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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라도 좋다” 민영화 나선 브라질

딸기21 2019. 9. 2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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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산을 사가겠다고 하면 화웨이라도 좋다.”

 

브라질 우파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달 매각 대상 기업 명단을 발표한 데 이어, 미국을 방문한 외교장관이 직접 ‘세일즈’에 나섰다. 뉴욕을 방문 중인 에르네스투 아라우주 브라질 외교장관은 2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주최한 자본시장포럼에 참석해 공기업들을 대거 민영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블룸버그 주최 자본시장포럼에 참석한 에르네스투 아라우주 브라질 외교장관이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블룸버그TV 캡처

 

아라우주 장관은 “브라질과 미국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미국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관심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중국 화웨이를 포함해 어느 기업도 차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쪽 투자를 받아들이면 좋지만, 연방정부 자산을 팔 수만 있다면 미국이 적대시하는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에게도 문을 열어놓겠다는 것이다.

 

‘의회 쿠데타’로 노동자당(PT) 정부를 몰아낸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 때부터 브라질은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2017년 테메르 당시 대통령은 공항 14곳과 항만 15곳, 주요 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복권회사 로텍스, 브라질에서 2번째로 큰 공항인 상파울루 콩고냐스 국제공항, 라틴아메리카 최대 발전회사인 엘렉트로브라스 등이 매각 대상으로 꼽혔다.

 

민영화 대상 기업 중에는 포르투갈 페드로2세 국왕 시절인 1694년 창립된 ‘카사 다 모에다 두 브라지우’(브라질 조폐공사)도 들어 있었다. 화폐와 여권, 메달, 우표, 전철탑승권 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남미 최고의 조폐기술을 자랑하는 회사다. 당시 테메르 대통령은 13년 연속 흑자였던 이 회사를 매각해야 하는 이유로 ‘장차 화폐 수요가 줄어들어 적자가 될 것’ ‘다른 나라들도 화폐는 민간기업에서 생산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가주권의 상징’마저 팔아치우느냐는 반발이 일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는 더 공격적이고 무차별적인 민영화 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달 연방정부는 자산관리공사, 보증기금, 연방데이터관리국, 사회보장정보 관리회사, 도시철도공사, 전화국, 우체국, 복권회사 등 17개 주요 공기업을 우선적인 민영화 대상으로 발표했다. 정부는 특히 코헤이우스(우정공사)에 서방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상파울루의 창고 관리, 포르투알레그레 지역의 철도시스템 등 지역 공공부문도 매각 대상에 올렸다. 파울루 구에데스 경제장관은 지난 7일 현지 언론 발로르 에코노미코에 “공기업들을 매각하면 일자리 수백만 개가 생긴다”면서 “팔 수 있는 모든 걸 팔겠다”고 말했다.

 

‘아마존 파괴’ 기업들로 향하는 압력...‘브라질 보이콧’ 가능할까

 

아라우주 장관은 이번 미국 방문에서 “350~400개 공기업을 민영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중남미 전문 매체 ‘아메리카스쿼털리’에 따르면 연방정부가 소유한 기업은 현재 134개다. 이를 3년 안에 거의 다 팔아 2022년에는 12개만 남기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국민 70% 가까이는 대규모 민영화에 반대하고 있다. 국민 데이터관리도 민간에 맡기겠다고 하자,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정부는 민영화와 함께 온갖 규제도 풀어주고 있다. 로켓을 개발하는 알칸타라 스페이스 같은 기술기업들을 민간에 넘기면 기초과학 연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브라질 보우소나루 정부가 매각 대상에 포함시킨 우편·물류회사 코헤이우스의 로고. 사진 풀랴프레스(Folhapress)

 

‘부패 스캔들’의 주역으로 지목돼 노동자당 실권에 영향을 미친 최대 국영기업인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도 자산을 팔고 있다. 2015년 이후 페트로브라스는 35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각했다. 하지만 이 자금 중 연방정부 금고로 들어간 것은 없다.

 

보우소나루가 ‘도덕의 화신’을 칼로 쓰려는 까닭은

 

민영화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말까지 연방정부가 자산을 팔아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890억달러 정도인데, 지방정부들이 반발하자 30%를 각 주에 나눠주기로 했다. 개혁과 효율화,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는커녕 자산 팔아 나눠먹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민영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마련한 돈을 누구를 위해 쓰느냐가 문제다. ‘작은 정부’를 내세워 서민·빈민 복지를 줄이고 아마존 열대우림까지 파헤치는 보우소나루 정부를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달초 다타풀랴 여론조사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업무에 대해 응답자의 51%는 “나쁘다” “형편없다”고 평가했다.

 

브라질은 1990년대 엥히케 카르도주 정권 시절에도 대대적인 민영화 계획을 세웠으나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시장개방으로 외국 자본에 나라가 흔들리고 결국 노동자당이 집권했다. 아메리카스쿼털리의 시장 전문가 존 웰치는 브라질의 민영화를 반기면서도 “1990년대 후반과 마찬가지로 기업 매각에 몰두하면서 다른 경제개혁들은 뒷전으로 제쳐둘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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