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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마약갱들의 살인극과 멕시코의 '신자유주의' 논쟁

딸기21 2020. 6. 9. 17:25

마약조직들의 살인극이 벌어졌던 멕시코 중부 과나후아토주의 이라푸아토에서 6일(현지시간) 경찰이 경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약갱과 신자유주의는 관계가 있을까, 없을까. 멕시코에서 때아닌 ‘신자유주의 논쟁’이 벌어졌다.

 

발단은 지난 6일(현지시간) 과나후아토 주의 이라푸아토에서 벌어진 살인극이었다. 마약갱들이 마약중독자 재활센터를 공격해 10명을 살해하는 등, 주말 내내 이 지역에서 34명이 폭력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과나후아토는 최근 몇 년 새 외국 자동차공장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멕시코 중부의 공업생산 기지가 되고 있다. 하지만 공장들이 늘어나고 돈이 몰리는 것과 함께 마약갱 조직들도 기승을 부린다.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이라는 이름의 전국 조직과,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산타로사 데 리마 조직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논쟁이 벌어진 것은 주말 살인극이 벌어진 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암로) 대통령이 ‘신자유주의’를 폭력사태의 배경으로 지목한 것이었다. 그는 8일 “과나후아토는 신자유주의 기간 동안에 연간 5%씩 경제가 성장했으며 투자가 늘고 자동차 공장들이 문을 열었다”고 운을 뗀 뒤 “하지만 그와 함께 살인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과거 우파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성장에 치중한 대신 안전과 평화를 잃었다는 뜻이다. 우파 국민행동당이 주 정부를 장악한 과나후아토는 멕시코 내에서도 살인률이 높다. 멕시코 인구의 5%가 사는 이 주에서 전국 살인사건의 13%가 일어난다.

 

멕시코 정부는 2007년 우파 펠리페 칼데론 정부 때부터 미국의 압박과 지원을 동시에 받으며 ‘마약갱과의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10만명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을뿐 폭력을 막지 못했다. 정부의 소탕작전이나 조직 간 경쟁에 따라 시날로아, 할리스코, 타마울리파스 등 갱단의 합종연횡이 이뤄졌을 뿐이다.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통해 미국·캐나다와 자유무역지대로 묶인 이래 멕시코는 미국에 종속된 생산기지가 됐다. 마약조직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 또한 북쪽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의 악순환을 부르는 소탕작전보다는 경제·사회적인 근본 처방이 중요하다고 암로 대통령은 주장해왔다. 그는 “폭력으로는 폭력을 이길 수 없다”면서 장기적인 사회교육, 직업훈련과 청소년 교육지원 등을 강조한다. 청소년들이 마약조직원이 되지 않도록 사회 기반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교육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유화 제스처가 당장 갱들에 먹힐 리 없다. 타마울리파스 지역에서는 마약조직들 간 싸움으로 지난 주말 ‘사제 탱크’ 5대가 불탔다. 마약갱들의 득세는 경찰의 부패와도 연결돼 있다. 부패한 지역 경찰들은 제각기 마약조직들과 결탁돼 있으며, 마약조직들이 경쟁 조직과 연계된 경찰을 살해하는 일도 많다.

 

마약갱 소탕작전에 미온적인 암로 대통령의 태도는 부패한 치안당국에 대한 불신과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부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남성이 경찰에 구타당해 숨진 일이 있었고, ‘멕시코판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라 불리며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엔리케 알파로 할리스코 주지사는 4일 과달라하라의 폭력 시위를 암로 대통령이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암로 대통령은 “증거를 제시하라”며 반발했다. 6일에는 “극소수의 특권을 지탱해주는 부패”를 비난하면서 온 국민이 “나라의 변화를 지지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고 유카탄타임스는 전했다.

 

멕시코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에서 6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남성을 구타·살해한 경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과달라하라 EPA연합뉴스

 

암로 대통령은 평등과 복지를 강조한 ‘신경제’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국가의 발전과 복지를 성장률로만 따질 수는 없다면서 ‘평화’도 계산하자고 했다. 현지 언론 엘우니베르살에 따르면 지난달 그는 생산성으로만 행복을 따질 수는 없다면서 “경제학자, 수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들과 함께 사회적 불평등의 정도와 행복을 측정할 지수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우파 정권 시절 경제와 사회 정책의 양대 축이었던 신자유주의와 마약갱 소탕작전 모두에 선을 그은 그의 정책이 멕시코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지는 현재로선 불확실하다. 2018년 11월 취임한 암로 대통령은 여전히 60%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하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만 바라보는 수출 공장들을 늘리는 것에 반대한다지만 암로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은 석유 수출을 늘리는 것에 있고, 코로나19를 빌미로 환경 규제도 후퇴하고 있다.

 

토목사업에 반대한다면서 취임 뒤 130억달러 규모 공항 건설 프로젝트를 중단했지만 지금 같은 침체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투입으로 경기를 부양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논란이 일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 등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