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델라 할아버지만 생각하면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진다.
오늘은, 할아버지의 부인, 그라사 여사와 관련된 이야기.
5월에 시에라리온에 갔었다. 그곳에서 만난 구호단체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되도않는 영어로) 아프리카의 이런저런 인물들에 대해 많이 물었는데, 비록 한 사람의 의견 ^^;; 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생한 이야기여서 재미가 있었다. 사모라 마셸에 대해 물었는데, 이 사람은 옛날 모잠비크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다. 왜 이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느냐면-- 지금 만델라 할아버지의 부인인 그라사 마셸의 전남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미국의 경비견이었다면,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개는 남아공이었다. ('경비견' 이야기는 무려 이스라엘 총리가 입에 담은 표현이다. 이스라엘과 남아공은 핵무장에서도 서로 협력했던 전례가 있고, 세계를 돌며 두 나라 모두 우리가 알게모르게 나쁜짓 증말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지금도 나쁜 짓 하면서 핵무기 갖고 있고 남아공은 죄를 반성하며 핵무기 포기한 셈이 됐지만).
남아공이 주변국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적인 영웅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모라 마셸과 그의 아내였던 그라사의 이야기이다.
지난 2월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과거사 규명'의 일환으로 사모라 마셸 추락사 사건을 재조사하기로 했다는 외신을 보았다. 마셸은 1986년10월 잠비아를 방문한 뒤 귀국하다가 남아공 영공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숨졌다. 당시 남아공 백인정권은 "조종사 실수로 밝혀졌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남아공측이 항로를 오인하게끔 유도, 비행기가 산맥에 추락하게 만들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돼왔다.
이 사건은 백인정권 시절 벌어진 주요 의혹사건 중 하나다. 사회주의, 민족주의 색채의 독립영웅이 남아공 영공을 지나다가 희한한 사고로 하필이면 추락사를 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내가 들어도 거짓말같은데, 뭘.
‘아프리카의 게바라’ 사모라 마셸
대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마셸
마셸을 그린 벽화
마셸은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의 독립운동 지도자였고 1975년 독립 뒤 초대 대통령을 지낸 건국의 아버지다. 아프리카에서는 "마셸이 살아있었다면 만델라와 같은 영웅이 됐을 것"이라고들 한단다. 그러나 사회주의자였던 탓에 미국에 미움을 샀다. 과거 아프리카에서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했던 남아공 백인정권은 모잠비크 내 반(反) 마셸 게릴라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해가며 축출을 기도했었다. 우연이런가? 마첼이 석연찮은 사고로 숨진 뒤 권력을 물려받은 후앙 시사노 정권은 곧바로 친미 자본주의로 돌아섰다.
그라사는 남편이 숨진 뒤 모잠비크에서 민주화,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만델라를 만났다. 두 사람은 1999년 만델라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직후 재혼했다. 그라사는 남아공과 모잠비크를 오가며 만델라와 함께 에이즈·아동구호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한편, 남아공 정부에 마셸 추락사건 재조사를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만델라 할아버지와 그라사의 연애;;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귀여웠다(^^). 노년에 만난 두 사람의 뒤에는 아프리카의 잔혹한 역사가 숨어 있다. 만델라도, 마셸도, 그라사도, 대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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