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동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보츠와나가 독일에 “코끼리 2만 마리를 보내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독일 환경부가 밀렵을 걱정하며 사냥동물 수입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보츠와나의 모크베시 마시시 대통령이 코끼리떼를 독일로 보내겠다고 한 것이었다. 지난 달 영국이 아프리카 야생동물 사냥을 제한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보츠와나의 야생동물 장관은 “코끼리 1만 마리를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 보내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대로 당신들도 동물들과 함께 살아보라. 농담하는 것 아니다.” 마시시 대통령은 독일 매체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럽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에는 별 관심도 없으면서 코끼리를 신경쓰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도 들린다. 그는 “베를린에 앉아서 보츠와나 문제에 의견을 말하기는 쉽다. 그런데 우리는 전 세계와 렘케의 당을 위해서 이 동물들을 보호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렘케는 독일녹색당 지도자인 스테피 렘케 환경부 장관을 가리킨다. 영국이 사냥동물 수입금지를 주장했을 때 보츠와나 언론 음메기(Mmegi)가 "식민주의의 잘못된 리바이벌"이라고 비판한 것도 일맥상통한다.
[MMEGI] UK’s proposed trophy import ban: A misguided colonial revival
보츠와나에는 13만 마리가 넘는 코끼리가 있고, 최근에는 매년 6,000마리씩 증가하고 있다니 열대 동물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겐 반가운 일이다. 보츠와나가 2014년에 야생동물 사냥을 불법화했다가, 대중의 압력으로 2019년에 금지를 풀었다고 하는 걸 보면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아프리카는 ‘동물의 왕국’이고 아프리카 국가들은 ‘빈국‘이고 관광객들 돈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고 본다면 편견이다. 보츠와나가 2021년 코끼리 사냥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270만 달러였다. 그리 엄청난 액수는 아니다. 돈 때문이 아니라, 코끼리가 너무 많아져서 농작물과 마을을 파괴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에 개체수를 ‘조절’하려는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영국의 해리 왕자 부부가 후원하는 보츠와나의 환경단체 ‘국경없는 코끼리’도 이제는 "이 많은 개체수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웹사이트에 적고 있다.
이른바 ‘트로피 헌터’라고 불리는, 구미의 돈 많은 사냥 관광객들의 행태는 오래 전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사자나 코끼리나 사슴 같은 대형 동물들을 사냥하고 자랑 삼아 사체 부위를 잘라 걸어두는 행태 말이다. 보츠와나는 코끼리 마릿수를 관리할 필요가 있지만, 트로피 헌터들이 늘어나면 결국 다른 지역들에서는 밀렵이 횡행하기 쉽고 멸종위기종 보호에 장애가 된다. 그렇다고 보츠와나가 진짜로 독일에 2만 마리를 보내기는 힘들 것이고, 가까운 앙골라와 모잠비크에는 실제로 코끼리들을 보내주겠다고 제안한 적 있는데 성사되지 않았다.
사실 보츠와나는 우리에겐 좀 생소한 나라다. 분쟁이나 재난 재해 같은 것들로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나라, 아프리카에서는 드물게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잠비아, 짐바브웨에 둘러싸여 있고 면적은 58만km², 인구는 260만 명 정도다. 인도의 코끼리 숫자가 3만5000마리라는데 보츠와나는 13만 마리라니, 인구 대비 코끼리 숫자로는 따라갈 곳이 없겠다. 특히나 북부 칼라하리 사막의 오카방고 삼각주는 거대한 자연보호구역으로 이름 높다.
개발원조 분야에서 보츠와나는 ‘스타’다. 영국의 간접 통치에서 벗어나 1966년 국가를 세웠는데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정말 가난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다. 대런 애쓰모글루 등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보츠와나 공화국이 만들어졌을 때 “포장도로는 모두 합쳐봐야 12킬로미터, 대학 졸업장이 있는 시민은 22명, 중등 교육을 받은 시민이라고 해봐야 100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2021년 기준 1인당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만5000달러로, 세계의 나라들을 소득순으로 줄세웠을 때 가운데에 위치하는 나라가 됐다.
한동안 한국 등 ‘아시아 호랑이’들을 분석하던 개발경제학자들은 2000년대 이후로는 보츠와나를 모델로 삼는다. 보츠와나의 경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중 하나이고, 정부 재정은 탄탄하고, 국제기구가 산정하는 부패지수에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나라로 늘 평가받는다.
[World Bank] Botswana’s Success: Good Governance, Good Policies, and Good Luck
이 나라의 성공요인을 알려면 역사를 봐야 한다. 19세기 말에 아프리카 남부를 제 땅처럼 지배하던 영국의 악명 높은 식민주의자 세실 로즈는 베추아나란드, 즉 오늘날의 보츠와나도 자기 밑에 두고 싶어했다. 1895년 그 지역에 살던 츠와나 부족장 3명이 여객선을 타고 머나먼 길을 여행해 영국으로 가서 영국 총리와 담판을 지었다. 로즈와 정치적으로 라이벌이었던 영국 총리는 츠와나 부족이 로즈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영국의 간접 통치 하에서 자치를 누리게 해줬다.
츠와나 부족은 일종의 민주주의에 해당하는 집단적인 의사결정 절차를 갖고 있었고, 부족장 자리는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열려 있었다. 부족의 뜻을 모아 입장을 정리해서 영국에 대표단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었다. 보츠와나는 독립 뒤에도 민주주의를 지켰다. 보츠와나민주당(BDP)이 계속 집권하고 있긴 하지만 군부 장기집권 같은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한 정당이 오래도록 권력을 이어가는 일본과 비슷한 구조다. 정부가 안정돼 있고, 행정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거의 보편적인 무상 초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제 2036년까지 고소득 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보츠와나의 성장에는 자원이 큰 몫을 했다. 세계 다이아몬드 매장량은 러시아가 단연 1위다. 통계마다 차이가 나는데, 러시아의 매장량은 4200만~8600만 캐럿으로 추정된다. 2위가 보츠와나(2400만~2800만 캐럿)이고 그 다음이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등이다. 그러나 자원이 있어도 발전은커녕 독재체제의 발판이 되거나 분란이 일어나는 나라가 적지 않다. 보츠와나가 이른바 ‘자원의 덫’을 피할 수 있었던 배경에 민주적 전통이 있었다고 분석하는 이들이 많다. 문제가 없지는 않다. 다이아몬드가 전체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재정 수입도 거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영국 광업회사 드비어스의 권력이 너무 세다. 세실 로즈가 창립한 바로 그 드비어스와 보츠와나 정부가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갖고 있는 ‘뎁스와나’라는 회사가 다이아몬드의 3분의2를 생산한다. 그런데 거래의 90%는 드비어스가 통제한다. 전체 원석 수출량의 10%만 보츠와나 측이 자체적으로 거래할 수 있게 계약돼 있었기 때문이다. 재협상에 나선 보츠와나 정부는 자신들의 통제량을 2033년까지 10년 동안 50%로 올리기로 작년에 합의했다.
[African Business] De Beers concedes to Botswana’s demands in last minute diamond deal
보츠와나가 이 과정에서 드비어스와 경쟁하는 벨기에 보석회사를 끌어들여 영리하게 협상을 하기도 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도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 기업 알로사는 드비어스와 함께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지배해왔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시에라리온 등 서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나온 보석을 가리키던 ‘블러디 다이아몬드’라는 딱지가 러시아산에도 붙게 됐다. 스페인 엘파이스의 표현을 빌면 시계 제조업자들이 고급 시계에 붙일 다이아몬드를 사기 위해 “송장에 러시아산이 아님을 명시하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덕에 2020년 40억달러였던 보츠와나의 다이아몬드 수출액은 2021년 69억달러, 2022년 74억달러로 늘었다. 작년에는 세계의 수요가 줄면서 다소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츠와나의 관심은 당장의 매출보다는 채굴권의 회수 쪽에 있는 듯하다. 자원을 가진 아프리카 국가들에게서 전반적으로 눈에 띄는 흐름이기도 하다. 짐바브웨 정부는 작년에 리튬 수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원광 수출보다 자국 내 가공을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는 무장집단들 간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코발트의 수출을 둘러싸고 서방과의 협상에서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다. 드비어스와 협력해온 나미비아도 다이아몬드 거래에서 더 많은 수익을 요구하며 보츠와나의 모델을 따르려 하고 있다.
독립 이후 6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보츠와나는 열심히 뛰었고 앞날도 현재로선 밝아 보인다. 코끼리와 다이아몬드 사이, 보츠와나의 걸음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희망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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