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정동길에서]호르무즈에서 뭘 할까

딸기21 2020. 1. 22. 09:33
728x90

군대를 보내야 할 때가 있다. 남의 나라 군인들이라도 가서 도와주는 게 필요한 곳들이 있다. 1990년대에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참혹했다. 영국군이 나중에 들어가 상황을 진정시켰지만 너무 늦었다. 옛 유고연방 내전 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은 현장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동아프리카 르완다에서도 학살극이 벌어졌다. 벨기에와 프랑스는 개입할 수 있었는데 방치했다. 학살자들을 돕기도 했다. 미국도 관심이 없었다. 영화 <호텔 르완다>로 유명해진 밀콜린스호텔 직원이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팩스를 보내 도움을 호소했다고 한다. 클린턴은 모든 상황이 다 끝난 뒤 1998년 3월 르완다에 들렀다. 아프리카 순방길에 잠시 비행기를 르완다 수도 키갈리 공항에 착륙시키고 학살 당시 도움을 거부한 것을 사과했다.

 

한국의 파병 소식을 전한 알자지라 뉴스.

 

개입하지 않아서, 군대를 보내지 않아서 살릴 수 있었던 사람을 못 살린 사례들이 있다.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면 남의 나라 일이라도 어떻게든 막으려 애써야 한다. 인도적 개입의 책무다. 말은 쉽지만 실제 과정은 쉽지 않다. 도심을 폭격해 더 큰 피해를 입힌 사라예보 공습 같은 일도 있었다. 반면 정부군과 반정부군 진영이 분리돼 있고 인구밀도가 낮았던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동부 지역 주민 학살을 공습으로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당성에 대한 시각은 저마다 다르고,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고, 무엇보다 사람들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군사개입은 극도로 어렵고 복잡하다.

 

한국도 그동안 파병을 꽤 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다산부대와 자이툰부대 등을 보냈고, 레바논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는 지금도 동명부대와 아크부대가 들어가 있다. 전쟁을 하러 간 것은 아니고 평화유지활동과 군사협력지원 명분으로 갔다. 아프간의 경우 유엔이 국제치안유지군 결성을 승인하기라도 했지만 이라크는 미국의 터무니없는 침공에 한국이 군대를 보내준 것이었다.

 

이라크와 좋은 관계를 맺는 발판을 닦았다는 사후 합리화는 하지 말자. 한국이 파병을 해서 이라크가 고마워하며 친하게 지내려 할 것이라는 논리는 이상하다. 이제 호르무즈에 군대를 보내 바닷길의 안전을 도모했으니 이란과의 사이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할 참인가. 혹은 이란을 적으로 돌린 대신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친해지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할 생각일까.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쳐선 안된다. 행위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민족과 국가라 해도 윤리의 잣대는 같아야 한다. 남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도 되는 이익 따위는 없다.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뒤 힘겹게 나라를 세울 때 상록수부대가 가서 치안을 도왔다.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자연재해나 분쟁으로 위기에 빠진 이들에게 군대를 보내 돕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우리가 맡아야 할 몫일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요건을 매우 면밀히 따져보고 시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호르무즈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미국이 핵합의를 깨기 전까지는. 걸프의 전운은 없었고 오만만에는 배들이 안전히 다녔다. 그 부근 예멘 내전 참상이 문제이지 호르무즈 주변국들에 격변 같은 건 아직 없다. 미국이 분란을 일으키고, 분란이 일어났으니 군대를 보내라고 하는 것뿐이다.

 

한국군이 호르무즈에 가서 뭘 하게 될까. 청해부대가 오만만에서 이란과 전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할 일이 딱히 없기 때문에,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넓히는’ 것은 사실 아무 일도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보내는 것일까. 목적도 미션도 없는데. 예기치 못한 충돌이 벌어져서 미군의 작전을 도와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욱더 가선 안된다. 미국이 이란을 원수 보듯 하는 건 미국 사정이지만 우리가 왜? 미국이 방위비를 깎아줄 것이기에? 그 약속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이 정당한가.

 

호르무즈에 파병하면 남·북·미관계를 푸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남의 전쟁이 나의 평화의 도구가 될까. 그게 가능했다면 베트남에, 아프간에, 이라크에 군대를 보냈을 때 진작 평화라는 상품을 받아들고 왔을 것이다. 그 지역의 비극이 결집된 예멘 사람들 몇백명을 받아줄 수 없다며 아우성치는 나라에서, 그 지역의 ‘안전’을 지켜주겠다며 군대를 보내 분란에 스스로 발을 담그는 것은 어리석고 나쁜 짓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