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 있던 의료진 3명이 병원 창문으로 추락했다. 러시아에서 2주 새 일어난 일이다. 감염증은 퍼져가고 업무 스트레스는 치솟는데 지원은 부족한 현실이 만들어낸 의료진의 극단적 선택이었을까, 혹은 불행한 사고였을까. 아니면 ‘정치적’ 압박이 있었던 것일까.
모스크바타임스는 러시아에서 최근 의료진 3명이 병원 창문 바깥으로 떨어져 2명은 숨졌고 1명은 중태에 빠져 병원에서 치료중이라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조사에 나선 러시아 당국은 3건 모두 사고였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온갖 추측과 ‘설’들이 나돈다.
모스크바 남쪽 보로네즈라는 도시에서 응급의로 일하던 알렉산데르 슐레포프는 지난 2일 병원의 2층 창문에서 추락했다. 현지 지역방송들은 함께 근무해온 동료들의 말을 인용해 슐레포프가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은 뒤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던 것인지, 그랬다면 이유가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슐레포프가 극심한 압박감에 시달렸을 수 있다.
슐레포프는 양성 판정을 받은 지난달 22일 동료와 함께 동영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동영상에서 그는 ‘코로나19 확진을 받았음에도 병원 측이 의사 업무를 계속하라는 요구를 했다’고 주장했다. 슐레포프와 함께 영상을 찍은 동료 알렉산드르 코샤킨은 코로나19 대응을 해야 하는 의료진들이 보호구 등 방역장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폭로하는 동영상도 올린 적 있었다. 코샤킨은 그 일로 해서 ‘가짜뉴스를 퍼뜨린 혐의’로 경찰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슐레포프는 코샤킨과 함께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사흘 뒤에, 병원 측 관리자와 함께 다시 동영상을 찍어 업로드했다. 이번엔 말이 바뀌었다. 코샤킨이 “감정에 치우쳐” 있으며, 병원의 의료진들은 모두 방역장비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슐레포프는 병원 창문으로 뛰어내린 것으로 보인다. 코샤킨은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서 “슐레포프는 집중치료실(ICU)에 있었고 위중한 상태였다”며 추락한 이유에 의문을 제기했다.
앞서 1일에는 중부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 있는 병원의 의료책임자였던 의사 엘레나 네폼냐슈차야가 숨졌다. 지역 보건당국은 집중치료실에서 일주일 동안 근무한 뒤 그가 사망했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현지 언론 TVK크라스노야르스크 방송은 네폼냐슈차야가 지역 보건당국 관리들과 만나 병원을 코로나19 긴급대응시설로 전환하는 문제를 논의하던 중에 창문으로 뛰어내렸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그가 병원 내 보호장구 등 방역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응급시설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4일에는 모스크바 외곽 즈뵤즈드니 고로도크의 병원에서 응급의학 책임자 나탈랴 레베데바가 역시 추락사했다. 즈뵤즈드니 고로도크는 러시아 우주인들의 훈련기지로, ‘별의 도시’라는 뜻이다. 레베데바는 연방생물의학국 산하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코로나19 의심증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만 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CNN은 전했다.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장비 부족과 열악한 현실에 항의하는 의료진 시위가 일어나거나 코로나19에 감염된 의료진 사망이 잇따르고 있다.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러시아는 5일 현재 코로나19 감염자가 15만명을 향해 가고 있고, 사망자는 1300명이 넘는다. 특히 최근 며칠 새 감염자 수가 급격히 치솟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봉쇄조치를 오는 11일까지 2주 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모스크바타임스는 코로나19가 급속히 퍼지면서 러시아 의료체계에 심각한 부담이 되고 있으며, 의사와 간호사들이 24시간 이상 연속 근무를 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0일 모스크바 보훈병원에서 코로나19 감염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전염돼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2주 새 러시아에서 숨진 의사가 82명에 이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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