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자민당 내 주요 파벌들의 지지를 굳혀 차기 총리로 유력시된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망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은 국민 지지가 높지만 자민당의 파벌 구조라는 장벽을 넘기 힘들어 보인다. 다만 스가 장관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후임이 되더라도 잔여임기 1년의 ‘과도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 일본 내에서나 한일관계에서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당은 1일 총무회를 열어 총리 선출 방식과 일정을 확정했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상 등 중견·신진 의원들이 반대했지만, 중·참의원 양원 총회만으로 새 총재를 뽑기로 했다. 14일 투표로 새 총재를 뽑고, 16일 임시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할 계획이라고 NHK방송은 전했다.
의원과 당원 표를 동수로 하는 정식 투표와 달리 이번엔 중·참의원 의장을 뺀 의원 394명에 지역별 당원 대표 총 141명만 투표권을 갖기 때문에, 시민들이나 당원 지지도는 높지만 당내 기반이 약한 이시바 전 간사장에겐 매우 불리하다. 요미우리,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들은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를 비롯해 현역 의원 내 지지세력이 60%에 달한다며 스가 장관이 후임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호소다파는 전날 간부회의를 열어 ‘스가 지지’로 방침을 정했고, 이어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이끄는 아소파도 스가 장관에게 표를 던지기로 했다. 호소다파 회장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전 간사장은 “아베 내각의 계승”을 기자들 앞에서 강조했다.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이끄는 니카이파도 스가 장관 쪽에 섰다. 세 파벌 의원이 자민당 전체 의원의 절반이 넘는다.
스가 장관은 2일 공식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스가 총리’가 당연시되면서 엔화 상승 등 시장도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잔여임기가 1년으로 짧고 존재감도 약할 것으로 관측된다. 자민당에서 양원 총회로 총재를 정한 것은 4번뿐인데, 2001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외에는 모두 조기 퇴장했다. 스가 장관 역시 과도기형 총리가 돼 내년 총선 관리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역사인식이나 개헌 문제 등에서 아베 총리의 복사판인데다 단명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 한일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시바 간사장은 1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자민당 총재 선거에 도전한다고 밝히면서, 양원 총회를 진행되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번이 4번째 도전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31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34%가 넘는 지지율로 차기 총리 선호도 1위를 기록하는 등 유권자 상대 조사에서는 늘 선두이지만 자민당의 파벌 구조를 깨뜨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파벌구조는 자민당의 일당 독주를 중심으로 한 일본 ‘1955년 체제’의 시작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자유당과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의 일본민주당이 ‘보수 대통합(保守合同)’을 하면서 거대정당 자민당이 탄생했다. 자유당 계열은 ‘보수 본류’, 민주당 계열은 ‘보수 방류’가 된 것이 파벌의 시초다. 1970년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 시절의 ‘목요클럽’은 한때 구성원이 110명에 이르렀다. 다나카파는 ‘록히드 스캔들’로 타격을 받았으나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시절까지도 계속 영향을 미쳐 ‘다나카소네’라는 말까지 나왔다.
현재의 파벌은 8개인데 제일 큰 것은 의원 98명의 호소다파다. 전범으로 수감돼 있던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풀려나면서 끌어모은 정치인들이 이 파벌의 출발점이었다. 1962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가 ‘세이와(淸和)정책연구회’를 출범시키며 공식화했다. 1970년대 총리를 지낸 후쿠다에 이어 회장을 맡은 사람이 아베 총리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였다. 고이즈미 전 총리와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도 이 파벌이었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과 밀접하며 감세를 주장하고 야스쿠니 참배를 지지한다.
그 다음으로는 시코카이(志公會·아소파) 56명, 평화연구회(다케시타파) 54명, 고치카이(宏池會·기시다파) 47명, 시스이카이(志帥會·니카이파) 47명 순이다. 스이게쓰카이(水月會·이시바파)는 19명, 근미래정치연구회(이시하라파)는 11명으로 규모가 작다. 기시다파의 기시다 정조회장도 1일 출마를 선언했다.
여러 계열이 이합집산해 만들어진 아소파는 지난해 선거에서 기시다파가 부진을 면치 못한 사이에 당내 영향력을 키웠다. 현재 중의원·참의원 의장을 모두 아소파가 맡고 있다. 다나카파에서 갈라져나온 다케시타파는 좌장인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총리가 1980년대 말 리크루트 스캔들로 물러난 뒤에도 인사와 자금 양면에서 자민당을 지배했다. 1990년대 사가와규빈 스캔들, 신생정당 창당 흐름을 주도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의 반란 등을 겪었으나 여전히 당내 주요 세력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다케시타 전 총리의 동생인 다케시타 와타루(竹下亘)가 이끌고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의원이 되기 전에 자민당 역대 최강 파벌로 꼽히는 다나카의 목요클럽에서 정치에 입문했다. 하지만 이후 파벌정치에 반발했고 당과 다른 견해로 한 차례 탈당했다가 복당했다. 자기 파벌의 세력이 작아 다케시타파에 구애하고 있으나, 판세를 뒤집기는 힘들어 보인다.
중선거구제 시절 자민당은 한 선거구에 복수 후보를 냈기 때문에 파벌 간 경쟁이 다른 정당과의 경쟁보다 더 치열했다. 파벌을 통해 정치 신인들이 ‘후원자’ 밑에서 기반을 닦고 안정적인 집권체제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부패로 엮이고 권력을 나눠먹는다는 비판도 거셌다. 파벌을 흔들려는 움직임도 없지 않았다. 2005년 중의원 선거 때 이른바 ‘고이즈미 칠드런’들이 대거 의회에 입성했다. 고이즈미 당시 총리는 이들의 파벌 입회를 일시적으로 막고 당 차원의 정치교육을 추진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아베 총리도 2012년 2차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정당 횡단형 연합’이라는 명분으로 ‘창생 일본’이라는 초당파 의원 모임을 결성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과거 ‘무파벌 모임’을 이끌었다. 지금도 ‘무파벌’ 의원이 60여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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