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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총기 성소' 되겠다는 마을, 총기협회와 싸우는 블룸버그

딸기21 2019. 8. 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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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콜로라도 강변, 모하비 사막 변두리에 있는 이곳은 오래 전부터 모하비 원주민들의 거주지였고 지금은 5000명가량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미국에서 잇달아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지면서, 니들스에서 벌어지는 총기 옹호론자들의 ‘작은 전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탄환을 사려는 이들의 신원조회를 의무화하고 고성능 탄창을 소지할 수 없게 한 강력한 총기규제법이 2016년 발효된 뒤,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니들스 주민들은 주 정부의 규제를 피할 방법을 찾느라 분주했다. 이들은 지난 6월 캘리포니아 내에서 ‘총기의 성소’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니들스 의회는 주 규제법이 자기네 지역에선 적용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 의회와 주 정부에 요청했다.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교회 앞에서 5일 주민들이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AFP

 

“총기의 성소가 되겠다”는 마을

 

2015년 12월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에서 ‘자생적 극단주의자’ 부부의 총기난사 테러가 일어나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니들스는 참극이 발생한 샌버나디노 카운티에 있지만, 이 마을 주민들은 ‘총을 가질 자유’를 여전히 소중히 여긴다. 캘리포니아는 민주당 지지 색채가 강하고 ‘리버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민 78%가 백인인 니들스는 유독 보수적인 곳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지난 1일 니들스를 찾아가 ‘총기 성소’ 주장을 주도해온 주민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실었다. 지난달 28일 캘리포니아주 길로이의 마늘축제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지나지 않은 때였지만 니들스 주민들은 “대도시의 정치인들이 정한 규칙을 따라주는 일은 충분히 했다”면서 총기 규제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 기사가 나오자 총기 옹호 단체인 ‘총과 진실’ 등의 웹사이트에는 “이제야 주류언론도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며 반겼다.

 

사비에르 베세라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은 4일 “길로이 사건 범인은 주 법을 피해 네바다에서 총기를 산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캘리포니아의 총기규제법도 결국 공격을 막지 못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연방차원의 전국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캘리포니아주가 니들스의 ‘성소’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니들스 주민들같은 ‘풀뿌리 총기 옹호론자’들이 여전히 많지만, 그동안 미국에서 총기 규제를 막아온 주역은 해마다 수백만 달러의 로비 예산을 쓰는 전미총기협회(NRA)였다. 비영리기구 ‘오픈시크리츠’ 등에 따르면 NRA는 2017년과 2018년에 각각 500만 달러에 육박하는 로비자금을 썼다. 이들의 돈은 워싱턴의 의회와 정부 기관들로 흘러갔다. 각 주에서 이들이 의원들에게 건네는 유형무형의 지원을 제외하고 합법적으로 쓰인 로비자금만 그렇다는 얘기다.

 

총기 단체의 로비는 규제 목소리를 쉽사리 무력화하곤 했다. 1999년 4월 미국을 충격에 빠뜨린 콜로라도주 컬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 뒤 규제 여론이 높았지만 NRA의 거센 로비로 입법은 무산됐다. 2007년 4월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12월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공격 뒤에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총기를 규제할 “의미 있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이 때에도 로비가 이겼다.

 

NRA 아성 흔들리나

 

2017년 10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서 총기를 난사한 범인이 반자동 소총에 ‘범프스탁’이라는 액세서리를 달아 발사 속도를 높인 사실이 확인됐지만 연방정부가 이 장치 사용을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올 3월에 이르러서였다. 지난해 2월에는 플로리다주 마조리 스톤맨더글러스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17명이 숨졌다. 공격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애타게 호소했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연방의회는 이번에도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걸 거부했다.

 

NRA는 총기 규제를 방해할 뿐 아니라, 미국의 정치문화 자체를 극단의 대립으로 몰고간 주범 중 하나라는 비난도 받는다. 1994년 선거에서 NRA의 후원을 받은 공화당 우파 정치인들이 대거 의회에 진출한 것이 그 계기였다.

 

하지만 잇단 난사 사건들 때문에 미국 내 총기 논쟁에서 변두리에 밀려나 있었던 규제 목소리는 여론의 주류로 부상했다. 한때는 ‘미국 최강의 로비단체’라 불리던 NRA의 위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월 “총기 친화적인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NRA의 로비의 힘은 줄어들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비영리기구 오픈시크리츠가 웹사이트에 공개한 전미총기협회(NRA)의 연간 로비자금 사용액

 

블룸버그에 따르면 NRA는 2015~2016년 2년 동안 로비에 590만달러를 썼다. 2017년과 2018년 2년 간은 로비자금 액수가 960만달러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집권하고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한 조건 속에서도 이 단체는 ‘입법 승리’를 별로 거두지 못했다. 총기 규제를 오히려 완화하기 위해 NRA가 밀었던 주요 법안 5개는 통과되지 못했고,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민주당 주지사들이 있는 주에서는 잇달아 규제가 강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총기 구매자들의 이력을 확인하도록 한 법안이 올 2월 하원을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NRA가 후원한 의원들이 대거 등장한 1994년은 공격용 무기 구매를 금지한 법의 시한이 만료되는 해였다. 의회는 법의 적용기간을 갱신하지 않았고, 총기 거래는 갈수록 늘었다. 올해 통과된 법안은 그후 25년만에 총기규제를 본격화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 법안은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상원이라는 장벽을 앞에 두고 있다.

 

NRA의 자금력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도 알 수 없다. 블룸버그는 이 단체의 수입이 2016년 3억6700만달러에서 2017년에는 3억1200만달러로 15% 줄었다고 전했다. 2014년 중간선거 때에 이 단체는 2800만달러를 썼고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를 돕는 데에 5560만달러를 퍼부었다. 그러나 지난해 중간선거 때에는 1000만달러를 내놓는 데 그쳤다. 지난 4월에는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단체 내에서 내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트위터에 “내부 싸움을 멈추고 다시 위대함으로 돌아가라!”라는 글을 올렸다.

 

이번엔 바뀔까

 

NRA 최대의 적은 갈수록 커져가는 규제 여론이고, 직접적인 상대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이 돈을 대는 총기 반대 단체들이다. 뉴욕타임스는 텍사스주 엘패소와 오하이오주 데이튼에서 연달아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뒤인 5일 “총기 반대단체들이 옹호단체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여전히 NRA를 포함한 총기 옹호단체들의 위력이 드세기는 하지만 반대 진영의 여론 형성 능력과 로비력도 성장하고 있으며, 그 뒤에 블룸버그가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이 있다는 것이다. ‘총기에 맞서 행동을 요구하는 엄마들’, ‘건스 다운 아메리카’ 같은 단체들은 민주당 의원들과 협력해 총기규제 법안을 만드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모두 총기 규제를 얘기한다. 민주당 내에는 2월 통과된 법안을 넘어선 강력한 조치를 추진하는 의원들도 있다.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을 겪은 코네티컷주의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은 “입법으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 내 책무”라며 엘패소·데이튼 총기난사 뒤 지역의 공화당 의원들까지 만나 규제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적지 않은 수의 의원들이 1994년 무력화된 법안을 되살리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효과적인 총기 규제 조치가 나올지는 불투명하다. 공화당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댄 패트릭 텍사스주지사는 폭스뉴스에 나와 총기난사 문제를 얘기하면서 ‘폭력적인 비디오게임’ 탓을 했다.

 

엘패소·데이튼 사건 뒤 NRA는 희생자들을 “깊이 애도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면서 “이런 비극들을 정치화하는 것에는 가담하지 않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