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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제약사들 '안전서약'에도 '백신 불안' 여전한 이유는

딸기21 2020. 9. 10. 13:51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 화이자 등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제약회사 9곳이 8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백신 승인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안전서약’을 발표했다.  로이터·AFP

 

코로나19 백신 후보로 유력했던 ‘옥스포드 백신’의 임상시험이 중단됐다. 백신 부작용 가능성 때문이다. 주요 백신 개발사들이 ‘안전서약’까지 했지만 속도경쟁은 여전히 치열한데다, 무엇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대선 전 발표를 목표로 속도전에 채찍질을 하고 있다. 과열 경쟁이 안전성을 볼모로 잡은 꼴이다.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는 8일(현지시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옥스포드대와 함께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에 대한 미국 내 3상 임상시험을 일시 중단했다. 앞선 임상시험에서 항체형성 효과가 확인된 이 백신은 지난달 31일부터 영국, 미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종 시험인 3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백신을 적용받은 영국의 참가자 한 명에게서 이유가 확인되지 않은 심각한 질환이 발견돼 일단 미국 내 시험을 중단했으며 다른 지역의 시험도 보류할 것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주의 깊게 점검하기 위해 시험을 중단하고 조사하고 있다”고만 밝혔으나, 백신에 의한 부작용일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무역서비스박람회(CIFTIS)에서 백신 개발회사 시노백의 부스에 회사 직원이 코로나19 백신 개발현황을 알리는 홍보물을 놓고 있다.  로이터

 

아스트라제네카와 바이오엔테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존슨&존슨, 머크, 모더나, 노바백스, 화이자, 사노피 9개 제약사는 3상에서 유효한 결과를 거둘 때까지는 백신을 승인받지 않겠다며 8일 안전서약을 했다. 지나친 경쟁으로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백신이 시판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모더나 등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서약서에서 이 회사들은 “접종받는 사람들의 안전을 최우선에 둘 것이며 과학적 절차를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제약사들은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 대규모 임상시험을 수행할 능력, 개발된 백신의 생산 능력 등”에 여러 위험과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과학적 절차’와 ‘규제’를 준수할 것을 강조한 이 선언은 개발 시기를 앞당기라고 강요하는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해석했다.

 

하지만 이런 서약에도 속도경쟁에 따른 안전성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이 공식 등록됐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보건부 산하 가말레야 국립미생물연구센터는 국부펀드의 투자를 받아 국방부 산하 연구소와 함께 개발한 이 백신에는 ‘세계 최초’임을 강조하듯 세계 최초 인공위성의 이름을 딴 ‘스푸트니크V’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이 백신은 38명을 대상으로 2단계 시험만 한 상태에서 승인돼 논란을 불렀다.

 

영국 체셔의 매클스필드에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공장.  AFP

 

제약사들의 서약에 참여하지 않은 중국 칸시노는 3상이 끝나기 전에라도 긴급 사용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외국 정부들과 협의 중이다. 칸시노와 함께 백신을 개발해온 중국 과학자 천웨이(陳薇) 군사의학연구원 생물공정연구소장은 방역 공로를 인정받아 8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 코로나19 방역 표창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으로부터 ‘인민영웅’ 칭호를 받았다. 중국의 또다른 백신회사 시노백은 아직 승인도 받지 않은 백신을 직원들에게 접종한 사실이 알려져 우려를 샀다. 화이자와 손잡은 독일 바이오엔테크는 안전서약에 동참했지만, 이 회사 최고경영자 우구어 자힌은 CNN 인터뷰에서 “10월 중순~11월 초 백신을 승인받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바이오엔테크 측은 올해 말까지 자사 백신 1억회 투여분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전에 백신 개발을 발표하기 위해 속도전에 채찍질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11월 1일 이전에, 10월에 백신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고 7일에도 “매우 특별한 날 이전에 백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말 미 식품의약국(FDA) 스티븐 한 국장은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하며 “3상 완료 전에라도 긴급승인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을 ‘옥토버 서프라이즈’, 미국 대선 직전의 깜짝뉴스로 발표할 삼으려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대선 전에 의료진과 고위험군에 백신을 배포할 준비를 하라고 주 정부들에 통보하기까지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코로나19 방역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인민영웅 메달을 수여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맨 왼쪽의 천웨이 군사의학연구원 생물공정연구소장은 중국 제약회사 칸시노와 함께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신화

 

하지만 미 보건당국 관리들에게서조차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말들이 흘러나온다. 백악관의 백신개발 프로젝트인 ‘워드 스피드 작전’ 책임자 몬세프 슬라위는 지난 3일 공영라디오방송(NPR)에 출연해 대선 전 백신 승인을 마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GSK 백신 개발 책임자 출신인 슬라위는 5월 중순 워프 스피드 작전에 투입되기까지 모더나 이사로 일했던 백신 전문가다.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그룹을 이끄는 래리 코리 박사도 슬라위의 말에 동조하며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8일 자료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34종의 백신 후보물질이 개발 중이고 그 가운데 최소 8종이 3상에 들어갔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에서 3만명의 자원자를 대상으로 시험 중이었고, 백신 개발 호재로 주가가 치솟은 미국 모더나도 역시 3만명을 대상으로 7월 27일부터 시험을 시작했다. 바이오엔테크와 화이자가 공동개발한 백신도 같은 날부터 시험에 들어갔으며 10월 중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중국의 시노백과 칸시노 등도 6월 말과 7월 초에 2상 시험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발표한 뒤 3상에 돌입했다. 중국 시노팜은 우한생물학연구소, 베이징생물학연구소와 함께 2종의 후보물질을 시험하고 있다. 얀센도 3상이 중이고 러시아 가말레야 백신은 이미 정부 승인까지 받았다. 이밖에 인비오, 노바백스, 사노피-GSK, 존슨&존슨, 머크, 런던임페리얼컬리지팀, 악투루스 등이 임상시험을 하고 있거나 준비 중이다.

 

임상시험 3상에 들어간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목록.  세계보건기구(WHO)

 

그러나 3상이라 해도 모두 1상과 2상을 단계적으로 거치는 것은 아니다. 통상 신약이나 백신을 개발할 때 동물을 상대로 시험하는 ‘전임상’을 통해 효과가 확인되면 소규모로 인체 대상 1상을 진행해 안전성을 평가한다. 2상에서는 이를 300명 정도 규모로 확대한다. 하지만 1상과 이상을 합쳐 1/2상을 한번에 하기도 한다. 3상에서는 시험 규모를 더 대규모로 늘리고, 백신과 위약을 나란히 접종하는 ‘무작위 이중맹검’ 방식으로 진행한다. 코로나19의 전례없는 확산 속에 백신 개발에 경쟁이 붙다 보니 절차를 단축시키는 경우가 있고, 시험 중 나타난 부작용이 경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장 빨리 3상에 들어간 백신 후보라 해도 내년 여름 이후에나 시험이 완료돼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임상이 종료되기 전 ‘중간 분석결과’를 가지고 제약사들이 승인을 받으려 하고 있지만, WHO는 4일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백신의 출시를 승인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우리는 효과가 낮고 안전성이 떨어지는 백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