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 중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 문제로 다시 갈등을 빚었다. 발단은 제2토머스 암초에서 불거진 충돌이었다. 제2토머스 암초(Second Thomas Shoal), 남중국해의 지명들이 대개 그렇듯이 여러나라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까닭에 이름이 여럿이다. 필리핀 말로는 아융긴 숄, 중국어로는 런아이자오라 부른다고 한다.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난샤군도)에 있는 산호초인데 스프래틀리 군도가 바로 중국, 브루나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복잡한 곳이다. 특히 중국은 제2 토마스 숄을 포함한 남중국해 거의 전역을 자기네 영유권이라 주장하고 있다.
‘제2토마스 숄’, 뭍으로 올라온 배
하지만 제2토마스숄은 필리핀 해군이 1999년 첫 상륙한 이래로 ‘실효 지배’를 해왔다. 당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이 불거지자 필리핀 해군은 이 지역에 2차 대전때 미군이 썼던 시에라 마드레라는 배를 가져다 뭍에 올려놨다. 그 이후로 줄곧 이 배를 기지 삼아 10여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중국은 2014년부터 필리핀에 “배를 치우라” 요구했고. 주변 해역에 함정을 배치해 순찰시키면서 무력 시위를 해왔다.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는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으나 이후에도 분쟁은 계속됐다. 중국은 중재재판소 설립 조약의 서명국이지만 중재재판소의 판결을 따르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필리핀은 계속 병사들을 주둔시키고, 중국은 주둔지로 가는 필리핀 측의 보급품 전달을 막고, 그 과정에서 충돌이 불거지는 일이 반복된다. 2014년, 2021년, 그리고 2023년에도 중국 해안 경비대 함정이 필리핀 보급선에 물대포를 발사했다. 그리고 이달 초 다시 중국 해안경비대가 필리핀 보급선에 물대포를 쐈다. 필리핀 측은 중국 외교관을 소환해 항의했다.
지금의 필리핀 대통령은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인데 전임자인 로드리고 두테르테보다 훨씬 친미적이다. 두테르테는 해상 영유권 등을 놓고 중국과 맞서면서도 미-중 사이에서 한쪽 편에 서지 않고 중립을 유지했다. 반면 봉봉은 대놓고 친미 노선을 걷는다.
[구정은의 ‘수상한 GPS] 부활한 마르코스 가문
필리핀과 중국은 1975년 6월 수교했다. 미-중 수교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수교한 것이다. 독재자 마르코스가 ’친미‘였던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 이후 따뜻한 관계였다가 냉각되기 시작한 것이 2010년대 들어와서다.
2012년 스카보러 암초를 둘러싼 해군의 대치가 시발점이었다. 필리핀에서는 ‘서필리핀해‘라고 표현하는, 그 해역에서 중국의 불법 점령과 불법 기반시설 설치, 배타적 경제수역 침범으로 관계가 악화됐다고 필리핀 측은 설명한다. 이듬해 필리핀 정부가 상설중재재판소에 중국을 제소하고, 3년 뒤 중국이 패소한 것이 이런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두 배로 늘어난 필리핀의 미군 기지
중국과 교역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겠지만, 두테르테 시절까지 필리핀 측 입장은 “영토 분쟁이 다른 분야의 협력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2022년 중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필리핀의 세 번째 수출 시장이었다. 대중국 수출액이 필리핀 전체 수출액의 13%였다. 필리핀의 수입을 놓고 보면 최대 교역상대가 중국이다.
마르코스 주니어 현 대통령도 2022년 취임한 뒤 처음엔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곧 미국과 밀착했다. 취임 첫 해에 중국과의 50억 달러 규모의 철도 프로젝트 대출협상을 다시하라고 지시한 것이 그 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편가르기 압박이 너무 심했고, 미중 사이에서 역내 국가들에게 선택을 강요한 측면도 물론 있다. 작년에 필리핀은 미군 기지 수를 거의 두 배로 늘려줬다. 그 중에 대만을 마주보고 있는 기지 3개가 포함돼 있다. 미군과 필리핀군이 참여하는 군사 훈련은 남중국해 상공과 대만 인근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최근의 남중국해 충돌 뒤에도 미국이 또 나섰다. 마닐라를 방문한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필리핀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중국에 대응하는 데 필리핀을 활용하려 한다. 이렇게 블링컨이 나서자 중국은 “미국이 남중국해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잘 들여다봐야 할 것이 블링컨 발언이다.
“필리핀에 대한 무력공격이 있어야만 미국이 동맹국 방어 의무를 발동할 수 있다.”
1951년 미국과 필리핀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 군사동맹을 맺었다. 그런데, 미국이 물리력으로 나서는 것은 필리핀이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만이다, 블링컨이 이번에 이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무력 공격을 한 건 아니라는 뜻은, 즉 미국도 일종의 갈등관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도, 3월에 다시 대치를 하긴 했지만 작년 12월 필리핀과 비슷한 충돌이 있었을 때 왕이 외교부장이 필리핀 측에 요청해 통화하면서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중국과 필리핀의 해군력은 상대가 되지 않지만 필리핀은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고, 계속 ‘벼랑끝’으로 가다가는 분쟁이 더 격화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의 역사
남중국해 분쟁의 역사는 꽤 됐다. 하지만 여기에 미국이 가세해서 중국과 본격적으로 날을 세우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중국이 이 바다의 바위들에 시설물을 짓기 시작했고 2012년부터 그 사실이 확인되면서 분란이 거세졌다. 미국의 한 장성이 만리장성에 빗대 ‘모래 장성’이라 불렀던 중국 군사시설들을 세상에 알린 것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웹사이트에 공개한 위성 사진들이었다. CSIS는 ‘아시아 항해 투명성 이니셔티브’라는 프로그램과 함께 ‘아일랜드 트래커’를 운영한다. 남중국해에서 중국, 베트남, 대만 등이 짓고 있는 암초의 시설물들을 위성사진들로 비교분석하는 것이다.
맥사(MAXAR), 상업 위성이 보여주는 대결과 갈등의 세계
각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남중국해에는 110억 배럴의 미개발 석유와 190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있다고 추정된다. 어장도 크고. 경쟁국인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베트남 등등, 중국과 맞서면서 1970년대부터 제각기 섬들과 다양한 해역에서 영유권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바다를 둘러싼 중국의 속셈이 경제적인 이권에만 맞춰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만을 마주 보고 있는 중국으로써는 양안 문제도 생각을 해야 될 것이고, 무엇보다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 그리고 미일 동맹에 맞서는 전략 지역으로서의 가치가 있을테니까.
특히 2010년대 후반부터 남중국해의 무력 갈등이 격화됐고, 거기엔 미국이 큰 몫을 했다. 2017년 11월 동남아시아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남중국해에 자유롭고 개방적인 접근을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2017년부터 이른바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을 실시하는 등 군사 활동과 해군 주둔을 강화해왔다.
조 바이든 정부도 유럽국들까지 끌어들여 항행의 자유라며 군사훈련을 하고 항모 전단들을 남중국해로 통과시켰다. 그러면 중국은 해군 훈련으로 맞선다. 올 초에도 미국과 필리핀은 분쟁 해역에서 이틀 간 합동훈련을 했다. USS 칼 빈슨이 이끄는 항공모함 타격 그룹이 참여했다.
미국 항모까지 뜨자, 중국은 맹비난하면서 같은 기간에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남중국해를 관할하는 남부전구의 해군 훈련을 실시하고 영상을 공개했다. 제트기가 이륙해 미사일을 발사한 후 목표물을 타격하는 장면이 CCTV 등 국영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작년 10월 24일 중국 전투기가 남중국해 상공을 비행하던 미 공군 B-52 폭격기 약 3미터 이내로 접근하는 일촉즉발의 긴장도 빚어졌다. 미-중 양측이 정면 대치는 피하고 있다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이 거기서 왜 나와?
좀 잠잠해졌나 싶으면 들썩거리는 남중국해 문제. 거기에 일본도 끼어들고 있다. 일본은 중국과 동중국해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고, 무엇보다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 미국과의 더욱 강력한 결합을 추진 중이다.
작년 11월,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양국 간 국방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3월 필리핀-중국 충돌이 벌어지자 일본 외무상이 마닐라에 가서 미국과 필리핀 측 접촉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단 그것은 보류됐지만, 4월 초 미-필리핀-일본 3자 정상회담이 열렸다. 필리핀이 중국과 맞서려면 혼자선 안 되고 동맹이 필요하다. 그 역내 동맹으로 일본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과 일본은 상호 접근 협정(RAA)을 협상하고 있다. 올해말 타결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일본 언론들은 양국 관계를 ’준동맹‘으로 격상하는 게 목표라고 보도하고 있다. 호주, 영국과 일본 사이에 유사한 협정이 올해 초 발효됐는데, 필리핀과의 협정이 정식으로 체결되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과의 첫 번째 RAA이자 일본 전체로는 세 번째가 된다. 이 협정이 타결되면 일본 자위대와 필리핀 육군이 서로의 영토에서 훈련하고 작전할 수 있게 된다. 또 합동훈련, 공중 급유, 공동 순찰 등이 늘어날 것이다.
작년 11월 이미 기시다 정부는 동맹국에 군사장비 등을 제공하기 위한 안보지원(OSA) 프레임워크에 따라 해안 감시용 레이더 시스템 등을 필리핀에 내주기로 합의했다. 이 프로그램은 필리핀 뿐아니라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그리고 태평양 섬나라 피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필리핀과의 협력 강화는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2020년 필리핀 국방부와 미쓰비시 전기가 만든 공중감시 레이더 1억달러 어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 거래는 일본 정부가 2014년 4월 이른바 ‘방위 장비 및 기술 이전 3원칙’을 수립한 이후 일본 기업이 방위장비 완제품을 외국 정부에 이전한 첫 사례였다. 그리고 올 2월에 양국 정상은 필리핀에서 일본 자위대의 인도적 지원 및 재해 구호(HADR) 활동에 관한 규약(TOR)에 서명했다.
작년 9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와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불참했다. 마치 바이든을 대행하듯, 기시다 총리는 아세안 국가를 방문하고 일본이 미국과 함께 주창해온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FOIP)’ 구상을 확산시키려 애썼다. 그리고 두 달 뒤 일본-필리핀 정상회담 때에는 필리핀 의회를 찾아가 일본의 동남아 외교의 기본 방침을 설명하는 연설을 했다. 일본 총리가 필리핀 의회에서 연설한 것은 처음이었다. 5월에는 일본 참여하는 발리카탄 합동 군사 훈련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일본의 개입은 중국을 더 자극할 게 뻔하다. RAA 타결되면 일본군이 미군처럼 필리핀에 주둔하게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우려가 필리핀에서도 나오고 있다. 작년 11월 기시다 총리의 의회 연설 뒤 필리핀 상원의장은 “일본군이 미군처럼 계속 주둔하는 건 아니다”라며 반발 여론을 무마하려 애썼다. 하지만 주둔 쪽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한국과 필리핀
한중 관계의 중요성과 복잡성은 설명할 필요 없을 것이고. 필리핀과 한국은 어떤 관계일까.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은 1944년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강제징용한 한국인 병사들을 필리핀에 배치해 필리핀 점령에 동원한 악연이 있다. 하지만 1949년 3월 필리핀이 대한민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하면서 양국 관계가 수립됐다. 필리핀은 대한민국을 인정한 다섯 번째 국가이자 아세안 국가 중 최초로 대한민국과 수교한 국가였다. 한국전쟁 때 필리핀은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당시 남한을 도와야 한다는 유엔의 요청에 맨 먼저 응한 아시아 국가가 필리핀이었다. 2017년에는 한국과 필리핀 민간단체들이 위안부의 목소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공동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유네스코 기여금을 많이 내는 일본의 반대로 아쉽게 무산됐지만 말이다.
한국은 필리핀에 무기를 많이 공급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과 필리핀 군사협력 확대를 설명했지만 사실 한국과 필리핀의 무기 관련 협력이 훨씬 많다. 한국은 필리핀 공군에 F-5A/B 전투기, T-41 훈련기를 기증하는 등 필리핀에 수많은 군사 장비를 기증한 바 있다. 2017년에는 필리핀이 주문한 FA-50 파이팅 이글 경전투기 12대 인도를 완료했다. 2019년에는 ‘충주함’으로 불리던 전함을 개조해 필리핀에 내줬다. 지금은 BRP 콘라도 얍(PS-39)이라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2020년에는 필리핀 정부가 발주해 현대중공업이 제작한 호세리잘함(FF-150)이 취역했다. 앞으로 몇 년에 걸쳐 초계함들을 추가로 인도할 예정이다. 미국 군사전문가들은 중국의 위협에 맞서 필리핀의 군 역량을 강화하려면 한국의 첨단 방위산업이 필리핀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실용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올 3월 3일 우리 공군 블랙이글스 곡예비행팀은 양국 수교 75주년을 맞아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에서 에어쇼와 ‘우정의 비행’을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 무기를 많이 파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 경제적인 이익이 되겠지만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경계해야만 하는 처지다.
복잡하게 굴러가는 남중국해 상황, 그리고 거기서 더 확장된 ‘인도-태평양’이라는 전략 지역의 상황,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인접한 지역 내에 긴장이 고조되고 편가르기가 벌어지고 협력 대신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우리는 가장 경계해야 한다. 현명한 전략적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
일본이 필리핀을 매개 삼아 군사대국으로 가려고 하고
이번 미-일-필 정상회담은
아시아 하위 파트너로서 중국 견제 일본이 맡아라
아예 명시를 한 건데
이러다 한국은 하청의 재하청 될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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