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풀리고는 있다지만 이탈리아는 여전히 ‘봉쇄 중’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전국이 두 달 가까이 마비됐고,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박물관들도 문을 닫았다. 바티칸광장은 텅 비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화상 강론’을 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미술팬들의 기대를 키우는 소식은 있다. 바티칸박물관의 문이 다시 열리면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라파엘로의 새 작품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르네상스의 3대 미술가’로 꼽히는 라파엘로 산치오는 1483년 이탈리아의 우르비노에서 태어났고, 1520년 길지 않은 생을 마칠 때까지 여러 지역을 돌며 건축·미술작품을 남겼다. 에피쿠로스·피타고라스·안티스테네스 등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모습을 그린 ‘아테네학당’, ‘라 포르나리나’라 불리는 젊은 여성의 초상화, 유명 은행가의 별장이던 파르네시나궁전에 그린 벽화 ‘갈라테이아의 승리’ 등이 특히 걸작으로 꼽힌다.
50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라파엘로의 ‘새 작품’이라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새 작품이 맞다. 라파엘로의 것으로 ‘공식’ 인정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5월 13일(현지시간) 바티칸박물관의 ‘콘스탄티누스의 방’에서 프레스코화 두 점을 공개했다. 정의와 우정의 미덕을 우화적으로 묘사한 그림에는 라틴어로 ‘유스티티아(정의)’와 ‘코미타스(우정)’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두 작품은 1520년 라파엘로가 숨지기 직전에 그린 것으로, 아마도 마지막 작품이었을 것이라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라파엘로는 피렌체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로마로 옮겨갔고, 율리오 2세 교황의 의뢰를 받아 오늘날 박물관으로 쓰이는 건물의 건축과 실내장식에 참여했다. 박물관의 여러 전시실 중 ‘콘스탄티누스의 방’·‘서명의 방’을 비롯한 여러 방은 라파엘로와 제자들이 그린 프레스코화들로 장식돼 지금도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두 그림은 각각 가로 18m, 높이 12m 정도인데 박물관 수리 중 발견돼 2015년 3월부터 5년여 동안 세심한 복원 과정을 거쳤다.
복원작업을 이끈 문화재 전문가 파비오 피아센티니는 2017년 현지 언론 <라스탐파> 인터뷰에서 “거장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고, 르네상스 미술 전문가들과 감정가들의 최종 확인을 통해 라파엘로의 작품으로 공식 인정받았다. 박물관 기술과학전문가 아르놀드 네셀라스의 설명에 따르면 라파엘로는 맨 벽에 먼저 로진이라 불리는 송진 비슷한 수지를 뿌리고 못으로 고정했다. 그 위를 회반죽으로 얇게 덮고 오일로 그렸다. 박물관의 기술과학전문가 아놀드 네셀라트는 “라파엘로는 이 방에서 직접 유화용 기름을 가지고 기법을 실험했다는 사실이 16세기 기록에 나와 있다”며 “그는 하나의 기법을 이해하고 나면 다음 도전에서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는 모험가였다”고 설명했다.
벽화들은 원래 라파엘로 사망 500주년을 맞아 4월 20일 국제콘퍼런스에서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취소됐다. 그래서 바르바리 자타 박물관장과 복원전문가 등 20여 명만 참석한 가운데 공개됐다고 바티칸뉴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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