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자상거래 회사 아마존은 지난 17일 10만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뒤이어 코로나19 때문에 미국에서 올 상반기에 일자리 1400만개가 사라질 것이고 2분기 실업률이 30%에 달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들이 잇달아 나왔다.
10만명 고용은 어마어마한 약속이다. 4월부터는 직원들 최저시급도 이전보다 2달러 올려준다고 했다. ‘맥잡(맥도널드 점원)’이라 불리는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시급을 15달러로 올려달라며 몇 년 동안 힘들게 싸워왔다. 코로나19가 아마존 노동자들에게 이를 현실로 만들어준 건 아이러니하다. 임금을 올리고 10만명을 고용한다는 약속을 아마존이 지킨다면 대단한 일이 되겠지만 저 중에는 파트타이머들도 상당히 포함될 것이어서 일자리의 ‘질’은 장담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마존은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거래가 폭증하면서 주문 처리와 배송도 밀려 있다고 했다. 경제가 위기로 치닫는데 어느 기업이든 사람을 더 뽑겠다고 하면 찬사를 받을 만하다. 거리의 매장들이 온라인 상점에 밀리기 시작한 지는 오래지만, ‘거리 두기’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면서 온라인 유통업체들은 더 유리해졌다. 미국 온라인매체 쿼츠는 “바로 이런 때를 위해 아마존이 존재한 것”이라고 적었다.
아마존은 여러 면에서 21세기의 팬데믹을 비추는 거울이다. 고용 한파 속에서도 채용을 늘리는 기업이 전자상거래 업체라는 점에서만은 아니다. 아마존이 자체 브랜드로 파는 물건들 중에는 요즘 미국인들의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화장지와 물티슈도 있었는데 모두 동났다고 한다. 아마존은 코로나19가 퍼지고 나서 100만개가 넘는 아이템을 판매 리스트에서 지웠다. 코로나19와 관련된 거짓 정보를 넣어 광고를 했거나 가격을 대폭 올린 물건들이다. 전염병을 둘러싼 가짜뉴스가 하도 많이 퍼져 ‘인포데믹’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사재기와 상술이 판친다. 아마존은 그런 것들에도 효과적인 플랫폼이 돼준다.
아마존은 또 ‘필수적이지 않은’ 물건의 선적과 배달을 미루고 의료용품과 생필품을 우선 비축하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전염병을 무시한 사이에 미국이 감염 중심지가 돼 버렸는데, 정부의 빈틈을 선도적인 기업이 메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탈리아 트렌토의 아르마니 공장에선 재봉사들이 마스크를 만들고 있고 미국 자동차 회사 GM은 트럼프 정부의 ‘국방물자생산법’에 걸려 인공호흡기를 생산한다. 하지만 기업이 정부를 대신할 수는 없다. 공공의료가 무너진 남유럽 나라들의 현재가 그 생생한 증거다.
아마존에 취업할 미국 노동자들은 주문을 받고 배송을 하는 일을 한다. 아마존이 고용계획을 발표할 무렵 미국은 아직 감염증의 핫스폿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 역병에 짓눌려가던 이탈리아는 달랐다. 전염병이 맨 먼저 퍼진 밀라노 근교 카스텔산조바니라는 곳의 아마존 물류창고에서는 배송노동자 30%가 도망을 치거나 작업을 거부했다. 앱센티즘(absenteeism)이라 불리는 ‘계획적 무단 결근’이다.
직원들 사이에서 감염자가 나온 탓도 있지만, 일 특성상 전염병이 퍼진 지역들을 돌며 바이러스에 그대로 노출될 게 뻔했다. 하지만 아마존은 창고를 소독하기 위해 잠시 닫아달라는 노동자들 요구를 거부했다. 급기야 이탈리아 아마존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번졌다. 파업과 상관없이 며칠 지나지 않아 나라 전체에서 모든 산업이 중단됐지만.
이탈리아 아마존 직원들의 감염 공포는 고스란히 미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직원을 고객처럼 대해달라.” 뉴욕에서 시위에 나선 아마존 직원들의 손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필수적인’ 물건부터 챙기겠다는 회사 방침에 빗대 “우리 건강도 필수적”이라 쓴 글귀도 보인다.
아마존이 특별히 나쁜 회사인 건 아니다.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효율적이고, 경영자는 똑똑하고, 사회적 책임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아마존이 아니었다면 다른 기업이 비슷한 일을 했을 것이고, 전자상거래로 실적을 올렸을 것이고, 전염병 국면의 승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든 뭐든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돌아다녀야 한다. 아마존을 보며 느끼는 것은 시대의 패러다임이 ‘비대면’으로 옮겨갔다는 착각에 대한 깨달음, 정부의 진공을 기업이 메울 수는 없다는 깨달음, 물건보다 사람이 필수적이라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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