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독일은 거부한 '호르무즈 연합', 한국은 어쩌나

딸기21 2019. 8. 1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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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낼 배가 없다.”

 

지난해 11월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가시화했을 때 독일 의회의 군사담당관 한스-페터 바르텔스는 이렇게 말했다. 유엔의 평화유지임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동군사작전, 유럽연합(EU)의 지중해 난민구조 임무 등에 참여하느라 미국과 이란 일에까지 끼어들 여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베를린 주재 미국 대사관은 트위터에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추가로 배를 사는 게 어떤가?”라고 비아냥거리는 글을 올렸다.

 

미국이 에너지 요충로 호르무즈 해협을 ‘보호’하는 군사행동에 참여하라며 각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최대의 압박’으로 이란의 백기를 이끌어내려 하지만 압박을 당하는 대상은 이란뿐 아니라 군사행동에 가담하라는 요구를 받는 한국 등 세계의 동맹국들이다. 하지만 독일의 태도에서 보이듯 참여하려는 나라가 현재로선 많지 않고, 유럽에서도 독일·프랑스의 냉담한 태도 속에 영국만 앞장서 나서고 있다.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 세계를 ‘미국의 푸들’과 ‘반미 진영’으로 양분시킨 이라크전을 연상케하는 상황이다.

 

 

‘최대의 압박’에 유럽은 거부감

 

페르시아만(걸프)에서 인도양으로 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수송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이다. 길이 167km의 이 해협으로 매일 1700만 배럴, 세계 석유 수송량의 3분의 1이 실려나간다.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수송량의 25%도 이 항로를 거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호르무즈 호위 연합을 구축하자며 내세운 명분은 이 수송로의 ‘자유로운 통행’을 지키자는 것이다.

 

독일이 거부한 이유는 명확하다. 독일은 주로 러시아와 노르웨이 석유를 수입하기 때문에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낮다. 역사적으로도 독일은 19세기 이란 카자르 왕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서독은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 미국 편에 서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도왔지만 동시에 이란의 에너지 기술개발을 돕는 이중트랙을 밟았다. 이란 개혁파의 상징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 시절 두 나라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하타미는 이란 이슬람 혁명 시절 함부르크의 이슬람문화원장을 맡아 독일과 친분을 쌓은 인연이 있었다.

 

독일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이 아님에도,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P5+1’이라는 이름으로 이란과의 핵협정에 참여해 트럼프 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린 핵협정을 이끌어내는 데 한몫했다. 미국이 손바닥 뒤집듯 협정을 뒤집고 군사작전까지 들먹이는 것을 독일이 반길 리 없다. 지난달 말 하이코 마스 독일 외교장관은 미국 주도 호르무즈 연합에 참여하는 걸 거부했을 뿐 아니라 이란을 향한 ‘최대의 압박’이라는 트럼프 구상 자체를 비판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사민당의 안보전문가 롤프 뮈체니히 하원의원은 “핵협정을 무책임하게 뒤집은” 트럼프를 비난하면서 유엔 안보리 승인 없는 군사행동은 무엇이 됐든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원 외교위원장인 기민련의 노르베르트 뢰트겐 의원도 미국 주도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명분 싸움’에서 밀리는 미국

 

독일은 병력이 18만명으로 세계 30위권이고, 해군이 프리깃함 10척과 코르벳함 5척, 어뢰탐지정 10척, 어뢰제거함 3척, 잠수함 6척 등을 보유하고 있다. 호르무즈에 배가 없어 못 보낼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독일의 불참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독일은 연방방위군 내에 육·해·공군을 두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패배 뒤 독일군의 군사활동은 극히 한정돼 있었다.

 

무엇보다 독일은 유엔이나 나토, EU 등 다국적 단위의 ‘공식 임무’에만 참여해왔다.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남수단, 말리 등의 평화유지 임무나 지중해 난민 보호가 독일 군의 주된 해외활동이었다. 그마저도 파병 규모는 수십~수백명 단위로 작았다. 이라크전 때에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가 부시에 반대하는 선봉에 섰다.

 

세계가 인정할 명분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독일이 불참을 선언했다는 사실은 미국에는 큰 타격이다. 현재 호르무즈 작전에 참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나라는 영국과 이스라엘이다.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다른 나라들은 EU가 주도하는 별도의 임무가 있다면 고려해볼 수도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성사될지 불확실하다. 이스라엘이 가담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란에 적대적인 걸프 아랍국들이 미국 편에 서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호주 등의 나라들”에 연합 참여를 요청했다고 했다. 유럽이 발을 빼면 이라크전 때처럼 호르무즈 호위 연합체는 명분 없는 ‘잔챙이 군단’이 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을 향한 미국의 참여 압력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아시아 압박 강해질 듯

 

미국은 지난달 한국이 호르무즈 수송로를 호위하는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며 아시아로 가는 석유를 “왜 미국 돈으로 지키냐”고 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압력을 받은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전략적인 지역에서 선박을 보호하는 일에 어떻게 기여할지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가 반대한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고 전후 이라크에 파병했다. 한국은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평화유지군을 파병한 적 있으나 이는 유엔 안보리가 승인한 임무였다.

 

한국은 독일 같은 나라와 달리 호르무즈 수송로 안전에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은 중국과 인도에 이은 이란의 세 번째 수출상대국이었다. 이란의 대외 수출품 11.1%가 한국으로 향했는데 대부분 석유·천연가스였다. 한국으로 들여오는 원유의 70~80%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역으로, 이는 한국이 섣불리 이란을 등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합뉴스는 이란 측이 10일 한국에 “미국 주도 호르무즈 연합에 불참해달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아덴만의 청해부대를 호르무즈에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칫 장기적 이익을 해칠 수 있다.

 

중국의 호르무즈 이권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트럼프 정부가 “선박 안전은 알아서 지키라”고 한 상대 중에는 중국도 있었다. 중국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 석유·천연가스를 가장 많이 사가는 나라다. 이란 제재에는 반대하지만 호르무즈 수송로 안전은 중국에는 중요한 문제다.

 

이달초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방문한 니젠 중국 특사는 유조선의 억류 같은 일을 막기 위해 미국이 제안한 연합과 협력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행의 자유’를 둘러싸고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대립해온 중국이, 호르무즈에선 미국에 뜻밖의 파트너가 되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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