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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교황이 무슨 죄…'코로나 방역' 반대하는 극우파들

딸기21 2020. 9. 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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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에서 5일 시위대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봉쇄에 반대하는 ‘자유의 날’ 행진을 하고 있다.  EPA

 

세계의 코로나19 감염자 6일 오전 현재 2700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90만명에 육박한다. 그러나 주말 새 호주, 영국, 이탈리아 등 곳곳에서 코로나19 봉쇄와 마스크착용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한동안 수그러지는 듯했던 감염증이 7월 이후 다시 퍼지고 있는데, 극우파와 음모론자들이 주축이 된 이런 시위들이 재확산에 기름을 붓고 있다.

 

5일(현지시간) 호주 곳곳에서는 ‘록다운(봉쇄)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10여명이 체포됐다. 멜버른에서는 300여명이 방역조치에 항의하며 행진을 했고 시드니, 브리스번, 애들레이드, 퍼스 등 대도시들에서 비슷한 항의시위들이 잇따랐다. 전날 스콧 모리슨 총리는 전국 8개 주·영토 가운데 7곳에서 12월까지 ‘주 내 이동’을 허용할 수 있을 것이면서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 몇년 동안 이렇게 살아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봉쇄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말이 일부 주민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멜버른의 시위대는 미국 흑인들의 구호를 본뜬 ‘인권도 중요하다’는 구호와 ‘자유’를 외치며 행진을 했다.

 

6일까지 호주의 코로나19 감염자는 2만6000여명이고 사망자는 750명에 이른다. 3월말~4월초 환자가 급증하다가 한동안 진정세를 보이더니 7월 중순부터 다시 급속 확산되고 있다. 특히 멜버른이 있는 빅토리아주의 감염자는 2만명에 육박한다. 전국 감염자의 70%와 사망자의 90%가 빅토리아주에서 나왔다. 7월부터 6주째 주 전역의 학교들은 원격수업을 하고 대부분 사업장들이 문을 닫고 모임도 금지하는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 중이다. 당초 주 정부는 이달말까지 4단계를 유지한다고 했으나 abc방송에 따르면 10월 중순까지 봉쇄가 이어질 수도 있다. 스코트 앤드루스 주 총리는 이런 상황에서 시위가 벌어지자 “안전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은 짓”이라며 시위대를 비판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5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일주일 전 벌어진 ‘마스크 반대’ 시위에 동조하는 극우파들이 거리로 나와 방역 반대 시위를 했다. 이들이 붙인 현수막에 ‘아이들을 잔인한 보건독재로부터 해방시키자’ ‘미디어는 진실을 부장하고 현실을 도둑질해가는 가짜뉴스 생산부처다’ ‘세계의 자유를 위해 이탈리아는 베를린과 함께 한다’고 쓰여 있다.  AFP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5일 1000명 이상이 모여 마스크 착용과 백신접종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극우 정당인 포르차누오바(Forza Nuova·새로운 힘)와 백신 반대론자들이 거리로 나와 ‘정부의 보건 독재’를 비난했다. 일부 시위대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악마로 묘사하기도 했다. 바티칸은 명목상 독립국가이지만 로마가톨릭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휘 아래 이탈리아 정부의 방역조치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교황은 다음달 코로나19 봉쇄 뒤 처음으로 로마를 떠나 자신의 이름을 따온 프란치스코 성자가 살았던 아시시를 방문할 계획이지만, 이 방문에서도 신자들과는 접촉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 3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봉쇄’로 국경을 모두 막고 경제활동도 사실상 전면 중단시켰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전염병 확산을 눌렀는데 역시 최근 다시 확진자가 늘고 있다. 4일부터 5일 사이 2000명 가까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특히 여름 휴가철을 맞아 경계심이 줄어들면서 감염이 다시 번지고 있다. 막말과 스캔들로 유명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도 최근 유명 휴양지 사르데냐 섬에서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다.

 

이탈리아 극우파들은 봉쇄가 다소 누그러진 6월부터 거리로 나와 산발적으로 시위를 했고 일부는 폭력적인 충돌로 치닫기도 했다. 주세페 콘테 총리는 “코로나19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로마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이 질병으로 3만5000명이 넘게 사망했다”며 시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5일 ‘방역 반대 시위’에 나온 남성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에 ‘교황은 악마’라고 쓴 포스터를 들고 있다.  AFP

 

영국에서도 주말 시위가 계속됐다. 지난주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극우파들이 집회를 한 데 이어 5일에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와 중부 도시 셰필드 등에서 “록다운이 바이러스보다 더 나쁘다”며 몇몇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영국은 이날까지 코로나19 감염자가 34만명에 이르고 사망자도 4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시위대는 마스크와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며 정부를 비난했다.

 

세계 곳곳에서 ‘방역 반대 시위’를 주도하는 극우파는 거리두기와 마스크,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것이 ‘보건을 빙자한 독재’이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위나 방역 요원들에 대한 공격과 맥을 같이 한다. 최근 몇 년 새 미국과 유럽에서 목소리를 키워온 극우파들이 팬데믹을 국가 기구에 대한 공격의 또 다른 빌미로 삼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지난주 독일이나 이번 이탈리아 시위를 이런 극우파나 극우정당들이 이끌었다. 지난달 29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에 결집한 시위대는 정부의 방역이 헌법상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내세운 시위에 ‘독일 제국의 부흥’ ‘우리가 국민이다’ 같은 구호들과 함께 나치 독일 국기들이 등장했다. 로마의 시위현장에는 ‘이탈리아는 독일과 함께 한다’라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독일의 방역 반대 시위에 동조한다는 뜻이지만, 나치와 협력한 이탈리아 파시즘 체제 때를 연상케 한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의사당 앞에 5일(현지시간)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모여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고 있다.  AP

 

여기에 더해 구미에 근래 많이 퍼진 ‘백신 음모론’을 비롯한 온갖 음모론과 비과학적인 주장, 가짜뉴스들이 판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런던 시위에서는 세계보건기구(WHO)나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미국의 빌 게이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른바 ‘안티 백서(anti-vaxxer)’ 즉 백신 반대론자들이다. 5일 에딘버러 행진을 주도한 ‘스코틀랜드를 구하라’라는 모임도 음모론과 관련된 단체로 보인다. 이들이 내세운 선전 중에는 “진정한 과학적 증거들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됐다”는 내용 등이 들어 있다고 BBC는 전했다.

 

셰필드 시위는 기상캐스터 출신 사업가인 피어스 코빈이라는 사람이 주도했다. 정부 방역지침을 어겨 지난번 런던 시위 때 이미 1만파운드 벌금형을 받은 사람이다. 제러미 코빈 전 노동당 대표의 동생이지만 형과는 정치적 색깔이 다르다. 피어스 코빈은 “기후변화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해왔고 1995년부터 ‘웨더액션’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기후변화 대응에 반대하는 운동을 해왔다. 미국에서 2000년대 조지 W 부시 정부 때 기세를 올렸던 ‘기후변화 스핀(음모론)’ 진영이나 최근 부상한 온라인 음모론 집단 ‘큐어넌(QAnon)’과 상통한다.

 

스코틀랜드 보건책임자 제이슨 라이치는 이런 이들의 주장에 대해 “194개국에 팬데믹이 퍼졌는데 시위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며 “너무나 무책임한 짓이고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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