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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코로나19에 유가 폭락, 그럼에도 푸틴이 건재한 이유

딸기21 2020. 4. 3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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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근교 노보-오가료보의 관저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조치를 2주간 연장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TV연설을 하고 있다.  스푸트니크·신화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에 관해 28일(현지시간) 대국민 TV연설을 했다. 봉쇄조치를 다음달 11일까지 2주 더 연장한다면서, 다음달 중순부터는 조금씩 봉쇄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러시아의 감염자는 9만3000여명, 사망자는 800여명이다. 푸틴 대통령은 “확산이 아직 정점을 지나지 않았다”며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단계가 될, 새로운 단계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푸틴 대통령은 다음달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에 모스크바의 군용기 비행쇼와 불꽃놀이 등을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모스크바 붉은광장 군사행진과 전국 가두행진은 미루라고 지방정부들에 지시했다. 크렘린은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노보-오가료보의 관저에서 푸틴 대통령이 이날 연방 각 지방 행정수장들의 화상회의를 주재하는 모습도 공개했다. 
 

푸틴 대통령이 연설을 한 것과 동시에 크렘린은 ‘대통령의 일상’을 소개했다고 관영 언론 스푸트니크는 보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대통령은 1.5m 사회적 거리두기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기자들이 묻자 “대통령은 팬데믹 기간에 대인 접촉을 줄였으며, 대통령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바이러스 검사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크렘린은 위생수칙을 모두 지키고 있고 직원들도 정기적으로 감염 검사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전신방호복을 입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24일 모스크바 외곽의 코로나19 치료시설을 방문하고 있다.  스푸트니크·AP연합뉴스


앞서 푸틴 대통령이 장관들, 금융기관 수장들과 얼굴을 맞대고 회의했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해명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피신’해 있다는 상반된 보도도 있었다. 크렘린이 노보-오가료보 관저를 일부러 비춰준 것은 이런 소문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현재 상황에서 정부 기능이 온전히 작동하려면 대통령이 매일, 매시간 매우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면서 “대통령은 요일 단위, 시간 단위로 평균화할 수 없는 일과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크렘린이 푸틴의 하루에 대해 설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유럽 브렌트유 폭락에 러시아 루블화가 출렁이고 증시도 급락했다. 푸틴 대통령을 적대하는 서방은 에너지 수출로 돈을 버는 러시아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러시아 경제가 올해 5% 위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5% 성장률’부터, 최악의 경우 ‘-8.6% 성장률’까지 러시아 경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나돈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은 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종신집권’을 기정사실화한 그가 적들에 둘러싸여서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이 생각하는 것처럼 러시아 국가시스템이 엉망이지 않으며 경제가 취약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봉쇄조치를 적용 받는 러시아인들은 외출을 하려면 스마트폰 앱에 사유를 입력하고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당국의 허가 ‘바코드’를 받아야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러시아 내 감염자가 1000명이 채 안 됐을 때부터 정부는 학교들 문을 닫고 해외여행을 전면 금지시켰다. 

 

2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마스크를 쓴 경찰이 지나가던 여성의 통행허가를 검사하고 있다. 코로나19 봉쇄조치로 모든 시민들은 외출을 하려면 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모스크바 AP연합뉴스


남유럽부터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한 유럽국들과 비교해 확산이 상대적으로 늦었던 까닭에, 러시아 확진자의 절반은 아직 병원에 있다. 모스크바에서만 2만명이 치료 중이다. 군 공원과 엑스포센터는 임시진료소로 바뀌었다. 방역장비가 부족하다는 점은 푸틴 대통령도 이번 연설에서 인정했다. 하지만 진단검사를 최근 대폭 늘려 총 310만건이 넘었고, 수치 왜곡이 있다 하더라도 유럽국들에 비해 사망자가 적은 편이다.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책임자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마스크도 쓰지 않고 병원을 방문해 거센 비판을 받았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며 ‘거리두기’를 거부하다가 그 자신이 감염돼 중태에 빠졌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전신방호복을 입고 병원을 찾았다. 우주인과 비슷한 차림을 한 그의 모습은 특유의 ‘정치쇼’로 보일 수 있지만, 최소한 미국이나 영국 지도자들의 대응과는 대비된다.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에너지 부문에 의존하고 있다. 몇 년 새 저유가로 석유 의존도가 떨어졌다지만 도이체벨레 등에 따르면 여전히 석유산업이 GDP의 21%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천연가스 등 전체 에너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이른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가 저유가에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 1998년 보리스 옐친 정부 시절의 경제붕괴를 모두 지켜본 푸틴 정부는 2000년대 고유가 때 현금을 대량 비축했다. 2008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2014년 유가 폭락과 미국·유럽의 경제제재가 겹쳤을 때에도 외부의 예측과 달리 크렘린 권력은 오히려 강화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가 재정균형을 유지하려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42달러는 돼야 한다는 추산치를 내놨다. 기름값이 떨어져 러시아가 타격을 받긴 하겠지만 대외부채는 GDP 대비 15%로 양호한 수준이고, 재정적자도 감당 못할 수준으로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로이터에 따르면 당초 올해 0.8% 흑자재정이 예상됐으나 기름값이 떨어지고 방역 관련 지출이 늘어나 0.9% 적자를 볼 것으로 보인다.

 

방호복을 입은 러시아 의료진이 2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도심 비즈니스센터 앞에 세워진 코로나19 이동식 진단소 천막 밖으로 나오고 있다.  모스크바 EPA연합뉴스


미국의 따돌림 때문에 러시아 경제는 오히려 외부 충격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8~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 브렌트유가 77% 폭락하자 러시아 MSCI시장지수는 80% 떨어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최근 브렌트유가 75% 급락하자 러시아 MSCI시장지수는 51% 떨어져 하락폭이 전보다 줄었다고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전했다.
 

외환보유고도 많다. 5000억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라는 버팀목도 있다. GDP의 7%에 육박하는 규모다. 봉쇄 속에서 불만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을 달래기 위해 푸틴 정부는 각 가정에 아이 1명당 5000루블 양육수당 지급, 실업수당 인상, 1회성 노인수당과 저소득가정 지원금 지급 등 ‘코로나19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은 봉쇄를 연장한다고 하면서도 이날 일부 정부프로그램의 검역절차를 완화했다. 대국민 메시지에도 ‘경고’와 ‘안심시키기’가 모두 담겼다. 포브스는 “그를 미워하는 이들에겐 유감스런 일이겠지만, 저유가와 코로나에도 푸틴이 살아남을 것이라 묻는다면 ‘푸틴도 러시아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게 그 대답”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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