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구정은의 '현실지구']나이지리아 떠나는 셸

딸기21 2024. 2. 24.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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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저(니제르) 강. 아프리카 서부 국가인 나이지리아와 니제르의 어원이 된 강이다. 4200킬로미터를 흐르는 이 강이 대서양의 기니만과 만나는 곳에 비옥한 삼각주가 펼쳐진다. 니제르 델타, 농업의 풍요로움보다는 세계적인 유전지대로 이름 높은 곳이다. 영국 에너지회사 셸을 비롯해 다국적 에너지기업들이 장악해왔던, 토착민들에게는 마음 아픈 땅이기도 하다.

그런데 셸이 니제르 델타 지대의 땅 위에서 벌여온 사업을 접기로 했다. 아프리카뉴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지난달 육상 부문(onshore) 에너지 탐사와 채굴을 맡아온 ‘나이지리아 셸 석유개발회사(SPDC)’를 매각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A member of Shell staff on the Bonga offshore oil Floating Production Storage   -   Copyright © africanewsSunday Alamba/Copyright 2024 The AP.


사들이는 쪽은 르네상스라는 이름의 컨소시엄이다. 이들에게 먼저 13억 달러를 받고, 셸이 자회사에서 받아야 할 돈 11억 달러도 매각이 완료된 뒤 컨소시엄쪽으로부터 모두 받기로 했다. 그러면 셸이 챙기게 되는 돈은 총 24억 달러,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SPDC의 순자산가치가 약 28억 달러라 하지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Africa News] Shell will sell big piece of its Nigeria oil business, but activists want pollution cleaned up first

매각될 자산에는 육상 유전 15곳과 연근해 얕은 바다 3개 유전이 들어 있다. 물론 이 자회사 자산을 온전히 셸이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나이지리아 국영 석유회사(NNPC) 지분이 55%였고, 나머지 지분도 프랑스 토탈에너지와 이탈리아의 에니(Eni) 등으로 쪼개져 있었다. 다만 운영권은 셸이 갖고 있었다. 서방의 거대 에너지회사들이 나이지리아의 에너지 자원 개발권 나눠갖고 있는 현실, 나이지리아가 이를 점점 국가 소유로 바꿔온 과정을 보여주는 지분구조다. 반면에 인수자인 르네상스 컨소시엄은 현지 색이 확연히 짙다. ND웨스턴과 아라델 에너지 등 나이지리아 기업 4곳이 주요 멤버들이고 외국 자본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페트롤린 하나만 들어가 있다.

셸과 나이지리아 관계는 1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영국 라이벌 BP와 함께 벤처를 설립했고 2년 뒤 나이지리아 육상에서 석유를 탐사할 수 있는 최초의 탐사 면허를 받았다. 1956년에는 니제르 델타의 바옐사 주에서 나이지리아 최초의 유정을 시추하는 데 성공했다. 나이지리아의 석유 역사 자체가 셸과 엮여 있는 셈이다. 셸은 1970년대 말 합작회사에서 BP 지분을 사들인 뒤 이번에 매각하기로 한 SPDC를 만들었다. 이 회사를 팔아넘기는 것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근 100년 나이지리아 석유 산업의 중심에 있었던 회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Protesters gather outside the high court in London in July over Shell oil spills in the Niger delta.  Photograph: Vuk Valcic/Zuma Press Wire/Shutterstock

 
그 100년 가까운 채굴 역사 동안 기름 유출에 따른 토착민들의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른바 '오고니랜드 사건'은 거대 에너지회사가 개도국에서 저지른 환경 파괴의 대명사다. 오고니 부족민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셸은 1970년대부터 기름을 누출했다. 1976년부터 15년 동안 기름 누출사고가 3000건 가까이 일어났다. 환경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끔찍할 정도로 망가졌다.
 
켄 사로-위와, 석유와 싸우다 죽다
 
오고니족 활동가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셸은 나이지리아의 당시 군사독재 정부를 부추겨 처형하게 했다. 세계적으로 구명운동이 일어났으나 9명이 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끝내 처형됐다. '오고니 나인(9)'으로 불리는 이 희생자들 가운데 하나였던 시인 켄 사로-위와는 죽기 전 "우리는 역사 앞에 서 있습니다. 감금도, 죽음도 우리의 궁극적인 승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알자지라] Timeline: Half a century of oil spills in Nigeria’s Ogoniland

유족들은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소송을 걸었다. 셸은 책임을 부정했지만 2001년 그린피스가 자료를 공개했다. 셸이 군사정권의 환경운동가 체포에 헬기까지 내주며 관여했다는 증거 자료였다. 여러 소송에서 셸은 패소하거나 합의금으로 무마했다. 하지만 사로-위와가 예언한 역사적 승리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2011년 유엔 조사 보고서는 셸과 나이지리아 정부가 오고니랜드의 오염에 책임이 있다면서 "지역을 정화하는 데에 길게는 30년, 비용도 10억 달러 이상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Oil from a leaking pipeline burns in Goi-Bodo, a swamp area of the Niger Delta in Nigeria October 12, 2004 [Austin Ekeinde/Reuters]

 
셸이 육상 채굴을 포기하기로 한 데에는 이 소송을 비롯해 아직도 걸려 있는 여러 소송들이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니제르 델타의 오갈레 지역 등에서 1만3000명 농부와 어부들이 셸의 오염행위에 대해 영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셸은 나이지리아 사건을 영국으로 가져오는 것에 반발하며 소송 자격을 문제삼았지만 작년 11월 런던 고등법원은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뿐 아니라 현지 주민들이 송유관을 공격하는 등의 사보타주도 많았고, 현지 무장세력들의 공격과 유조선을 노린 해적들까지 기승을 부렸다.
 
[가디언] Shell to face human rights claims in UK over chronic oil pollution in Niger delta
 
이제는 득보다 실이 많아진 셸은 그래서 현지 법인을 팔아버린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계약을 마무리하려면 나이지리아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사실 셸이 매각 방침을 처음 발표한 것은 3년 전인 2021년이었다. 이듬해 나이지리아 법원은 니제르 델타의 환경 피해 보상과 관련된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각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역시 원유 누출이 문제였다. 2019년 또 기름이 흘러나갔고 셸은 주민들에게 무려 19억5000만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고 항소했다. 이 재판이 끝나야 매각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법원이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올초 대법원이 매각 절차는 밟을 수 있다고 허가해줌으로써 르네상스와의 계약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완료되려면 정부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보팔에서 톈진까지, 환경재앙의 역사
 

니제르 강.


현지 정부와 주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외국 기업들이 환경 파괴로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 뒤, 지분을 팔고 떠나버리는 사태다. 셸은 리버스 주 남부에서도 이달 초 기름 누출 사고를 일으켰다. 현지언론 뱅가드 등에 따르면 환경단체들은 나갈 때 나가더라도 먼저 모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셸이 환경 피해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부가 매각 승인을 보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뱅가드] Shell must clean up devastating oil spills in Niger Delta, compensate the people before exit, Group tells Tinubu
 
셸은 2020년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 에너지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선언했다. 또 자회사 매각 때 "외부 컨설턴트를 고용해서 환경 및 사회적 기준을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육상부문만을 팔겠다는 계획은 그리 책임감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땅 위의 사업을 팔고, 그 대신 심해 채굴과 가스 생산에 전념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높고 '원주민 문제'가 없는 기니만 심해 사업, 산업용 가스 사업, 산업 활동을 위한 태양광 발전 등 최소 3개의 자회사를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그래서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은 더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이지리아에 매장된 석유는 370억 배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유량 기준 세계 10위다. 셸의 매각계획은 거대 에너지기업이 맞닥뜨린 탈탄소 압력, 개발의 이익을 자기들 것으로 만들려 하는 자원 보유국들의 정책 변화, 갈수록 커져온 주민들의 목소리와 환경 정의 등과 맞물려 있다. 1990년대 평화적으로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민주화의 길로 나선 이래로 나이지리아 정부는 자원 수익을 늘리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왔다. 자원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이 갖고 있던 채굴권을 현지 기업들로 이전시켜온 것이다.
 
[유엔 환경계획] Environmental assessment of Ogoniland: Site Factsheets, Executive Summary and Full report
 
2010년 전후해서 서방 기업들의 철수가 시작됐다. 특히 최근 몇년 새 거대 에너지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셸의 이번 매각 합의가 가장 규모가 크지만, 다른 기업들도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1950년대에 나이지리아에서 사업을 시작한 미국 엑슨모빌도 2년 전 니제르 델타의 석유 사업을 12억8000만 달러에 팔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역시 규제 당국이 재검토를 요구하면서 아직 거래를 완료하지는 못했다. 이탈리아의 에니, 노르웨이의 에퀴노르, 중국의 아닥스 등이 지난 3년 새 나이지리아 자산을 팔겠다고 발표했다.  

나이지리아 석유산업이 내리막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석유 생산량은 2020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작년에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자리를 앙골라에 빼앗겼다. 나이지리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은 아니지만 '오펙+'라는 이름의 협의기구를 통해서 산유량을 결정한다. 코로나19 영향이 있기는 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나이지리아는 정해진 쿼터도 채우지 못했고, 델타 지역의 투자가 부족해 목표치를 달성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았다.
 

This file photo taken on May 18, 2005 shows Shell Oil's oil and gas terminal on Bonny Island in southern Nigeria's Niger Delta. (AFP)

 
하지만 여전히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자원은 나이지리아에는 중요한 돈줄이다. 석유를 팔아 버는 돈의 비중이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국내총생산(GDP)의 5~6%를 차지한다. 그래서 정부와 현지 언론들은 셸의 자산매각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어쨌든 이제 식민시대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2021년 사이에 외국 기업의 주요 자산 매각이 26건이었는데 그 중 한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요 외국기업에서 현지 기업으로 채굴권이 넘어갔다. 2023년 기준으로 나이지리아 국내 기업이 석유 면허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외국 석유 메이저 기업은 47%를 갖고 있다. 비영리기구 '이해관계자 민주주의 네트워크'에 따르면, 셸의 매각이 끝날 경우 나이지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자국 기업이 외국 기업보다 더 많은 석유개발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나이지리아에서 셸의 비중이 줄어든 것이 오히려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도 보인다. 현지 기업들이 기름 유출 사고에 쉘보다도 오히려 대응이 느렸고, 석유 추출 과정에서 생산된 여분의 천연가스를 태우는 ‘가스 플레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도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계속 환경기준을 높일 것이고 에너지 관리와 기후대응을 위한 제도를 정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환경과 개발, 에너지 자원과 탈탄소, 식민주의와 자립. 그 사이를 헤쳐온 나이지리아의  도전은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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