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UFO를 믿는 국방장관? 이시바 시게루와 '수월회'

딸기21 2020. 8. 30. 13:04

일본 여론조사에서 ‘포스트 아베’ 차기 총리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AFP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일본 정국이 어디로 흘러갈 지 알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오리무중’인 기간이 길어질 것 같지는 않다. 다음달 19일부터 일본은 나흘 간 연휴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인 15일 전후로 자민당이 다음 총리가 될 새 총재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30일 자민당이 연휴 전에 임시국회를 소집해 새 총리를 선출하고 내각을 출범시키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전날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국회대책위원장 등과 만나 의견을 나눴고 9월 1일쯤 총무회에서 총재 선출방식을 정하기로 했다. 당원투표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전당대회 대신 중의원·참의원 양원 의원총회에서 뽑기로 당 지도부가 가닥을 잡았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이렇게 되면 양원 의장을 제외한 의원 394명과 각 도도부현(일본 행정단위) 대표 3명씩 총 141명을 더해 535명이 투표를 하게 된다. 의원 숫자와 당원 숫자를 대등하게 하는 통상적인 총재 선거 때보다 의원투표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현재 차기 총리로 국민들 선호도가 가장 높지만 당내 기반이 약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에게 불리한 수밖에 없다. 2년 전 총재 선거 때 이시바는 당원투표에서는 아베를 바짝 뒤쫓았으나 의원 표에서 아베가 4.5배를 받아 밀렸다.

 

돗토리(鳥取)현 지사와 참의원 의원을 지낸 아버지 밑에서 자란 2세 정치인인 이시바는 방위상과 농림수산상 등의 각료를 역임했다. 게이오대 법학과를 나왔고 토론에 능하다. 1979년 미쓰이은행에 들어갔으나 1981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아버지 친구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로부터 정계 입문을 권유받았다. 은행원 생활을 4년만에 청산하고 1983년 다나카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86년 당시 28세 전국 최연소 의원으로 중의원에 입성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8일 사퇴 발표 기자회견을 한 뒤 연단을 떠나고 있다.  도쿄 신화연합뉴스

 

1988년 일본 정국을 강타한 부패사건인 리크루트 스캔들이 터져나오면서 내각 붕괴로 이어졌다. 자민당 내 다나카파에서 시작해 나카소네파, 와타나베파로 옮겨다니던 이시바는 이 국면에서 다케무라 마사요시(武村正義),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등과 함께 정책연구그룹 ‘유토피아정치연구회’를 결성했다. 이시바와 당시의 동지들은 대부분 자민당을 탈당해 신당 사키가케, 신생당 등으로 이동했고 하토야마는 이후 민주당의 첫 총리가 되기도 했다. 이시바는 1993년 자민당 소속임에도 돗토리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이후 당 주류에 맞서다 징계를 받고 탈당했다. 1997년 자민당으로 돌아왔지만 ‘탈당 전력’은 늘 당내 주류의 공격을 받는 빌미가 된다.

 

복당 뒤 그는 ‘신(新)국방족’을 자처하며 안보 전문가로 이름을 굳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 때 방위청 장관으로 입각해 이라크전 파병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2007년 아베 내각이 1년만에 퇴진하고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집권하자 청(廳)에서 성(省)으로 승격된 방위성의 수장을 맡았다. 당시 방위상으로서 자위대의 역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UFO(미확인 비행물체)나 외계 생명체가 없다고 볼 근거가 없다” “영화 <고질라>에서도 자위대가 파견되는데 법적 근거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다”고 발언해 화제가 됐다.

 

후쿠다 내각 역시 단명으로 끝나고 이어 출범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내각에서는 각료 대부분이 스캔들에 휘말린 것과 달리 농림수산상으로 무난히 임기를 마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자민당이 야당이 된 뒤부터 당권에 본격 도전했으나 아베에게 번번이 밀렸다. 2012년 두번째로 집권한 아베 총리가 안보법제를 총괄하는 장관직을 맡기려 했으나 본인이 거부했다.

 

자민당 차기 총재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이시바는 자위대의 기동력을 높이고 해병대를 만들어야 하며 안보법제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일본 평화헌법과 도쿄전범재판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고,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과거사 부정 발언에는 비판적이었다. 인도적·윤리적 관점이라기보다는 일본 국익을 위해 주변국을 자극해선 안된다고 보는 실리주의자다. 한일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지난해 8월에는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사실상 파기한 것에 대해 “우리나라가 패전 후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것이 여러 문제의 근본”이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을 거론하며 한일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적 견해와 개인 성향 때문에 자민당에서는 줄곧 소수파였고, 정치적 지지기반이 필요한 현실과 자민당의 파벌 구조 사이에서 늘 딜레마를 겪어왔다. 2012년 계파가 없는 의원들 중심의 ‘무파벌 연락회’를 주도했다. 2012년 총재 선거에서 아베 대신 이시바를 지지했던 사람들이어서 언론은 ‘이시바파’로 규정했지만 이시바는 부인했다. 2015년 아베가 다시 총재로 선출되자 이시바파로 분류되는 ‘수월회(水月會·스이게쓰카이)’를 공식 결성. 이시바 포함 20명이 이 모임으로 묶였다. 파벌을 비판해온 이시바의 지론과 일치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와 가깝던 의원들 몇몇은 불참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시바의 인기가 높지만 당내 8개 파벌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다. 다른 파벌들과 달리 이시바 개인과 끈끈하게 엮인 고정적인 멤버가 아니라 ‘무파벌’ 의원이 나타나면 편입되는 방식으로 구성원이 바뀐다. 환경상을 지낸 가모시타 이치로(鴨下一郞), 변호사 출신 8선 의원 이토 다쓰야(伊藤達也), 후생노동상을 지낸 다무라 노리히사(田村憲久) 등이 현 멤버다. 모두 중의원 의원들이며 참의원에는 45세 젊은 의원 마이타치 쇼지(舞立昇治) 의원 한 명뿐이다.

 

지난 15일 태평양전쟁 전범들이 합사된 도쿄 시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나오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개각 때 이시바 파벌은 모두 배제됐다. 아베는 물러났지만 그럼에도 이시바의 가장 큰 적은 역시 아베다. 다음달 중순 의원들을 중심으로 투표해 총재를 뽑는다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유리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스가는 아베와 정치 성향이 비슷하고, 아베 파벌 상당수는 스가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아베 스스로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을 후계자로 점찍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기시다의 파벌은 교도통신에 따르면 47명에 불과하다. 당을 장악한 스가가 새 총리가 된다면 내년 선거 때까지 자민당을 관리할 징검다리 내각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시바의 가장 강력한 우군은 오히려 파벌 밖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민당의 젊은 얼굴로 부상한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환경상은 2년 전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를 찍었다. 이달 들어 아베 사퇴설이 흘러나오자 고이즈미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당원투표를 강조했다. 아베 총리 사퇴 발표가 나온 28일에도 기자회견에서 “다음 총재가 누구든 당원 전체에게 투표 기회가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시바를 사실상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특정인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당원뿐 아니라 총재 선거 과정을 국민들도 공유해야 정치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차차기를 노리는 고이즈미가 이번 총재선거에서는 이시바를 지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