. 인도 총선이 시작된 4월 19일, 그 투표소는 투표가 완료됐다. 투표율 100%. 유권자가 단 한 명이다. 44세의 소켈라 타양이라는 여성인데 오후 1시에 투표를 마쳤다. 소켈라는 “투표권을 행사하게 돼서 기쁘다. 투표할 기회를 준 당국에 감사한다”고 했다.
 
투표는 시민의 권리이지만 소켈라는 감사를 할 만도 했다. 인도 법에 따르면 모든 유권자는 ‘주거지에서 2km 안에 있는’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기에 투표소를 설치했다. 이 한 명의 유권자를 위해…. 다른 투표소들과 40km 거리다. 외딴 산악지대인 탓이다. 지난 선거 때만 해도 여기 유권자가 2명이었다. 한 명은 소켈라, 한 명은 별거중이던 남편.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는 그 남편이 같은 선거구 내 다른 투표소가 있는 곳으로 이름을 옮겼다.
 
[트리뷴] Lone voter casts vote in remote Arunachal district

이 주의 선거관리 직원은 극한직업인 것인가. PTI 통신에 따르면 아루나찰프라데시 주 전체에 2226곳의 투표소가 있는데 228개가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곳이다. 투표를 받으려고 선거요원 61명은 이틀을 걸어서 이동하고, 7명은 무려 사흘 동안 트레킹을 해서 투표 부스를 설치했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4월 19일부터 6월 1일까지 제18대 록사바(하원) 의원 543명 뽑는다.이번 총선은 2019년 인도 총선을 능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선거이고 결과는 2024년 6월 4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투표일 기준으로 44일 동안,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로부터 치면 무려 82일간의 기나긴 여정이다.
 

이 여성이 이번 인도 총선에서 '유권자의 상징'으로 떠오른 소켈라 타양이다.


잠시 인도 의회를 살펴보면. 인도 의회(바라티야 산사드)는 양원제다. 라지야 사바(국가원로회의)와 록 사바(인민의회)로 구성된다. 하원인 록사바는 선거로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고, 상원 격인 라지야 사바 의원은 주의회 의원들이 비례대표로 정한다. 하원은 대체로 550명 정도, 상원은 250명으로 구성된다. 헌법에 따라 5년에 한번씩 하원 선거를 하는데, 한 선거구에서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이고 543개 선거구 모두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투표를 한다.

유권자가 대체 몇 명이길래 세계 최대 선거라고 하는 걸까. 14억 4천만 인구 중 약 9억 7천만 명이 선거에 참여한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의 인구를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지난번 총선 때보다 유권자가 1억5000만명 늘었다. 신기하다. 추측컨대 선거인 명부에 등록이 안 되어 있던 사람들이 대거 유권자로 편입됐을 것이다. 그 절대 다수가 아마도 집권여당의 지지기반인 힌두교도일 것이고. 인도에는 ‘시민’으로 집계되지 않는 수많은 감춰진 주민들이 있었고, 특히 여성들 중에 그런 ‘등록되지 않은’ 이들이 믾았다. 이번엔 등록률을 많이 끌어올렸고 여성 유권자들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번 선거 유권자들 중에 약 1억 9,700만 명이 20대다.

거기다 이번엔 안드라프라데시 등 4개 주 의원 선거와 16개 주 중 35석의 보궐선거도 함께 실시된다(인도는 28개 주와 8개의 ‘연합영토’로 구성돼 있다. 연합영토는 안다만 제도 등 섬지역들이나 얼마전 모디 정권이 자치권을 빼앗은 카슈미르, 그리고 수도이고 특별행정구역인 델리 등이다).
 

India's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speaks during an election campaign rally in Meerut, India, March 31, 2024. REUTERS/


선거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총선이 7단계로 치러진다. 4월 19일부터 6월 1일 사이에 일곱개의 선거일이 있다. 그 중에 하나를 골라 치르는 주도 있고, 여러 날짜에 선거하는 주도 있다. 가장 큰 주인 우타르프라데시는 주민이 2억4000만 명인데 7단계 모두 투표한다. 그래서 이번 총선은 역대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역대 2번째로 긴 선거가 된 것이다(영국 통치에서 독립한 뒤 1951~1952년 치러진 첫 선거에서는 투표를 완료하는 데 거의 4개월이 걸렸다).
 
선거가 시작된 다음에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사태도 벌어졌다. 선거 기간이 긴 것은 투표 관련 폭력사태나 부정을 막기 위해서 전 과정을 감독할 연방보안군을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요원과 보안요원만 1500만명이다. 그렇게 대비를 했다는데도 투표 개시 전에 동부 서벵골 주에서는 경쟁 정당 지지자들이 연루된 충돌이 있었고, 마니푸르주에서는 21일 11개 투표소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서 재투표가 결정됐다.

정당들 숫자도 많다. 인도는 다당제 입헌민주주의 국가다. 하지만 바라티야자나타(BJP) 당과 인도국민회의 두 당이 지배하는 구조다. 두 거대 정당이 군소 정당들을 규합해 ‘선거연합’을 구성한다. 승리가 예상되는 것은 BJP 주도 국민민주동맹(NDA)이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BJP의 기존 의석만 해도 296석에, 여권 연합 다 합치면 346석인 거대 여당이다. BJP는 성장 중심 경제정책을 펼쳐온 중도우파 진영으로 경제성장을 최대 성과로 꼽고 있다. 하지만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워 무슬림 차별하고 인권 분야에서 문제가 많다.

그에 맞서는 정당은 인도국민회의가 이끄는 ‘인디아’. 풀어 쓰면 인도국가개발 포용 연합인데 영어 약칭이 I.N.D.I.A.다.  이 연합이 차지하고 있는 의석은 117석이지만 그 안에서 국민회의 의석은 51석뿐이다.
 



국민회의는 그 유명한 네루의 정당이다. 내셔널 콩그레스, 그냥 인도에서는 ‘콩그레스’로 부른다. 1885년 말 결성된 유서 깊은 정당이다. 영국 식민통치하에 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현대 민족주의 정당 조직이었다고 한다. 특히 1920년 이후 국민회의를 대표한 인물이 누구냐, 바로 마하트마 간디다.
 
[내 맘대로 세계사] 간디의 '큰 재판'
 
국민회의는 인도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데에 큰 몫을 했을 뿐 아니라, 세계 민족주의에 영향을 미쳤다.독립 후에도 20세기 거의 내내 인도 정치를 지배했다.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가 국민회의 지도자였고 그의 딸 인디라 간디도 오랫동안 당을 이끌었다. 국민회의는 독립 이후 17번 총선에서 모두 과반의석을 차지했으며 지금까지 총 54년 동안 집권했다. 권력을 남용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인도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던 인디라 간디는 1984년 암살당했다. 아들 라지브 간디도 총리를 지냈으나 역시 1990년 암살당했다. 그 뒤로 라지브의 아내 소니아가 국민회의를 이끌었다. 최근에는 라지브의 아들 라훌, 즉 네루의 외증손자가 대표를 했으나 2019년 다시 어머니 소니아가 당권을 장악했다. 이쯤 되면 역사적 정통성이 아무리 두드러진들 족벌정당 소리를 피할 수 없다.

사회주의 성격의 혼합경제와 비동맹 외세를 내세운 국민회의가 장기집권하는 동안 인도는 정체된 국가가 됐다. 그에 대한 반발 속에 부상한 것이 BJP다. 경제성장을 앞세워 1990년대부터 세력 확대을 확대했다(마지막으로 국민회의가 집권한 것이 2004~2014년 만모한 싱 총리 때였는데 싱의 정권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웠고 사실상 BJP나 큰 차이가 없었다). 특히 2014년 취임한 BJP의 모디 총리는 집권 10년을 넘어 세 번째 연임을 노리고 있다. 물론 이 두 정당이 이끄는 정당연합에 속하지 않은 정당들도 물론 있다. 예를 들면 인도공산당, 바후잔사마지(대중사회)당이라든가.
 

Rahul Gandhi, a senior leader of India's main opposition Congress party, is accompanied by his sister Priyanka Gandhi Vadra as he leaves after filling his nomination papers for the general election, in Kalpeta in the southern state of Kerala, India, April 3, 2024. REUTERS


어느 나라나 그렇듯 인도에서도 가장 큰 이슈는 일자리다. 2022년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전국 실업률은 약 7%인 반면 청년 실업률은 23.2%다. 또 하나의 이슈는 힌두 민족주의다. 말이 좋아 내셔널리즘이지, 실제 목적은 무슬림 차별이다. 인도 인구 가운데 힌두교도가 72% 정도이고 무슬림이 14%다. 기독교도가 5% 정도이고 시크교도도 2% 가까이 된다.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 주의 아요디아에 '람 만디르'라는 힌두교 성지가 있다. 16세기에 북쪽에서 온 이슬람 무굴왕조가 들어서면서 힌두교 사원을 부수고 이슬람 사원을 지었다. 이후 이 지역에선 500년간 두 종교 간 갈등이 계속됐다. 특히 1992년 BJP가 제1당에 오르며 종교문제가 학살로 이어졌다. 힌두교도 20만명이 이슬람교도 2000명을 죽이고 아요디아의 모스크를 파괴했다. 하지만 힌두교도 살인범들은 제대로 처벌받지도 않았다. 

모디 정부는 그곳의 모스크를 없애고 2900억원을 들여 힌두 사원을 지었다. 지난 1월 모디 총리는 무슬림 2000여명이 희생당한 역사가 있는 람만디르의 힌두교 사원 개관식에 나타나 세력을 과시했다. 정관계, 재계 인사부터 발리우드 배우들과 스포츠 스타까지  전세기 80대를 동원해 8000명을 불러 모아 사실상 초호화 선거 출정식으로 만들었다. 모디 정권은 노골적인 핍박에 더해 무슬림 차별을 제도화하고 있으며, 무슬림을 겨냥한 힌두교도들의 폭력사태를 유발, 방조하고 있다. 모디가 구자라트 주지사였던 시절부터 해왔던 짓이다. 야권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판하지만 힌두교도들에게는 먹히는 모양이다.
 

람 만디르의 새로 지은 힌두 사원. AP


그리고 또 선거채권이라는 게 있다. 2017년 모디 정부는 선거채권이라는 것을 도입해 개인과 기업이 익명으로, 액수에도 제한 없이 정당에 돈을 기부할 수 있게 했다. 모디 측 정당에 대기업들이 줄줄이 정치자금을 냈다. 특히나 경영진이 수사를 받고 있는 기업, 정부로부터 직접적으로 따내올 이권이 있는 기업들이 돈을 많이 냈다. 올 2월 대법원은 선거채권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BJP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야당 지도자들에 대한 수사도 이번 선거 국면에서 야권의 반발을 샀다. 어느 나라든 참.... 검찰이 권력의 도구가 되는 것은 똑같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모디 연임은 거의 확정적이다. 집권 BJP와 그 연합에 맞서기 위해 야당연합에 무려 24개 정당이 모여서 '빅텐트'를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10년 간의 경제 성적표를 앞세운 모디 총리를 위협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모디 승리는 기정사실이고, 얼마나 이기느냐가 관건이라는 보도들이 많다. 인도... 내게는 정말 크고 복잡하고 난해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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