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세실(Cecil the Lion)’. 영화 제목도 아니고, 디즈니 캐릭터도 아니다. 최근 아프리카 남부 짐바브웨에서 사냥꾼에게 희생된 사자의 이름이다. 세실은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한 미국인 관광객에게 사살됐다. 세실 사건을 계기로, 아프리카 ‘동물 사냥 비즈니스’의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세실이 발견된 것은 지난 27일이다. 열 세살짜리 숫사자 세실은 짐바브웨 서부 황게 국립공원에 살고 있었고 이 공원의 명물이자 국민들의 자랑거리였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연구해온 대상이기도 했다. 세실이 사냥감이 됐다는 것도 충격이었으나, 끔찍한 사냥 방식이 더 충격적이었다. 사자는 화살과 총에 맞았고, 목이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미국에서 온 치과의사 월터 파머(55)였다. 그는 약 5만달러(5800만원)를 주고 현지 가이드를 고용해 세실을 사냥했다.
황게 국립공원에서 유유자적하는 생전의 세실. (Wildlife Conservation Research Unit/AP)
짐바브웨 EIN뉴스는 파머를 도운 현지인 2명이 체포돼 밀렵 혐의로 기소됐으며 당국이 파머에 대해서도 불법행위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29일 보도했다. 체포·기소된 두 사람 중 테오 브롱코스트와 호네스트 은들로부는 황게 국립공원 주변의 지주 겸 사냥 가이드다. 국립공원에서의 사냥은 불법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죽은 먹잇감을 가지고 사자를 공원 밖으로 유인한 뒤 사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파장은 짐바브웨를 넘어 일파만파로 번졌다. 세계적인 영장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은 “세실 사건에 충격받았고 분노했다. 아프리카 야생 사자같은 위기종을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게다가 안전한 공원 밖으로 끌어내 총을 쏘고 화살을 쏘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며 멸종위기종 보호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은 사자를 멸종 위험에 ‘취약한 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지난 세기에 20만 마리에 이르렀던 아프리카 야생 사자 수가 사냥 때문에 이제는 3만마리 정도로 줄었다고 지적한다. 특히 사자 개체 수는 지난 30년 새 60%가 줄었다. 짐바브웨 정부에 위기종 동물의 사냥 허가를 아예 금지할 것을 촉구하는 ‘세실을 위한 정의’ 온라인 캠페인에는 60만명 이상이 동참했고, 백악관 청원사이트 ‘위 더 피플’에는 파머를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와 12만명이 서명했다.
유명 배우 미아 패로는 파머가 운영하는 치과와 집 주소를 트위터에 적시하며 비난했다. 주소는 곧 지워졌으나, 미네소타주 블루밍턴에 있는 파머의 병원 앞에는 수백명이 몰려와 항의 시위를 했으며 죽은 세실을 애도하는 사진과 꽃다발이 쌓였다. 에르메스의 고가 핸드백 ‘버킨백’을 만들기 위한 끔찍한 악어사육 실태를 고발해 최근 주목받은 동물보호단체 페타는 “파머를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했다.
파머가 사는 미네소타주의 마크 데이튼 주지사는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고, 주 정치인들은 일제히 트위터 등을 통해 “위기에 처한 동물종을 유인하고 사냥하는 건 잔인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도 트위터에 “파머와 가이드들은 교도소로 보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Protestors gather outside Dr. Walter James Palmer‘s dental office in Bloomington, Minn., Wednesday, July 29, 2015. /AP
파머의 과거 행태까지 모두 파헤쳐졌다. 그는 세실을 향해 여러번 화살을 쐈는데, 전에도 대형 사슴 엘크와 버펄로, 북극곰 등을 활로 쏘아죽인 적이 있다. 그는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여러 기록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었고 2009년에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도 했다. 이런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대형동물을 사냥하는 ‘빅게임 헌팅’ 자체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파머처럼 사냥한 동물의 머리나 가죽 등 신체 부위를 트로피처럼 전시해놓는 사냥꾼들을 ‘트로피헌터’라 부른다. 며칠 전 미국 아이다호주에서도 엘크를 죽여 뿔 달린 머리를 집에 장식한 사냥꾼이 들통나 주민들이 분노한 사건이 있었다.
특히 아프리카 사바나(초원)에 가서 멸종위기종까지 가리지 않고 사냥하는 트로피헌터들은 동물보호의 천적이다. 그 중 90% 이상이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국제동물복지기금(IFAW)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사자의 신체 일부를 ‘기념품’ 혹은 상업적인 용도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1999년~2008년 이런 ‘사자 신체’ 거래의 64%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이뤄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과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 사냥꾼들 문제를 거론했다. 가디언은 미국의 여러 동물보호단체들이 미 야생동물보호국을 상대로 아프리카 사자를 멸종위기 동물 목록에 올릴 것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세실 살해를 도운 현지 가이드 브롱코스트가 29일 황게 법원에 출두해 있다. /AFP
아프리카의 부패와 미흡한 규제가 밀렵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짐바브웨 당국은 파머와 가이드들이 허가 없이 밀렵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뒤늦게 조사에 나섰으나, 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탄자니아 등에서 사냥은 애당초 불법이 아니다. 국립공원 등 보호구역 내에서의 사냥은 규제하고 있으나 세실 사건에서 보이듯 합법적인 사냥과 밀렵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파머는 세실을 잔혹하게 죽인 것을 후회한다면서도 “사냥은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냥을 아예 금한 나라는 보츠와나, 잠비아 정도다.
세실이 살았던 황게 국립공원에서는 2013년 10월 밀렵꾼이 샘물에 독극물을 풀어 야생코끼리 103마리를 몰살시키고 상아를 떼어갔다. 아프리카 남부에서 25년만에 벌어진 ‘코끼리 대학살’이었다. 당국이 4명을 체포했고 그 중 일부에겐 징역 9년형이 선고됐으나 밀렵은 끊이지 않는다.
마크 발마라는 화가가 29일 미국 미네소타주 블루밍턴에 있는 파머의 병원 벽에 항의의 표시로 세실을 그리고 있다. /AP
남아공 한 나라에서만 연간 9000명 정도의 트로피헌터들이 방문하며, 이들에 고용돼 일하는 사람이 7만명에 이른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남아공의 ‘사냥 비즈니스’가 연간 7억4400만달러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생태관광으로 얻는 수익이 사냥산업의 수익보다 13~15배 크기 때문에 자연을 보호하는 편이 경제적으로도 더 유용하지만, 문제는 부패다. 허가 없이 사냥하거나 밀렵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불법 가이드 일을 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근시안적인 주민들과 부패한 관리들, 돈 많은 미국 사냥꾼들의 욕심이 합쳐져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다.
트로피헌터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처음이 아니며, 이미 올해초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에미리츠항공은 사냥꾼들이 잡은 코끼리, 코뿔소, 사자, 호랑이 ‘화물 운송’을 중단했다. 그러나 정작 밀렵 천국인 남아공의 사우스아프리카항공은 지난 22일 금지된 동물종 운송 중단조치를 철회했다.
페친 민창기님이 물어오셨습니다. "세실 로즈에서 따온 이름인가요?"
맞습니다!
세실과 그 동생;;은 2008년 무렵에 이름이 붙었는데요. 그 때 'Magisihole Pan'이라는 샘물에서 물을 먹고 있었대요. 이 샘물의 이름이 '백인의 샘물'이라는 뜻이랍니다. 여기서 백인은 바로 세실 로즈. 짐바브웨는 옛 로디지아(로즈의 땅)였고요. 그래서 세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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