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정동길에서]우리는 나아지고 있다

딸기21 2020. 2. 26. 01:55

항공모함을 만들고 우주탐사선을 띄우고 노벨상 수상자가 잇달아 나와도 소용 없었다. 시장에서 야생동물을 사고팔고 전염병이 번지는 것은 못 막았다. 21세기 양강(G2)의 한 축이라는 중국의 모습이다. 코로나19가 통제불능으로 치닫자 열흘만에 응급병원을 뚝딱 지었지만, 사람을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는 정부와 사회인식과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지금 중국에선 1억5000만명, 인구의 10분의1이 방역 통제 하에서 지낸다.

 

The Starry Night, Vincent van Gogh.

 

미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고 인공위성을 띄우고 미사일을 쏘지만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는 보장하지 않는 이란. 이란의 신정과 군부 지도자들은 미국과 적대적 공생 관계다. 청년들의 투표 무관심 속에 보수파 압승으로 끝난 21일의 총선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코로나19 사망자가 늘어나는데 미국 제재로 텅 빈 국영약국의 진열장이 지금 테헤란의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를 이어주는 선들과 갈라놓는 선들
그 간극을 없애기 위해 고민할 때
우리는 더 안전해진다

 

중국과 친했던 이탈리아는 감염병을 막겠다고 조기 통제에 나섰지만 밀라노와 베네치아가 있는 북부 지역이 뚫렸다. 어디서 어떻게 전염이 시작됐는지조차 밝히지 못했다. 국가가 국민들의 생활을 세세하게 간섭해 ‘내니 스테이트(유모 국가)’라 불리는 싱가포르도 바이러스의 위협을 피해가지 못했다. 일본의 감염증 대응은 부실 그 자체였다. 그 이면에서 사람보다 국가적 위신이 중요하다는 정부 속내가 그대로 묻어났다.
 

위기에 민낯이 드러난다. 한국은 어떨까. 극성스런 종교집단, 뻔뻔한 종교인들. 특정 지역에 의한, 특정 지역에 대한 감정. 외국인 비하와 혐오. 폐쇄된 정신병동에서 벌어진 집단 감염.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고 정치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린 모두가 그룹과 네트워킹으로 묶여 있다. 직장, 학교, 어린이집에서 노인정까지 온갖 종류의 집단과 조직으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그 거미줄같은 연결망 사이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들이 있다. 그물망들을 가르는 선들은 보일 때도 있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31번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른다. 하지만 60대, 여성, 정치적으로 독특한 특정 지역, 주류가 싫어한다는 어떤 종교, 다단계 판매회사로 의심받는 직장에 다녔다는 사실을 안다. 공교롭게도 이번 질병의 일부 감염자들에게는 사회 다수가 선호하지 않는 어떤 속성들이 모여 있다. 

 

연합뉴스

 

‘31번 환자’의 네트워크에 다행히 나는 없다. 겹쳐지지 않는다. 지역적 계급적 계층적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다르다! 어느새 거기에 안심하고 있는 나. 그러면서도 혹여 그 사람과 나의 네트워크에 접점이 있었을까봐, 양쪽을 가르는 선의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었을까봐 걱정하는 나. 그가 속한 집단의 속성이 어느 틈에 나의 방어막이 된다. 바이러스의 시대에 내가 본 나의 맨얼굴이다.
 

바이러스가 누군가를 공격할 때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나만이라도 피하기 위해 네트워크의 이쪽 편에서 방어선을 둘러치는 것일까. 바이러스는 애쓰면 통제할 수 있다. 5년 전 메르스 때보다 정부 대응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졌다. 그럼에도 우린 종교집단에서 비밀스럽게 감염증이 퍼지는 걸 막지 못했다. 전염병 발생지역에서 올라온 이들을 포함해, 적잖은 사람들이 전방위로 불만을 뿜어대며 ‘빨갱이 규탄’ 집회를 여는 것도 막지 못했다. 야당은 이 와중에 편가르기 혐오 선동을 한다. 중국 탓을 하며 인종차별적 보도를 하던 일부 언론들은 정부의 무능에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떠들썩하게 목소리 높이는 이들 뒤편에는 이럴 때면 더 힘들어지는 장애인들과 복지 취약층이 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전보다 낫게’ 달라질 기회다. 

 

우리를 이어주는 선들과 갈라놓는 선들 사이의 간극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말과 행동을 고민할 때, 우리는 더 안전해진다. 혐오발언이나 보도가 나오자마자 반대하고 비판하는 시민들이 있고, 가게 임대료를 낮춰주는 건물주들이 있다. 우한과 대구를 응원하는 해시태그들, 질병관리본부의 카카오톡 채팅방에 줄이어 올라오는 감사와 격려의 댓글들. 그리고 방역을 배워가는 시민들. 손씻기와 마스크만으로는 우리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 정부가 해야할 일과, 정부를 움직이는 여론의 힘을 배운다. 현장으로 달려가는 의료진, 패닉에 빠지지 말라며 서로를 다독이는 사람들. 

 

우리 사회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나? 그렇다. 나아지고 있다. 재난으로 망가진 지역을 재건할 때 구호·개발 전문가들은 ‘전보다 낫게(build back better)’ 복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전보다 낫게’ 달라질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