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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오지 마라" 국경통제 나선 EU…10년 새 3번째 '통합 시험대'

딸기21 2020. 3. 17. 16:04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16일(현지시간) 브뤼셀의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EU 국경폐쇄 제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브뤼셀 신화연합뉴스

 

‘열린 국경’으로 통합과 연대를 과시해온 유럽이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닫아걸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역외 국가들에서 오는 방문자들 입국을 막은 데 이어 역내 이동도 속속 제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EU 차원에서 ‘유럽의 국경’을 닫아걸 준비를 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16일(현지시간) 유랙티브 등 EU 방송들을 통해 중계된 회견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는 “여행이 적을수록 바이러스를 더 많이 억제할 수 있다”면서 주요7개국(G7)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들에 ‘EU로의 필수적이지 않은 여행’을 30일 동안 일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여행제한 기한은 필요한 경우 더 늘릴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역외에서 유럽으로 돌아오는 EU 회원국 시민들이나 EU 내 장기 거주자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U 정상들은 17일 화상회의에서 집행위 제안을 공식 논의한다.

 

힘 잃은 솅겐조약

 

로이터통신은 EU 관리를 인용해, 이 방침이 회원국과 솅겐조약 가입국들에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내에서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솅겐조약에는 EU 27개 회원국 중 22개국과 EU 회원국이 아닌 노르웨이·스위스 등 총 26개국이 들어가 있다.

 

16일(현지시간) 동유럽 라트비아의 그렝탈레 검문소에서 바라본 리투아니아. 두 나라 모두 유럽연합(EU) 회원국이지만, 리투아니아는 14일부터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통제를 시작했다.  그렝탈레 신화연합뉴스

 

EU는 반세기에 걸쳐 역내 국경을 허물고 ‘하나의 유럽’을 지향해왔고, 외부와의 관계에서도 개방성과 이동성을 핵심적인 정책이자 가치로 내세워왔다. 비상상황 때문이라 해도 이번 조치는 EU가 그동안 지향해온 틀을 크게 손상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출입국·이동제한은 10년 넘게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 경제에 다시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집행위는 회원국들의 이런 조치들에 반대해왔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출신국인 독일이 특히 신중한 대응을 주장해온 나라였다.

 

그랬던 집행위가 ‘국경 닫아걸기’에 나선 것은, 감염증 확산 정도와 범위가 예상을 훨씬 넘어서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이 극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회원국들 대부분은 벌써 출입국 통제를 시작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6일 TV 대국민연설에서 솅겐조약의 효력을 일시 중단시키고 EU 회원국 시민들의 입국을 막겠다고 했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앞서 국경을 닫아걸었고 독일조차 이날 오전부터 프랑스·오스트리아·스위스 등 5개국과의 국경을 막았다. 덴마크, 폴란드, 체코는 이미 독일쪽 국경을 폐쇄했다. 긴급한 물자는 오가지만 사람들의 왕래는 유럽 곳곳에서 이미 막혔다.

 

1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시내 셈피오네 광장이 텅 비어 있다.  로마 EPA연합뉴스

 

10년 새 3번째 ‘통합 시험대’

 

그러나 이제 와서 유럽과 바깥 세계 간 이동을 막는 것이 실효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과 한국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한 반면에 유럽은 새로운 진원지가 돼버렸다. 2만8000명 가까운 감염자가 나온 이탈리아를 비롯해 스페인,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전역의 확진자는 7만명에 육박한다. 게다가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지침에 ‘필수적인 상품·서비스의 이동’은 그대로 허용되기 때문에 방역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솅겐조약은 이미 무력해졌는데 ‘EU가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정치적 제스처를 취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회원국들이 ‘각자도생’에 나선 터에, 집행위의 노력이 EU 회생에 도움이 될 지는 불확실하다.

 

코로나19 대책에 대해 16일 기자회견을 하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솅겐조약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지적에 “그러길 바란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바랐던 협력이 어디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분명해졌다”고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10년 전의 금융위기, 5년 전의 이주민 위기에 이어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이 EU의 연대와 ‘EU가 시민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개념을 시험대에 올렸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