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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산다고? 얼음 녹으니 곳곳에서 '눈독'

딸기21 2019. 8. 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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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프랑스 파리를 떠나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3만7000피트 상공에서 고장을 일으켰다. 497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기는 다행히도 캐나다 래브라도의 공군기지에 착륙했고, 탑승자들은 모두 무사했다. 하지만 사고 경위를 조사해야 하는데 덴마크의 자치지역인 그린란드 어딘가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A380 여객기의 부품을 찾을 수가 없었다. 2년 가까이 수색작업을 벌인 덴마크 정부가 지난 6월말 사고기의 엔진 부품을 찾아냈다. 올여름 폭염에 얼음땅이 녹으면서 부품이 드러난 것이다.

 

북극 밑 ‘산불 경고’

 

‘북극서클트레일’은 그린란드의 시시미우트와 캉에를루수아크를 잇는 165km 길이의 트레킹 루트다. 지난달 이 일대에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이 일어났다. 시시미우트 당국은 더위를 피해 찾아온 하이커들에게 “산불이 통제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며 경계령을 내렸다. 북극권 뉴스 전문매체인 캐나다 누낫시아크의 지난달 보도에 따르면 산불은 순식간에 375㎢ 면적으로 번졌고, 관광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덴마크의 자치지역인 그린란드에서는 지난 7월 한 달 동안에만 2000억t 가까운 얼음이 녹아내렸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해 10월 그린란드 북서부 우페르나비크 부근의 산악지대인 샌더슨스호프에서는 북극곰이 헬리콥터를 공격하는 일이 일어났다. 곰은 지상에 멈춰서 있던 헬리콥터의 유리창을 깨뜨렸고, 안에 있던 파일럿과 탑승자 두 명은 화들짝 놀라 밖으로 피신했다. 탑승자들은 우편·통신망을 정비하러 다니던 통신회사 텔레포스트의 직원들이었다. 서식지가 줄어든 곰이 먹이를 찾기 위해 헬리콥터를 덮친 것으로 보이며, 경찰이 달려왔을 때 곰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고 코펜하겐포스트는 보도했다.

 

그린란드가 녹고 있다. 기후변화 추이와 올여름 유럽의 폭염을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 덴마크 기상연구원에 따르면 유럽 남부·중부의 뜨거운 공기가 그린란드로 이동하면서 지난달 한 달 동안에만 2000억t 가까운 얼음이 녹아내렸다. 그린란드는 표면의 82%가 얼음으로 덮여 있다. 하지만 지난 1일에는 얼음이 녹는 현상이 나타난 지역이 56.5%에 이르렀다. 1000억t의 얼음이 녹으면 세계의 해수면 높이가 0.28mm 높아진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이달 초 “그린란드의 얼음이 녹으면 세계의 해안마을들이 위험해진다”고 재차 경고했다. 그린란드의 얼음이 모두 높으면 세계의 해수면은 6m 이상 올라갈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측한다. 거대한 얼음땅이 단시간 내에 모두 녹아내리진 않겠지만 해수면이 몇 cm만 올라가도 방글라데시 같은 아시아의 저지대 나라들에겐 큰 타격이다.

 

곡절 많은 얼음땅

 

북극해에 면한 그린란드는 면적 216만㎢로 호주와 남극 ‘대륙’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덴마크에 속한 자치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유럽보다 캐나다 북동부에 더 가깝게 붙어 있다. 역사적으로도 오늘날의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2013년 기준으로 5만6000명이 사는데 그중 88%가 북극권 원주민인 이누이트다. ‘그린란드 이누이트’가 대부분이고 일부 덴마크계 이누이트도 있다.

 

그린란드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약 45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척박한 환경만큼이나 이곳 사람들의 삶도 쉽지는 않았다.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 대부분이고, 지금도 주민의 3분의 1이 자치정부 수도인 누크에 모여 산다. 1262년부터는 노르웨이의 통치를 받았다.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노르웨이가 그린란드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게 되자 15세기 말에는 난데 없이 남쪽의 해양강국 포르투갈이 탐사대를 보내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했다. 18세기에는 덴마크인들이 손을 뻗쳤고, 노르웨이와 협약을 맺어 두 나라가 그린란드를 통제했다. 노르웨이의 힘이 약해지면서 1814년 양국의 협약은 깨졌고 그린란드는 덴마크령이 됐다. 1953년 덴마크 헌법은 그린란드를 완전히 통합된 국가의 일부분으로 규정했다.

 

목소리를 배제당했던 그린란드 원주민들의 자치 투쟁이 벌어졌다. 특히 이슈가 됐던 것은 덴마크가 1973년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것이었다. 그린란드인들은 1982년 주민투표를 통해 EEC 탈퇴를 결정했다. 그린란드는 3년 뒤 경제공동체를 빠져나갔고, 덴마크는 남았다. 서로 다른 길을 걷기로 공식화한 것이다.

 

그린란드 일룰리사트의 빙하.  사진 visitgreenland.com

 

1979년부터 어느 정도 자율성을 인정받았지만 그린란드의 자치에는 빈틈이 많았다. 그린란드인들은 2008년 역사적인 자치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듬해 6월부터는 외교·국방을 빼면 치안, 사법, 회계, 광업, 항공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홀로 걷는 길이 쉽지는 않다. 캐나다와 미국 원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자살률이 높고, 알콜 중독과 에이즈 감염 문제도 심각한 편이다.

 

그린란드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툴레 미군기지다. 툴레는 북극권 일대 원주민들의 한 갈래로, ‘툴레 문화’라 불리는 문화권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군이 1953년 북극점에서 1500km 떨어진 노스스타 만에 공군기지를 만들고 나이키미사일을 배치했다.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 이누구이트 부족은 200km 떨어진 시오라팔루크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당시 미국과 덴마크 정부는 원주민들과 합의했다고 했으나 거짓말이었다. 그 후 반세기 넘게 흐르면서 원주민들은 기후변화 때문에 거듭해 이곳저곳으로 밀려나고 있다.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산다고?

 

1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 부동산을 사려고 눈독 들이는 곳: 그린란드’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그린란드 땅 매입에 대해 몇 차례나 거론하며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나 무게가 실린 물음이었는지는 그때그때 달랐지만 반복해서 그린란드에 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분명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트럼프는 잘 알려진대로 부동산 사업가 출신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개인 사업 차원에서 부동산을 사들이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트럼프는 보좌관들에게 ‘미국 정부가 그린란드를 사들일 수는 없는지’ 여러 차례 물었다고 한다. 북극해의 거점인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누구나 안다. 광물자원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몇 보좌관들도 트럼프의 그린란드 매입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다음달 초 덴마크를 방문한다. 당초 지난 5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그린란드를 방문하기로 돼 있었는데, 이란 호르무즈 위기가 터지면서 취소됐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트럼프 정부가 그린란드를 살 수는 없다. 그린란드는 그곳 사람들 땅이고, 덴마크 정부가 이 거대한 섬을 미국에 팔아넘길 가능성도 없다. 오히려 얼음땅이 녹고 광물자원 개발이 활성화될 조짐이 일면서 그린란드인들의 ‘더 많은 자치’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린란드 빙하가 녹는 면적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올들어 8월 14일까지 빙하가 녹은 날짜 수를 표시한 지도.  자료 미국 조지아대

 

지난달 미국 포린어페어스는 그린란드가 이참에 아예 덴마크로부터 떨어져나와 독립국가가 될 가능성을 점치는 기사를 실었다. 올 1월 코펜하겐포스트에 보도된 여론조사 기사를 보면 그린란드 주민들의 80%가 독립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8.4%는 ‘당장’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45.7%는 ‘10년 이내에’ 투표로 결정하는 시나리오를 지지했다. 62.7%는 독립을 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 걸로 봤다.

 

개발 이익이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지역인만큼 친환경 경제에 대한 관심이 컸다. 외부에서는 광산에 눈독을 들이지만 그린란드 주민의 71%는 지속가능한 에너지 부문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했고 59%는 온실가스 배출을 더 규제해야 한다고 답했다.

 

‘제2의 남중국해’ 되려나

 

주민들은 독립을 원하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미국발 ‘매입설’은 기후변화와 함께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는 그린란드 지정학의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도 문제는 G2 즉 중국과 미국이다. 미국은 덴마크와 군사협력 협정을 맺고 있다. 그러나 그린란드는 중국과 계속해서 협력을 늘려왔다. 지난해 1월 중국은 ‘북극 실크로드’라는 구상을 내놨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일대일로 계획을 북극권까지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그린란드의 새 공항 건설사업을 수주했다. 2017년 그린란드 자치정부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해 공항 문제를 논의하자 다급해진 미국은 서둘러 자신들이 돈을 대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돈 문제로 공항건설은 결국 지난 6월 무산됐지만 국영석유회사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CNPC)과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그린란드 석유 채굴권을 따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미국 매체 애틀랜틱은 그린란드가 ‘제2의 남중국해’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내놨다. 중국의 게걸스런 에너지 욕심과 미국의 군사기지가 맞부딪치는 곳인 만큼 미·중 패권다툼의 다음 무대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양강의 갈등이 아니더라도 미국과 유럽과 아시아의 자본이 해빙에 맞춰 그린란드의 자원을 넘보고 있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에게 기후변화는 파워게임이나 돈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삶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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