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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을 지킬 수 있는가" 트럼프 탄핵 절차 이끄는 낸시 펠로시

딸기21 2019. 9. 2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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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년 우리의 헌법이 채택되던 그날, 미국인들은 독립의 전당에 모여 법안을 기다리며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물었습니다. ‘어떤 헌법인가요. 공화국? 왕국?’ 프랭클린은 답했습니다. ‘공화국이다, 그걸 당신들이 지켜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책임은 공화국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24일(현지시간) 오후 2시, 미국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연설은 비장했다. 하원의원 32년, 여성 최초의 미 하원의장, 여성 선출직 최고위직, 대통령 유고시 권한승계 서열 2위, 온갖 수식어를 몰고 다니는 79세 정치인의 입에서 마침내 “탄핵 조사를 개시한다”는 말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정적’ 조 바이든 전 부통령 관련 압박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는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의 목을 죄는 사슬이 됐다.

 

미국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의 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결정할 조사에 공식 돌입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워싱턴 EPA연합뉴스

 

미국 뿐 아니라 세계의 시선이 펠로시에게 쏠렸다. 펠로시는 트럼프의 재임 중 행동을 “취임 선서에 대한 배신이자 국가안보에 대한 배신이자 선거의 진정성에 대한 배신”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오늘 나는 하원이 공식 탄핵조사에 들어갈 것을 선언합니다. 6개 위원회가 탄핵 청문의 틀 안에서 조사를 진행할 것입니다.”

 

펠로시는 “아무도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토머스 페인과 벤저민 프랭클린 등 미국 독립혁명 당시의 ‘건국의 아버지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민주주의의 요건과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되짚으며 트럼프를 질타했다. 민주주의를 만든 선조들을 되새기며 “안팎의 모든 적들로부터 헌법을 방어하고 지켜내야 하는 시급한 처지”라고 했다.

 

펠로시는 트럼프가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해온 것에 대해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헌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정보국장(DNI)은 오는 목요일(26일) 하원 정보위원회에서 증언을 하면서 법을 위반할 것인가, 헌법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을 지킬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라며 “하원은 관련된 팩트들을 모두 모은 뒤 탄핵조항을 비롯한 헌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원 17선 의원인 캘리포니아 출신의 펠로시 의장은 미국 ‘진보의 산실’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치적 발판을 닦았다. 2003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당시 하원 소수당이던 민주당 원내대표가 됐다. 2007년부터 20011년까지 한 차례 하원의장을 지낸 데 이어 지난 1월 다시 하원의장이 됐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2005년에는 부시 행정부의 ‘안보 민영화’에 반대하는 데에 앞장섰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적정보험법, 이른바 ‘오바마케어’ 법안 통과를 주도했다. 월스트리트를 규제하는 ‘도드-프랭크 법’, 소비자보호법, 군대 내 동성애 금지 폐지법안(Don’t Ask, Don‘t Tell Repeal Act) 등 여러 개혁법안들에 일조했다. 트럼프 시대에 갈 길을 잃었던 민주당이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다시 하원 다수당 지위를 되찾은 뒤 백악관과의 싸움에서 고령의 펠로시에게 다시 지휘봉을 맡긴 것은 이런 경력과 상징성 때문이었다.

 

펠로시의 선언 뒤 트럼프는 곧바로 트위터에서 “마녀사냥” “가짜뉴스”라는 레퍼토리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는 펠로시의 연설 동영상으로 뒤덮였다. 배우 로지 오도넬은 “고마워요, 고마워요 낸시 펠로시”라는 글을 올렸다.

 

당초 탄핵에 회의적이었던 펠로시는 여러 의원들의 거센 요구에 결국 청문 절차를 개시하는 리스크를 떠안은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펠로시의 도박’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 탄핵 조사는 펠로시의 정치인생에서 ‘마지막 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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