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코로나19 진원지' 트럼프가 지목한 우한 연구소는

딸기21 2020. 5. 4. 14:40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3일(현지시간) abc방송에 출연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연구소에서 유출됐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abc방송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등이 잇달아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바이러스연구소를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이미 올초부터 미국에서는 ‘중국의 생물학무기’ ‘인공 바이러스의 유출’ 같은 시나리오들이 돌고 있었다.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가 미국에서 속수무책으로 퍼진 책임을 중국으로 돌리기 위해 음모론을 부추기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가능성이 낮은 얘기라고 지적한다.

 

“수많은 증거” “내가 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의 연구소에서 흘러나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자신이 “봤다”고 주장했다. 이어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3일 abc뉴스에 출연해 이 감염증이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시작됐다는 “수많은 증거”가 있다며 재차 중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은 세계를 감염시킨 적 있고 수준 이하로 연구소를 운영한 전력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신종 바이러스가 과학자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자연적인 변종인지에 대해서는 혼란스런 대답을 했다. 로이터통신은 국무부에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요구했으나 답변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폼페이오도 ‘증거’가 어떤 것인지, 중국의 ‘고의성’을 보여주는 근거가 뭔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출현에 대해 알아내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11월~12월 사이에 우한의 화난(華南)수산시장에서부터 감염증이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바이러스의 출발점은 오리무중이다. 어딘가에서 바이러스가 시장으로 옮겨간 것은 분명하지만 그 출처는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우한바이러스연구소.

 

미국이 지목한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공칙 명칭은 ‘중국과학원우한병독연구소’로 우한 시내 장샤(江夏)지구에 있다. 우한 시내를 가로지르는 양쯔강을 사이에 두고 화난수산시장과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1956년 설립됐으며 감염병센터와 바이러스자원·정보센터, 환경응용미세생물학센터, 생화학·생명공학분석부, 분자생물학부 등을 두고 있다.

 

미국 돈으로 지원한 연구소

 

이 연구소는 의료·연구시설 등의 안전수준을 정한 지침인 ‘생물안전도’ 최고등급인 4등급(BSL-4) 시설이다. 에볼라나 라사바이러스 등 사람이나 동물에 심각한 감염증을 부를 수 있고 특히 사람 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미생물을 연구·보관하는 시설로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전시설을 갖춰야 한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는 중국 본토에서는 최초로 2015년 BSL-4 시설이 됐다. 당시 3억위안을 들여 안전설비를 갖췄는데, 역설적이지만 자금의 일부는 미국이 지원했다. 텍사스대학 갤브스턴국립연구소와 특히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바이러스·감염증 연구의 중심인 이 연구소 주변에서 정체 모를 신종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정황 때문에 우한바이러스연구소는 올초부터 계속 ‘음모론’의 대상이 돼 왔다. 실제 이 연구소가 코로나바이러스 연구를 오래 해온 것은 사실이다. 2005년 야생 박쥐의 한 종류인 중국의 관박쥐가 사스 코로나바이러스 변이의 매개였음을 밝혔으며 이후 300여종의 박쥐 기원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들을 분석해왔다.

 

2017년 이 연구소는 사스바이러스가 윈난성의 야생 관박쥐에게서 진화했다는 최종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관박쥐들이 살던 윈난성의 동굴에서 1km 떨어진 곳까지 마을이 들어서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야생과 인간 거주지역의 혼재가 동물-사람 간 감염을 촉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우려를 불러일으킨 연구도 없지 않았다. 2015년에는 이 연구소의 연구원 2명이 포함된 국제공동연구팀이 박쥐에서 생성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사스 바이러스와 결합시켜 ‘하이브리드(잡종) 바이러스’를 만드는 실험을 했고 그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공개했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지만 인체 세포도 감염시킬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가 이런 연구들을 하는 과정에서 코로나19라는 변종이 만들어졌고, 외부로 유출됐다는 것이 미국이 주장하는 ‘중국 책임론’의 얼개라고 볼 수 있다.

 

미 언론 기고가 불붙인 음모론

 

트럼프 정부가 우한바이러스연구소를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지목한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은 워싱턴포스트와 CNN 등 미국 언론들에 기고·출연하며 국제정치분석가로 활동해온 저널리스트 조슈 로긴이었다. 친이스라엘 성향의 유대계 언론인으로, 2014년 존 케리 당시 미 국무장관이 사적인 대화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한 것을 몰래 녹음한 뒤 공개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인물이다.

 

로긴은 지난달 20일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미 국무부의 2018년 통신문에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박쥐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이미 적혀 있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앞서 1월부터 미국에서는 ‘중국이 생물학무기로 쓰기 위해 만든 바이러스가 유출됐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과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해왔다. 하지만 로긴의 기고가 나온 뒤 유출설에 다시 힘이 실렸고, 미 정보당국이 코로나19와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관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후베이성 간부들이 지난 1일 우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봉쇄조치 완화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우한 신화연합뉴스

 

로긴은 생물학계에서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몇 년 전부터 제기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가 거론한 것은 2015년 네이처에 실린 ‘생명공학으로 만들어진 박쥐 바이러스가 위험한 연구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글이다. 이 글은 우한바이러스연구소가 만든 잡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신화 속 괴물 키메라에 비유하면서 인공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현재 네이처 측은 웹사이트에 실려 있는 이 글의 앞머리에 “코로나19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이론의 근거로 이 글이 인용되고 있다”며 주의문을 붙여놨다.

 

비슷한 보도는 더 있었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 감염병센터 책임자인 시정리(石正麗) 박사는 중국의 대표적인 바이러스학자 중 한 명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결과를 지난 2월 네이처에 싣고 국제 공동 데이터베이스에 올린 것도 시 박사의 연구팀이었다. 로긴의 글에 앞서 지난 3월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중국의 ‘배트우먼’인 시 박사가 실험장비 관리와 폐기물 처분 등의 과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바이러스 유출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는 기사였다.

 

과학자들 “바이러스에 대한 무지”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런 주장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에코헬스연합이라는 뉴욕의 민간단체를 이끌고 있는 피터 다자크는 자연, 동물, 인간의 건강이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총체적 관점에서 보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원헬스(One Health)’ 개념을 주장해온 바이러스학자다. 생명공학의 위험성과 동물-인간 보건 문제에서 누구보다 비판적인 주장을 해온 사람이다. 다자크는 인터넷매체 ‘데모크러시 나우!’에 출연해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인공 바이러스가 흘러나갔다는 로긴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훠셴산 응급병원에 파견됐던 군 의료진들이 지난달 15일 임무 종료식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우한 신화연합뉴스

 

다자크는 “그 연구소와 15년간 협력해왔고 그들이 갖고 있는 자료들 중에는 내가 중국 동료들과 함께 수집한 것도 있다”면서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코로나19)와 관련된 인공 바이러스는 없으며, (연구소 유출은) 불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미국 서부 워싱턴주에서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지역사회 감염을 확인하고 대규모 확산을 경고한 트레버 베드포드 워싱턴대 교수는 지난 2월 파이낸셜타임스에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는 자연의 진화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라며 인공 바이러스 유출설을 일축했다.

 

컬럼비아대 면역학자 빈센트 라카니엘로 교수도 “우한바이러스연구소가 보관 중인 박쥐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인체 감염을 일으키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오려면 진화 과정이 한 단계 더 필요하다”며 “바이러스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신종 감염증을 감시하는 ‘프레딕트’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캘리포니아대 감염병학자 조나 마제트 교수는 공영라디오방송(NPR)에 나와 “우한연구소의 스태프들은 미국 연구소에서 훈련을 받은 이들이고 매우 높은 안전기준을 따르고 있다”며 로긴 등의 주장에 깔린 차별적 시선을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