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ICJ)가 미얀마 정부에 “로힝야족 집단학살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명령했다. 미얀마의 소수민족 로힝야 학살에 대해 국제사법기구가 국제법 상 구속력이 있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J는 23일(현지시간) 미얀마의 소수민족 로힝야족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에 있다면서 “할 수 있는 권한 내에서 집단학살을 막을 모든 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ICJ는 웹사이트에 공개한 명령문에서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범죄를 방지하고 처벌하기 위한 1948년 협약에 따라 미얀마는 로힝야족에 대한 초법적인 살인과 물리적 학대, 성폭행을 비롯한 성적 폭력, 집과 마을에 대한 방화, 농지와 축산활동 파괴, 식량과 생필품 박탈 등을 막을 조치를 즉시 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군대와 준군사조직, 비정규 무장부대 등 미얀마 정부의 지시 혹은 지원을 받는 모든 기구와 개인들도 학살 행위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ICJ는 미얀마에 국제법적인 의무를 부여한다면서 이 명령은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서아프리카의 이슬람국가 감비아는 무슬림인 로힝야족이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인종청소’를 당하고 있다면서 이슬람협력기구(OIC)를 대표해 지난해 11월 미얀마를 집단학살 혐의로 ICJ에 제소했다. 감비아는 피해를 막기 위한 임시조치를 명령해달라고 요청했으며, ICJ는 지난달 10~12일 사건을 심리했다. 당시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변호인단을 이끌고 직접 법정에 출석해 정부를 옹호했다. 수지 고문은 로힝야 반군이 공격을 가해와 정부군이 대응한 것일 뿐이라면서 “집단학살 의도는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ICJ는 수지와 미얀마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번 명령을 내렸으며, 미얀마에 4개월 뒤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로는 6개월마다 관련 조치와 상황을 보고하라고 했다. 다만 이번 명령은 임시 조치이며, 정식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과거 미얀마 군사정권은 서부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로힝야족에게 산아제한을 비롯한 인종차별적 조치를 강요했고 강제이주와 살해 등을 저질렀다. 로힝야 탄압은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계속됐다. 2017년 8월 로힝야족 무장세력이 경찰 초소를 공격하자, 이를 빌미로 대대적인 토벌작전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집단성폭행과 학살, 방화가 벌어졌다. 수천 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로힝야족 70만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의 난민촌 등으로 피신했다.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은 물론 유엔도 미얀마군의 행위를 반인도범죄인 집단학살로 규정하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왔으나 미얀마 정부는 이를 일축해왔다. 특히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수지 고문이 이 문제를 방관하는 것을 넘어 정부군을 두둔하자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이번 ICJ 명령 뒤 미얀마에 대한 국제적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학살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조치에 나설 지는 알 수 없다. ICJ는 유엔 산하의 상설 재판소로, 재판장 외에 각국에서 파견한 16명의 판사들로 구성돼 있다. 전쟁범죄 등 반인도범죄를 재판하기 위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별도의 조약을 비준한 나라들만 회원국이 되는 것과 달리, 유엔에 가입한 모든 회원국은 ICJ에 다른 나라를 제소하거나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재판부의 결정은 구속력이 있고 항소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결정을 집행하도록 강제할 수단이 없어서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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