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중국 체제의 균열 드러낸 감염증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폐렴 환자가 발생했다. 그 해 12월 31일 첫 환자가 확인됐다. 증상은 일반적인 폐렴과 비슷하다. 열이 나고 마른기침을 하며, 심해지면 호흡곤란과 폐 손상이 온다. 당국은 2020년 1월1일 환자들이 다녀간 화난수산시장을 폐쇄했다. 1월 11일 처음으로 사망자가 나왔다. 13일과 15일 태국과 일본에서 각각 중국인 환자들이 확인되면서, 중국 밖 전염이 시작됐다.
이때만 해도 통제되는 듯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춘제(설)를 앞둔 18~19일을 기점으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을 넘어 베이징과 상하이, 광둥성 등에서 환자가 보고됐다. 이어 춘제(설) 대이동을 거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감염자가 늘기 시작했다. 사스를 일으킨 것과 비슷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나서서 20일 전면 대응을 선언했다. 당국은 우한에 1월 23일 한시적으로 봉쇄령을 내렸다. 후베이성 이외 지역에서 최초로 사망자가 나온 날이었다. 하지만 이튿날이 되자 중국 전역의 누적 확진자는 1000명이 넘었다. 1월 말이 되자 중국 내 누적 확진자 수는 1만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도 가파르게 늘었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 등 20여개국으로 빠른 시간 안에 전파됐다. 2월 초가 되자 감염자는 2만명을 바라봤다. 2월 11일이 되자 누적 사망자가 1000명이 넘었다.
중국 내 의료시설이 부족하거나 열악해 치료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중앙군사위원회가 인민해방군 200만명 이상을 대대적으로 방역에 투입했고, 군 의료진이 주요 도시들에 파견됐다. 우한에는 응급병원이 열흘 만에 지어졌으며 체육관과 문화센터 등 공공시설들은 응급진료소로 바뀌었다. 사실상 도시 전체가 격리된 병원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방역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의 전격적인 우한 봉쇄가 전국으로 감염증이 퍼지는 걸 막는 데에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전염병이 순식간에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시대에, 중국의 질병 통제 역량은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행정당국에 맡겨져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2003년 사스 때보다는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의 지시가 내려온 후에야 전면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우한의 코로나19 위험성을 알린 의사 리원량 등 의료진들이 ‘입을 다물겠다’는 서약을 하는 등 당국의 탄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 주석과 중국공산당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커졌다. 리원량이 코로나19로 결국 목숨을 잃으면서 여론 통제에 여념 없는 정부에 대한 비난이 높아졌다. 시 주석은 후베이성 공산당 서기장 등을 교체하는 것으로 대응했으나 체제의 균열을 감출 수는 없었다.
한국 지나 유럽으로
1월 30일 WHO는 이 감염증에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중국을 시작으로 20여개국으로 전파됐기 때문이다. 중국 후베이성은 2월 12일 확진자 통계에 갑자기 1만2000여명을 추가했다. 감염자 수를 축소한다는 비판이 일자, 바이러스 유전자증폭검사 없이 임상진단만으로도 확진자에 포함시키겠다며 기준을 바꾼 것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자 통계 자체가 불안정해졌고, 역학 분석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후베이성 위생건강위원회는 이후에도 두 차례나 더 기준을 바꿨다.
이처럼 혼선이 빚어지긴 했지만 3월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감염 확산 추이는 감염자 8만명을 넘긴 뒤 진정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반면 코로나19의 ‘핫스팟’은 한국을 거쳐 유럽으로 연쇄 이동하면서 세계가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당초 우한에서 온 중국인들의 입국을 통제하고 귀국한 한국인들을 격리검역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2월 중순 대구 지역의 신천지교 신자들의 집단 감염이 확인되면서 상황이 돌변했으며 그 달 말이 되자 감염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이후 하루 최대 1000명 이상이 늘어나는 등, 감염자가 치솟았다.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혐오발언들이 소셜미디어에서 기승을 부렸고,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고, 요양원과 열악한 노동환경의 콜센터 등 한국사회의 ‘약한 고리’들이 감염증을 계기로 드러났다.
3월에 들어서면서 중동과 유럽에도 코로나19 비상이 걸렸다. 중동의 진앙은 이란이었다. 2월 말부터 사망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이란은 부통령을 비롯해 정부 고위직 인사들까지 줄줄이 감염됐다. 이슬람 성지 곰(Qom)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감염자가 급증했고, 중동 여러 나라로 퍼졌다. 당국이 코로나19 위험을 무시한 채 2월 총선을 강행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의 금수조치 때문에 의약품까지 모자라는 상황이었고, 사망자가 나날이 늘었다. 이란 정부가 사망자 수를 은폐한다는 얘기도 많았다. 3월 13일이 되자 감염자는 1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000명이 넘었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확산의 중심이었다. 중국발 항공편을 봉쇄하며 초반부터 강력 대응에 나섰지만 경제 중심지인 밀라노를 비롯한 북부 롬바르디아주에서 경로를 추적할 수 없는 감염자들이 생겨났고 곧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탈리아 정부는 밀라노와 베네치아 같은 대도시들을 비롯해 곳곳을 봉쇄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3월 중순이 되자 누적 확진자가 1만5000명이 넘었다. 사망자 추세는 한국보다 훨씬 비극적이었다. 고령자들을 중심으로 피해가 급증했고 하루 100~200명씩 사망자가 증가했다. 정부는 10일 전국의 모든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초강경 대응을 선언했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도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팬데믹’ 선언
WHO는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 글로벌 전염병 대응을 정비해 6단계 판단기준을 만들었다. 감염증의 위험 수준과 확산 정도를 기준으로 단계를 평가한다. 1~3단계는 동물에게서 생겨난 감염증이 인간에게 전파돼 국지적 감염을 일으키는 상황이다. 사람 간 전염이 일어나면 4단계로 대응이 격상된다. 5~6단계는 사람 사이에 감염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상황을 뜻한다. 신종플루는 6단계 팬데믹이 선언됐다.
코로나19에도 팬데믹을 선언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으나 WHO는 결정을 미루다가 11일 결국 공식 선언했다. 전 세계 누적 감염자 수가 12만명을 넘어서고 120여개국으로 확산된 뒤였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단순한 공중보건 위기가 아니라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만한 위기”라고 했다.
1968년 홍콩독감 때 WHO가 팬데믹이라 표현하긴 했으나 평가단계를 만든 것은 사스 이후인 2005년이었다. 그후 공식 선언을 한 것은 2009년 신종플루 때가 처음이었고, 코로나19가 두번째였다. “WHO가 중국 눈치를 보느라 선언을 미뤘다”는 비판이 컸으나, 그보다는 ‘팬데믹’이라는 용어를 선택했을 때의 파장을 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종플루 때에는 WHO 사무총장이 중국의 마거릿 찬이었는데, 팬데믹을 선언했다가 엄청난 후폭풍을 맞았다. 과잉대응으로 제약업계의 공포마케팅에 편승했다는 비난 속에 진상조사위까지 꾸려야 했다. WHO가 이번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 데에는 그 경험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결국 팬데믹을 선언한 것은 이탈리아 등에서 사망자가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영국과 독일 정부, 세계 연구진들 사이에서는 인구의 60~80%가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검사 회피와 올림픽 연기론
감염 초반 증상이 약한 경우가 많고 잠복기도 신종플루보다 긴 코로나19의 특성상, 진단을 빨리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 때문에 진단검사 역량과 규모가 각국의 대응의 질을 좌우했다. 한국과 이탈리아 등은 모두 집단 발병이 확인된 뒤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알려줄 진단검사를 대폭 늘렸다. 한국의 경우 하루 최대 1만5000명을 검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단 역량을 늘려 세계 전문가들과 언론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탈리아도 초반 감염경로를 놓쳐 북부 확산이 시작되자 강력 대응과 함께 검사 규모를 늘렸다.
미국은 양상이 전혀 달랐다. 서부 워싱턴주에서부터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고 노인 요양원을 중심으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 뉴욕주 등이 잇달아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진단 검사를 늘리고 보건 인프라를 가동하기보다는 한국·이탈리아 등을 상대로 한 여행제한과 입국금지에 치중했다. 3월 12일에는 영국을 제외한 유럽국들도 입국금지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알려줄 진단검사에는 계속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거센 비판이 일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1월부터 도쿄 시내 하천을 운항하는 유람선에서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들이 확인됐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당시 요코하마 항구에 정박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승객들이 내리지 못하게 하는 데에만 주력했고, 이 배에서 생긴 확진자들을 ‘일본 내 발생’ 통계에서 빼는 데에 골몰했다. 일본의 이 조치 때문에 크루즈선은 사실상 ‘바이러스 배양지’가 돼버렸고 700명 가까이 감염됐다. 정작 일본의 바이러스 검사는 2월 말이 되도록 1500여건에 머물렀으며 한국인 입국금지 등 국내정치용 제스처에만 치중했다. 유럽과 세계 전역으로 전염병이 퍼지자 뒤늦게 검사를 소폭 늘렸으나 확진자 수는 3월 중순이 되도록 700명 안팎에 머물렀다. 일본의 대응과 세계 코로나19 확산 상황 때문에 급기야 2020년 7월에 개막할 예정인 도쿄 올림픽 연기론까지 제기됐다.
백신은 언제 나오나
스위스 제약업체 노바티스의 바스 나라심한 최고경영자(CEO)는 2월 CNBC 인터뷰에서 백신이 개발되는 데에 필요한 기간으로 “최소 1년”을, 1950년대부터 백신을 연구해온 펜실베이니아대학 스탠리 플로트킨 석좌교수는 “최소 2년”을 내다봤다. 2월 11~12일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 전문가들을 모아 백신·치료제 개발 회의를 연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은 그 중간치인 ‘18개월’을 예상했다.
개발 기간을 줄이기 위해 제약업계들은 에이즈 바이러스(HIV) 치료제와 간염 치료제 등을 눈여겨보고 있다. 미국에서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남용 소송에 걸려 파산 위기에 직면한 존슨&존슨이 가장 적극적이다. 이 회사는 사스에 효과가 있었던 HIV 치료용 항바이러스제 프레즈코빅스를 중국에 기부했다. 하지만 기존 약품을 코로나19에 적용하는 것이 간단하지는 않다. 중국 위건위 전문가 리란주안은 “체외 세포실험에서 두 종류의 항바이러스제가 효과를 보였으나, HIV 치료제 중 일부는 효과가 좋지 않고 부작용이 컸다”고 했다. 미국 회사 르제네론은 에볼라와 메르스 항체를 바탕으로 연구 중이다. 신종플루 치료제 라이센스를 가지고 미국 정부에 타미플루를 거액에 팔아 지탄받았던 길리드사이언스는 렘데시비르라는 약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백신 개발이 뒷북이거나 유야무야되는 것은, 개발됐을 때쯤에는 이미 전염병이 사그라들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에게는 임상시험을 할 돈이 없고, 기업들은 비용에 비해 성과를 확신할 수 없어 연구를 꺼린다. 그래서 2017년 ‘전염병 대응 혁신 연합(CEPI)’이 출범했다. 빌&멜린다게이츠재단, 웰컴트러스트, 세계경제포럼(WEF), 미국 정부 등이 돈을 댄다. CEPI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착수하겠다고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했다.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미국 생명공학회사 모데르나 같은 기업들도 CEPI와 협력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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