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이란 핵 합의 공신들, 'MIT의 두 사람' 모니즈와 살레히

딸기21 2015. 7. 1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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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협상이 지난 4월 잠정 타결에 이어 마침내 세부사항에까지 합의돼 마침표를 찍었다. 협상의 적인 ‘디테일이라는 악마’를 잡아낸 것은 미국과 이란 양측에서 핵물리학자로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펼쳐보인 매서추세츠공과대학(MIT) 출신의 두 사람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합의안에 서명한 것은 이제는 ‘친구’가 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이지만, 실제로 합의 내용을 꼼꼼히 조율하고 ‘밀당’을 벌인 건 양국의 핵전문가들이었다. 미국 측 협상단 차석대표였던 어니스트 모니즈(70) 에너지장관과 알리 악바르 살레히 이란원자력기구(AEOI) 사무총장(66)이 주인공들이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왼쪽 세번째), 어니스트 모니즈 에너지장관(왼쪽 두번째),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오른쪽 세번째), 알리 악바르 살레히 이란원자력기구 사무총장(오른쪽 네번째) 등이 지난 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본격적인 회의를 재개하기 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미 국무부


모니즈는 빌 클린턴 행정부 때에 에너지부 관료가 된 핵물리학자다. 포르투갈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스탠퍼드대학에서 공부했고 1973년 MIT 교수가 됐다. 2013년 스티븐 추의 후임으로 에너지장관에 임명됐을때 상원에서 97대 0 만장일치로 인준됐다. 모니즈는 기술적인 디테일들을 놓고 이란의 살레히와 협상을 벌였다. 미·영·프·러·중·독일(P5+1)과 이란의 치열한 외교전 이면에서 모니즈는 물리학 지식을 총동원, 이란 핵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틀을 만들고 점검했다.

 

살레히는 핵물리학자 출신 외교관이다.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 정권 시절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주재 이란 대표를 지내고 2009년부터 이란원자력기구 수장을 맡았다. 2010년부터 외교장관으로 일하다가 2013년 8월 하산 로하니 정권이 출범하면서 다시 원자력기구로 옮겼다. 이라크 카르발라 태생으로, 레바논 베이루트 대학을 거쳐 1977년 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란 핵개발 과정의 산 증인인 그는 로하니 정권 출범 뒤 이란과 서방 간 핵 화해의 주역으로 변신했다. 모국어는 이란어(파르시)이지만 영어와 아랍어에 능통하고 글로벌화된 인물이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핵 합의 기자회견을 앞두고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오른쪽)과 긴밀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서 지켜보는 사람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친동생이자 고위 외교관인 호세인 페리둔이다. 사진 미 국무부


모니즈는 살레히와 몇번이고 머리를 맞댔다. 핵과 외교를 모두 아는 두 사람이 있었기에, 기술자들의 설명을 외교관들에게 애써 이해시키는 과정을 생략하고 이행절차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외신들은 평한다. 지난 4월 로잔에서 큰 틀에 합의한 뒤 백악관에서 ‘하버드 변호사 출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란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의 작동 방식과 아라크 중수로의 우려점 등을 설명한 것도 모니즈였다.

 

1970년대에 모니즈는 MIT의 조교수, 살레히는 박사과정 학생이었으나 알고 지내지는 않았다고 두 사람은 밝혔다. 하지만 “워싱턴과 테헤란의 정치적 요구는 옆으로 밀어놓고 과학적 측면에서 타협안을 찾아가는 스타일”은 비슷했다. 특히 4월 로잔 협상 때에는 둘이서 남들이 못 알아듣는 전문적인 내용으로 토론을 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놀림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살레히 휘하의 이란 핵기술자들은 대부분 보수적이고 정보를 내놓는 것을 꺼렸지만 살레히와 모니즈의 대화로 문제들이 하나씩 풀렸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핵 협상은 이렇게 “장애물을 하나씩 수고스럽게 없애나가는 과정”이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란과 핵 협상을 하던 중 잠시 쉬면서 랩톱 컴퓨터로 쿠바 미 대사관 개설 계획을 발표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기자회견 중계 동영상을 보고 있다. 사진 미 국무부


두 전문가가 토론하는 동안 케리와 자리프는 협상장 안팎에서 신뢰를 쌓아갔다. 케리는 이번에 빈에 18일간 머물렀다. 미 국무장관이 외국의 한 도시에 이렇게 오래 나가 있었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년 파리평화회의 이후 처음이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친동생이자 고위 외교관·정치인인 호세인 페리둔을 빈에 보내 수시로 보고를 받았다. 


치열한 협상 동안 이란 대표들은 본국에서 가져온 건포도와 피스타치오를 먹었고, 미국 대표들은 ‘트위즐러’ 젤리와 치즈, 땅콩과 건포도로 허기를 달랬다. 필립 해먼드 영국 외교장관은 잠시 런던에 돌아갔다가 빈에 다시 오면서 막스&스펜서의 비스킷을 가져왔고, 프랑스 협상단은 협상장인 빈의 코부르 호텔 와인셀러를 프랑스산 와인으로 채웠다.

 

이탈리아 국적의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란측과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모게리니는 뒤에 “이란인과 이탈리아인이 냉정하게 토론할 것이라곤 기대하지 말라. 이건 우리의 문화의 일부다”라고 말했다. 협상이 고비를 맞았을 때에는 보수적인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너무 미국화된 협상대표’라 불렀던 자리프마저 미국 대표단을 향해 “이란인을 결코 위협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긴장이 한껏 고조된 순간, 테이블 끝에 앉아 있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러시아인도!”라고 덧붙이는 바람에 웃음이 터지며 다시 대화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가디언은 ‘상호 존중’을 늘 원칙으로 삼으며 협상한 끝에 성과를 내놓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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