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웅 만들기'의 끝은 어디인가.
미국 프로미식축구(NFL) 스타 출신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숨진 팻 틸먼(사망 당시 27세.사진)을 둘러싸고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미 국방부가 뒤늦게 진상규명에 나서기로 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국방부가 조사위를 설치해 틸먼 사망원인을 재조사하기로 했다고 5일 보도했다.
프로미식축구팀 애리조나 카디널스에서 뛰었던 틸먼은 지난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자 360만달러를 주겠다는 팀 제의를 거절하고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제75레인저스 특수부대원으로 근무하다가 2004년4월 숨졌다.
육군은 틸먼이 교전 도중 적군의 총격으로 전사했다고 발표했으나, 틸먼 사망 직후부터 적군의 총탄이 아닌 미군 동료병사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틸먼의 부모는 아들이 숨진 이유를 알려달라며 육군에 조사를 요구했다. 틸먼은 조사결과 탈레반이 아닌 미군의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가 재조사를 결정한 것은, 그의 사망을 놓고 의혹이 가라앉기는커녕 `사실상의 살인'이었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기 때문. 뉴욕타임스는 "이번 조사는 범죄행위가 있었는지를 가리기 위한 것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육군은 지난 2년간 3차례나 틸먼 사건을 조사해 동료 병사 7명을 징계했지만 형사책임을 묻지는 않았었다.
틸먼 사건은 미국의 `영웅만들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미국 언론들은 그가 입대할 때부터 "돈이 아닌 조국을 택한 영웅"으로 한껏 띄웠다. 그가 숨지자 백악관은 곧바로 애도 성명을 발표했으며, 장례식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공화당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TV로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장례식에서 동료 군인은 "틸먼은 집중 포화 속에서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는 조사를 읽었고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틸먼에겐 훈장이 추서됐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6월 틸먼이 `우호적인 사격(friendly fire)' 즉 동료병사들의 총격에 숨졌다고 폭로했다. 틸먼은 동료들이 사격을 가해오자 적군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손을 흔들며 신호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으며, 동료 병사들이 사건의 진상을 숨기기 위해 피묻은 틸먼의 군복을 태우는 등 현장을 조작한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다.
미군은 2003년4월 이라크 나시리아에서 "적군에 구금돼 고문을 받던 여군 병사를 치밀한 작전으로 구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제시카 린치 일병 구하기' 사건은 그러나 린치 본인의 증언을 통해 터무니없는 과장임이 밝혀졌다. 린치는 교통사고로 다쳐서 이라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틸먼 사건은 린치 일병 사건과 함께 국방부와 언론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전쟁영웅 만들기'로 꼽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