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딸기21 2019. 3. 9. 16:25

언젠가 어디선가 챙겨놓았던 책. 읽고 있던 책이 좀 많이 어려운 것이었기에, 겨울이 가는 것을 기념하면서 뭔가 낭만적인(!) 것을 한 권 꺼내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집어든 것이 이 책, 배리 로페즈의 <북극을 꿈꾸다>(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몇 장 읽기도 전에, 봄날의책이라는 이 출판사의 팬이 되기로 결심. 몇년 안 됐는데 앞표지 안쪽 색지가 덜렁덜렁. 제본상태 빼고는 모든 것이 넘나 마음에 든다. 내용도, 표지도, 번역도, 책의 질감도, 띠지나 앞뒤 날개 없는 깔끔한 형태도. 덕택에(?) 저자 소개나 역자 소개 '따위'는 없다. 하지만 글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책. 


여름이면 평원은 개빙구역과 바다가 되고, 하늘 아래 갈색의 섬 툰드라가 된다. 하지만 이곳엔 놀랍고 황홀한 광경들도 있다. 캐나다 툰드라의 한가운데에 있는 후드 강의 윌버포스 폭포는 난데없이 48미터를 곤두박질치며 거친 계곡으로 떨어지는데,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들린다. 그린란드 빙상의 바다 쪽 가장자리에 80킬로미터 길이로 뻗은 거대한 훔볼트 빙하는 무자비한 기세로 쪼개져 케인 해분으로 빙산들을 밀어낸다. 멜빌 섬의 중앙에서 동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있는 황무지는 주황색과 옅은 노란색, 붉은 색으로 침식된 사막 같은 곳으로 유타 주 남쪽에 있는 협곡과 계곡들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훨씬 더 이국적인 곳들이 있다. 이를테면 러글스 강. 엘즈미어 섬 헤이즌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이 강은 겨울의 지옥 같은 어둠 속으로 얼어붙은 연기를 뿜어내며 600미터 쯤 흘러가다 스스로 만든 얼음장 밑으로 사라진다. 배서스트 곶의 남쪽부터 호턴 강에 이르는 지역에는 역청질의 셰일이 땅 밑에서 수백 년째 타고 있어 해안 전체가 이글거리는 거대한 산업폐기물 더미처럼 보인다. 코북 강 중류의 남쪽에는 사방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움직이는 모래땅 위로 30미터 높이의 모래언덕들이 솟아 있다. 동부 그린란드에 있는 퀸루이자랜드라는 북극 오아시스는 그린란드 만년설을 장벽처럼 두른 풀과 여름 야생화들이 만발한 계곡이다. 

전반적으로 북극은 고전적인 사막의 외형을 보여준다. 황량하고 편평하고 드넓고 조용하다. 퀸엘리자베스 제도의 마른 툰드라 평원과 남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낮은 습지들은 풍화된 바위와 자갈이 흩어진 광활한 공간으로 이어진다. 알래스카 북부나 배핀 섬과 엘즈미어 섬에는 그 속에 있어도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깎아지른 듯한 북극 산맥이 있어 곳곳에서 느껴지는 금용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거의 아무 것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는 그 대지와 먼지 하나 없는 공기층을 통과하는 햇빛이 보여주는 유난히 선명한 상 때문에 동물들은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그리고 동물들의 존재감은 강렬하다. (20-21쪽)


툰드라의 풍성한 생물학적 증거들은 그 땅이 주는 텅 빈 느낌을 여지없이 몰아낸다. 멀리서 툰드라 회색곰이 우리를 살펴보려 뒷발로 일어선다. 접시처럼 둥그런 앞발을 가만히 늘어뜨린 그 자세는 몹시 인간적이라 적잖이 당황스럽다.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의 서북극 지역이라면 토사가 유실된 냇가 둔덕에서 매머드의 엄니가 발에 챌지도 모른다. 4000년에 걸쳐 북극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는 해안가에 위치한 옛 도싯 야영지들은 시대를 초월한 인류의 의지를 분명하게 증명한다. 드물게는 12세기 툴레 사람들이 썼던 큰 집의 으리으리한 초석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훨씬 위화감이 큰 20세기 거주지의 잔해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양철 뚜껑을 눌러 닫는 빨간 담배 깡통, 무당연유 깡통과 메이플시럼 깡통. 최근까지 이용한 듯한 여러 야영지에는 사용하고 버린 손전등 전지들이 무슨 동물의 똥 더미처럼 쌓여 있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라이플과 산탄총용 폐 탄약들이 발견된다. (22쪽)


유추컨대 저자는 북극을 많이 돌아다닌 사람. 북극 원주민들을 만나고, 하늘과 바다와 땅과 얼음과 동물들을 보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여행기이기도 하고 북극 개론서이기도 하다. 북극을 통해 지구를 고민하는 에세이이기도 하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두뿔종다리에게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자신이 깃든 대지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을까? 대지는 품 안에 든 인간의 상상력을 어떻게 규정할까? 어떻게 욕망, 이해하려는 욕망 그 자체가 지식을 빚어낼까?

나는 해답을 구하기 위해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여행했다. 배핀 섬 북쪽에서 일각고래를 사냥하고 베링 해에서 바다코끼리를 사냥하는 에스키모들,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해안과 근해 연구에 나선 해양생태학자들, 캐나다 군도의 풍경화가들, 강풍을 맞으며 영하 34도의 겨울 해빙 위에서 원유 시추를 하는 석유 채굴 인부들, 그린란드 서해안을 따라 북상해 북서항로로 진입하는 화물선의 다국적 선원들과 함께. 

... 이렇듯 다른 시각들 덕분에 이 북방 대지에서의 인간의 미래는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서 이곳은 누구나 자기 희망의 투사물인 꿈을 만나는 곳이 되었다.

각각의 꿈에는 자신의 삶이 아무 의미 없이 소모되지 않기를 바라는 개인의 희망이 담겨 있다. 그보다 훨씬 큰 꿈, 인간의 꿈 이야기를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간직해왔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 '과거의 지혜가 미래를 압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따르는 결단과 희망의 이야기다.

우리는 4만 년 동안이나 이 대지에서 우리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얘기해왔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믿음이 하나 있다. '이 대지 위에서 현명하게, 그리고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대지에 깃든 모든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답답한 무지를 깨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이곳은 클리블랜드 시만 한 빙산들 사이로 비행기가 지나가고, 별에서 북극곰이 날아와 내리는 곳이다. 이곳은 사막처럼 상징과 어렴풋한 전조들이 널린 곳이다. 두뿔종다리 둥지 앞에서 허리를 굽히는 간단한 절 한 번으로 우리는 다시 한 번 꿈꾸는 것에 인생을 걸어보는 것이다. (26-27쪽)


북극이라는 곳의 지질학적, 생물학적, 인류학적 지식을 풀어놨는데 동물 이야기는 모두 흥미진진하고 하늘과 얼음의 이야기는 묘사만 보아도 궁금하기 짝이 없도록 신비하다. 구미의 북극 탐험 역사나 에스키모들에 대한 내용도 중요한 축을 이루는데, 냉정하면서도 따뜻하다.


고래수염은 때때로 4.5미터 길이에 달하기도 했다. 신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머리를 둘러싼 살진 몸체는 많게는 50센티미터 두께의 지방층으로 둘러싸여 무게당 지방의 비율이 다른 어떤 고래보다 높았다. 크기가 적당한 이 동물 한 마리에서 25톤에 이르는 기름과, 1톤이 넘는 300대 이상의 고래수염을 얻을 수 있었다. 고래수염과 꼬리(아교를 만들기 위해 채취), 지방층이 제거된 14미터 길이의 도살된 사체는 그대로 버려져 구름 같은 바다새 떼를 끌며 바다 위를 표류하는 '크랭'이 되었다.

천천히 헤엄치기 때문에, 죽으면 물 위로 떠오르기 때문에, 남다른 양의 기름과 수염이 나오기 때문에, 그 생물, 그린란드 고래는 사냥하기에 딱 적합한 고래였다. 북극고래. 그 고래. 나중에 서북극 지방에서는 이 생물의 턱선 모양을 따서 '활머리'라고 불렀다.

이 동물의 피부는 회색이 섞인 벨벳 같은 검은색인데, 만지면 조직이 성긴 종이처럼 살짝 골이 진다. 피부는 아래턱 밑에서 배 쪽으로 가면서 흰색으로 바뀐다. 짙은 갈색 눈은 황소의 눈만 한데, 거대한 머리 크기에 비하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다. 화산 모양의 숨구멍이 높이 솟아서 해빙의 좁은 틈새로도 숨을 쉴 수 있다. 이 동물은 접촉에 아주 민감해서 수면에 떠서 자다가도 새 한 마리만 내려앉으면 화들짝 깨어난다. 작살에 맞았을 때의 격심한 고통이 어떠할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35쪽)


활머리, bowhead whale.



에스키모들은 자신들이 오래 살아남았다는 기본적인 사실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했다. 그들은 유럽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선원들과 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고래잡이 선원들이 에스키모 앞에서 느꼈던 지적 우월감은 가짜였고 주제넘은 것이었다.
유럽인들은 에스키모들을 멍청이라는 뜻으로 '야크'라고 불렀다. 에스키모들 쪽에서 보자면 고래잡이 선원들은 손재주도 여자들도 없이 살아가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에스키모들은 스스로를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대해 비웃었다. 그들은 지금 폰드 만의 현대적인 마을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감정들, 즉 일리라와 카피아가 교차하는 심정으로 고래잡이 선원들을 바라보았다. 일리라는 외경심을 동반하는 공포이며, 카피아는 예측할 수 없는 폭력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공포다. 북극곰을 바라보는 것은 일리라다. 얇은 해빙 위를 걷는 것은 카피아다. (39-40쪽)


캐나다의 역사학자인 W. 길리스 로스는 데이비스 해협 어장에서 3만8000마리에 이르는 그린란드 고래가 주로 영국 선단에 의해 살육됐다고 조심스럽게 주장했다. 오늘날 그 지역에 남아 있는 개체는 많아 봐야 200마리다. 디프테리아나 천연두, 결색, 척수성 소아마비 등등으로 죽은 토착 인구는 추정 숫자조차 없다. 역사학자들은 북아메리카 토착 인구의 90퍼센트 정도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 이 생태계에서 가장 큰 위험에 처한 존재는 활머리가 아니라 원주민들의 통합적인 세계관이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세계관을 대체할 만한 오래된 서사, 즉 세계를 통제하거나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서구과학이 있을 뿐 저 대지와 인간의 유대관계를 설명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

새로 드러나는 땅에서 마주치는 이처럼 다양한 인간들의 시각과 이해관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것이자 동시에 걱정스러운 점은 땅 자체의 다름, 이런저런 견해들의 성질 자체를 바꿔버리는 땅의 다름이다. 우리는 양립하는 시각들도 쉽사리 수용하는 온대의 대지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북극 생태계의 생물학적 특성은 다르다. '양쪽을 다 수용'하려 시도하기에는 생태적으로 너무나 취약하다. 그렇다면 우려해야 할 것은 북방 문제에 대해 중재와 타협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 조급함이다. (44-45쪽)


나는 그날 동그란 시추공으로 고개를 내민 물범을 보았다. 시간을 초월한 시간이었다. 물범과 나는 완벽한 부동자세로 서로를 살펴보았다. 파카를 입은 나는 일을 하다 말고 딱 사로잡힌 꼴이었고, 물범은 암갈색 눈을 반짝이며 고양이를 닮은 회색 대가리를 물 위로 내민 채 꼼짝 않고 있었다. 물범을 붙잡고 있는 건 호기심이었다. 나를 붙잡고 있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물범의 세계를 무시하고 인간들이 그곳에서 하던 일을 완료하는 것, 대지를 무시하고 인간의 과제와 처지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 대지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 어쩌면 치명적이지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세 개의 주제가 있다. 북극이라는 대지가 인간의 의식세계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대지를 이용하고자 하는 욕망은 대지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규정하는가? 그리고 부유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질문에 명확한 답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삶의 일반적인 요소들이 다르게 이해되는 한 장소를 알게 됨으로써 우리는 다른 시각을 접할 수 있다. (47-48쪽)


12월 21일 동지 무렵에 한창 극야 중인 북극점에 선다면 우리는 지는 별을 하나도 보지 못할 것이다. 별은 하나같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눈앞을 지나간다. 시간을 두고 별이 그리는 빛줄기를 사진에 담아보면 다양한 색의 원이 서로 겹쳐진 채 수평선과 평행하게 그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별이 그리는 원은 한 점을 중심으로 차츰 지름이 줄어들다가 마지막에는 2도 이내의 원을 그리는 북극성의 흔적을 남긴다. 그 안의 검은 원은 북극점 바로 위에 놓인 빈 공간이다. (58쪽)


12월 21일에 해를 보려면 남쪽으로 상당히 먼 거리를 걸어 북극권까지 내려가야 한다. 장장 2577.6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이다. 북극에는 땅에 그늘을 드리우는 숲이 없는데다 몇 곳을 제외하면 어둠을 다툴 산맥의 밤그림자도 없다. 이런 식으로 보면 북극은 사막과 같다. 툭 트이고 아무것도 시선을 가로막지 않는 곳. 보름달만 갖고도 너끈히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밤이 밝은 곳. 북극의 낮은 매일 새로 시작되지 않는다. (59쪽)


(남쪽으로의 상상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북쪽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하면) 남쪽에서 올라오면서 받은 전반적인 인상은 매우 복잡한 세계에서 아주 단순한 세계로 이동한다는 느낌이다. 어느 한 종의 나무가 두드러지지 않는 남쪽의 혼합림을 지나다가 어느 순간 산등성이에 보이는 유일한 녹색이 한두 종의 나무로 구성된 침엽수림으로 바뀌는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하다는 느낌은 뭔가 환상 같은 것이다. 야생의 우아함을 간직한 북극의 생태계도 열대 생태계 만큼이나 세련되고 복잡하다. 그저 움직이는 부분이 적을 뿐이다.

북극 생태계의 복잡성은, 말하자만 열대의 같은 구역에 서식하는 100종류의 딱정벌레들 간의 난해한 먹이 선호관계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빛과 온도 구간에 대한 주기적인 적응의 복잡성과 같은 것이다. 계절에 따른 이주 동물의 대규모 이동과 같은 것이고, 계절에 따라 변동하는 개체수처럼 급격하지만 자연스러운 적응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적도에서 북방으로 온 우리 눈에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커다란 변화는, 이 땅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전문가의 눈에도 이 땅은 생명의 요소들, 흐르는 물이나 빛, 온기 같은 것들이 결여된 절대적인 한계 지역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도 틈새들은 있다. 그리고 틈새들은 하나같이 그곳을 편안한 집으로 삼는 동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61쪽)


나는 동물과의 마주침이 그처럼 인상적인 이유가 이곳의 드넓은 공간과 생물 환경의 단순함, 짧은 생물학적 역사 때문인지, 아니면 생명을 소멸시킬 수 있는 나 자신의 능력을 여기서 깨달았기 때문인지 알지 못했다. 생태계 자체는 위스콘신 빙하가 물러난 뒤에 시작됐으니 그저 1만 년 정도 됐을 뿐이다. 이곳이 지구에서 가장 어린 생태계라는 사실은 뭔가 신선하면서도 절박한 느낌을 준다. 우연이겠지만 역사학자들은 인간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초라하게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도 1만 년 정도라 말한다. 그러므로 북극 생태계와 문명화된 인간은 동일한 짧은 시대, 완신세에 속한다. 4만 년 전에 유럽에 등장한 크로마뇽인부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본다면 사실 북극은 인류보다 더 어린 셈이다. (76쪽)


빤히 쳐다보는 나그네쥐와 시선을 마주치며, 또는 오소리의 발자국을 쫓으며 툰드라를 걷다 보면 우리의 지혜가 얼마나 허술한지 좌절하게 된다. 우리가 북극을 착취하는 형태, 우리가 북극의 천연자원 이용을 증가시키는 형태, 우리가 '무엇이든 착취'하려는 그 욕망의 형태는 분명하다. 이곳, 지저귀는 새들과 멀리 서 있는 카리부, 존경할 만한 나그네쥐들의 땅을 걷는 것이 이처럼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우리에게 없거나, 있어도 불확실한 뭔가 때문이 아닐까? 바로 자제 말이다. (77쪽)


사향소는 사실 '사향'소가 아니라고. 하마가 말이 아니라는 것, 코뿔소가 소가 아니라는 것보다는 덜 충격적이지만.

사향소는 적들이 나타나면 궁둥이를 맞대고 둥글게 원을 지어 대항하는데, 새끼들을 사이사이에 끼우거나 원 안으로 집어넣어 보호한다고 한다. 


사향소는 중국 북부의 고원에서 왔다. 그곳에서 사향소의 조상들은 양과 소처럼 고산 지형과 툰드라 지형에 적응했다. 캐나다의 고생물학자 리처드 해링턴은 오비보스속 자체가 200만년 전에 중앙 시베리아의 스텝 지역에서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비보스의 유전적 형질이 발현되는 몇 가지 종을 발견했다. 하나는 오비보스 팔란티스. 크로마뇽인들이 사냥했던 유라시아 사향소로 러시아 타이미르 반도에서 근대까지 살아남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비보스 모스카투스는 현대의 북아메리카 동물로 12만 5000년 전 일리노이안기의 끝 또는 그 전에 얼어붙은 베링 해를 건너 이주해왔다. 

... 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지금의 오비보스 모스카투스는 마지막 빙하기인 위스콘신기가 한창일 때 뉴저지주와 네브래스카 주같이 한참 남쪽에서 살았다. 

1만8000년 전 빙하가 물러가기 시작할 때 사향소들이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요즘의 이론들은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퀸모드 만 남쪽과 그레이트베어 호수의 북쪽, 텔론 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그들의 직계 후손들은 황무지사향소 또는 캐나다본토사향소라고 불린다. 빙하가 물러간 뒤 고위도 북극의 피난지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그린란드 동부 해안을 따라 엘즈미어 섬과 데본 섬, 멜빌 섬으로 남하한 두 번째 무리는 고위도북극사향소 또는 그린란드사향소라 불린다.

유일하게 현존하는 사향소의 친척은 티베트 북부에 사는 타킨으로, 큰코영양처럼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짧고 튼튼한 다리와 뒤쪽으로 굽은 작은 뿔을 가진 육중한 몸집의 동물이다. 이아손이 배를 타고 구하려 했던 두터운 황금양털이 바로 타킨의 털이었다. 타킨 다음으로 가까운 친척으로는 일본산양과 샤모아, 흰바위산양, 바바리양 등이 있다.

사향소라는 이름만큼이나 '사향 냄새가 나는 양 같이 생긴 소'라는 뜻의 학명 '오비보스 모스카투스'도 잘못된 이름이다. 이 동물은 사향주머니가 없다. (98-99쪽)


사진 Uphere Magazine



19세기에 북미의 고래잡이 선원들을 먹이고 허드슨베이사와 교역하기 위해 인디언들과 에스키모들이 동쪽의 아북극에 있던 사향소들을 몰살시켰다. 그리고 20세기 초 그린란드에서는 동물원에 보낼 새끼 한두 마리를 잡거나 모피 사냥꾼들과 개들의 식량으로 쓰기 위해 사향소 무리들을 깡그리 살육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노르웨이인 모피 덫사냥꾼들이 덫의 미끼로 쓰거나 동물원에 팔려고 잡은 야생동물들과 썰매개들을 먹이기 위해 사향소들을 사냥했다. 이 때문에 비난을 받은 노르웨이인들은 분개해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대한 '인종적인 적응'이 덜 된 덴마크인들이 이동 속도가 느려서 덫사냥기지를 오가는 길에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동물을 죽인다며 숫자가 많지도 않았던 덴마크인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사향소들에게 미친 영향 면에서 더 나쁜 상황은 동물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사업가들이 사향소 새끼를 확보하는 현실적이고도 유일한 방법은 방어 대형을 형성한 성체들을 모두 죽이는 것밖에 없었다. 죽은 동료들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뿔을 들이밀며 돌진하는 사향소의 모습은 문명화된 인간이 만든 광경 중에서도 가장 비통한 장면이었다. 

결국 동물원들은 이 사업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협정서에 조인했다. 그리고 모피 덫사냥꾼들은 덴마크가 그린란드 동해안에 보호권을 발동하자 마침내 사업에서 손을 뗐다. (120-121쪽)


북극곰의 털이 흰 색이 아니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추우니까 따숩도록 진화를 한 나머지, 실은 북극곰들은 너무 더워서! 자꾸만 추운 곳으로 향해간다고. 그러니 동물원에 사는 녀석들은 얼마나 힘들까. 


우리가 보는 연노랑색과 진주색이 섞인 북극곰의 털빛은 햇빛이 보호털에 반사된 결과다. 털 자체는 광학적으로 투명하거나 무색이다. 

북극곰의 털은 다른 어떤 포유동물과도 같지 않다. 예전에는 북극곰의 털이 늑대나 순록 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보온 효과가 떨어져 보이는 점이 수수께끼였다. 또 피부와 물 사이에 공기층을 형성해주는 비버의 털과 달리 북극곰의 털은 물속에서 보온 능력의 90퍼센트를 잃어버린다. 밝혀진 바로는 물속(물은 정지된 공기보다 20배나 효과적으로 체온을 빼앗아간다)에서 체온을 유지할 때 북극곰은 털 대신 지방층에 의존한다. 

육지에서 북극곰은 빽빽한 솜털로 이루어진 두터운 속털층과 상대적으로 성긴 15센티미터 길이의 보호털층으로 보호받는다. 이 보호털은 질기고 반짝여서 합성섬유처럼 보인다. 또 속이 비어 있어서 털이 젖었을 때도 뭉치지 않고 빳빳하게 선다. 보호털이 성긴데다 부드럽기 때문에 곰은 물이 얼기 전에 손쉽게 털어낼 수 있다. 

우연히 발견된 속이 빈 털의 두 번째 기능은 육지에서 북극곰이 어떻게 체온을 유지하는지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다. 공중에서 흰 눈과 얼음을 배경으로 곰의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오지 않는다. 1960년대 말경에 한 미국인 과학자가 포유동물이 해빙보다 더 많은 열을 발산한다는 데 착안해서 적외선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북극곰은 단열이 너무 훌륭해서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과삭자는 자외선 촬영을 시도해보았다. 북극곰들은 빛의 파장을 흡수해 마침내 하얀 얼음 위에 검은 형체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이 두 번째 기능의 발견이었다. 북극곰의 보호털은 광도파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보호털들이 태양에서 나온 짧은 파장의 에너지를 모아 곰의 검은 피부로 보낸다. 

(흔히 동물원에서 보는 북극곰의 털색과 몸집은 잘못된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동물원 우리의 고인 물에서 자라는 녹조류가 손상된 보호털 속에서 증식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증상으로 고통받는 곰들은 녹색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지방층이나 두터운 겨울털을 형성하지도 못할 정도의 기후에 방치되면 성긴 털 사이로 검은 피부가 보이기 때문에 북극곰들은 이발을 당하거나 병든 것처럼 보인다. (136-137쪽)


북극곰을 경외심으로 대한 사람들, 고깃덩이로 대한 사람들.


1896년의 어느 한가한 여름날 오후, 아문센 만에서 할 일 없는 고래잡이배 선장이 그저 심심풀이로 혼자 35마리를 쏘았다. 호기심 많고 공격적이지 않은 곰은 아주 이상하게 얼음 사이를 움직이는 물체인 배에 너무도 쉽게 이끌려 계속 그 무덤에 발을 들여놓았다.

1875년, 어느 고래잡이배 선원들이 배를 대놓고 짙은 안개가 낀 해안 정착빙 위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경기 도중에 북극곰 한 마리가 나타나 사람들 사이를 들락거리며 공을 쫓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도망쳤다.

19세기의 사례들 중에서 가장 마음 아프고 비통한 일화들은 암컷과 새끼들 간의 유대관계를 심술궂게 이용한 얘들이다. 윌리엄 스코어스비는 곰을 꾀려고 바다코끼리 지방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던 선원들의 얘기를 들려준다. 암컷 한 마리가 가까운 곳에 새끼들을 앉혀두고 불붙은 지방 덩어리를 낚아채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암컷에게 작은 지방 덩어리를 던졌고, 암컷은 그것을 새끼들에게 가져갔다. 어미가 마지막 조각을 얻으려고 다가오는 순간, 사람들이 두 마리 새끼를 쏘아 죽였다. 그로부터 30분이 넘도록 암컷은 "두 발로 새끼들을 일으켜 세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어미는 일어나 걸어가며 새끼들을 불렀고, 돌아와 새끼들의 상처를 핥았다. 어미는 다시 일어나 걸어가다가 "신음소리를 내며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 다시 돌아와 한없이 다정하게 새끼들을 쓰다듬었다." 지루해진, 아니 아마도 굴욕감을 느낀 사람들은 암컷을 쏘아 죽이고 새끼들과 함께 얼음 위에 남겨놓은 채 떠났다. (170쪽)


1876년 11월에 알렌 영 경은 증기선 갑판에서 어미 한 마리와 새끼 한 마리를 쏘아 죽이고 새끼 한 마리를 올가미로 사로잡았다. 선원들은 암컷을 도살한 다음 새끼를 달랠 요량으로 그 가죽을 새끼에게 둘러주었다. 새끼는 몇 시간씩 울부짖고 몸에 감겨 있는 사슬을 당겨댔다. 배에 타고 있던 개가 새끼의 먹이를 훔치고 발을 물었다. 새끼에게 먹인 고기가 어디서 나온 건지는 상상에 맡긴다. (171쪽)


곰은 쉬고 있는 물범인 척하며 인간에게 접근한다. 이런 식의 만남 일부는 단 일격으로 인간이 죽으면서 끝난다. 그러나 치명적인 판단 착오로 인해 필살의 물범 작살 투척이나 칼부림을 받은 곰이 죽으면서 끝나기도 한다. 막 남자가 되려는 소년이 일부러 후자의 대면을 준비했을 수도 있다. 그 찰나는 단순히 무섭기만 한 순간이 아니라 경이와 신성의 순간이자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두려운 존중을 보내는, 그 문화 안에 영원히 살아 있는 순간들이었다. 토르나르수크, '힘을 주는 자'. 폴라에스키모들은 북극곰을 이렇게 불렀다. (168쪽)


정말 신비로운 일각고래. 사실은 뿔이 아니라 엄니라고. 영어로 일각고래를 뜻하는 narwhal은 노르드어 시체 nar와 고래 hvalr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각고래의 피부색이 인간 사체와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해석까지 붙어다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게르만어 교수인 W.P. 레만은 죽음과의 연관은 언어학적인 우연이라고 믿는다. 그는 고대 노르드어의 narhvalr가 nahvalr 라는 단어의 지역적 변용이라고 말한다. 특정 지역에서 아스파라거스를 스패로그래스라 부르다 보니 참새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과 같은 셈이다. 레만에 따르면 nahvalr는 더 오래된 서부 노르드어로 '길고 뾰족한 돌출물이 있는 고래'라는 뜻이다. 그래도 여전히 일각고래를 '시체고래'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고, 인간을 죽인다거나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전조 또는 상징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일부 지역에 남아 있다. 동물들은 가끔 자신의 진짜 삶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언급이나 억측에서 빚어진 부당한 연상을 짊어진 채 인간의 역사에 고착된다." (193쪽)


모든 고래와 마찬가지로 일각고래의 뿌리도 곤충을 먹고 살았던 백악기 육식동물들에 있다. 우리 인간도 그로부터 진화했다. 백악기를 거쳐 팔레오세로 이어지는 고래의 진화 계통은 하마와 영양 같은 우제류의 진화 계통을 따른다. 그러다가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일어난다. 3억8000만 년 전 데본기, 바다에서 나온 이래 장장 3억3000만 년 동안 마른 땅 위에서 이뤄졌던 유전적 진화 계통의 한 갈래가 당시의 대양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 갈래에서 고래가 나왔다. 최초의 원시고래들은 4500만 년 전 에오세에 등장했고 최초의 이빨고래들은 그로부터 1800만 년 후인 올리고세에 나타났다. 그때쯤에는 공기호흡을 하는 포유동물이 바다에서 살기 위해 필요했던 보기 드문 적응 과정의 대부분이 완료되어 있었다. (201쪽)


사진 World Wildlife Fund



바닷물이 상당한 부력을 주기 때문에 골격구조가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 이 생물은 민첩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큰 몸집을 가지게 되었다. 이 생물은 기온이 들쭉날쭉한 세상을 뒤로하고 온도가 거의 변하지 않는 세계를 얻었다. 그러나 이 생물은 온혈동물의 생활 방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5~10센티미터 두께의 지방층으로 추위를 막았다.

신체구조에 일어난 가장 현격한 변화 두 가지는 산소를 비축하고 활용하는 방식과, 시각이나 후각이 아니라 대체로 청각이 지배하는 세계에 적합하도록 감각 체계를 조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북극의 공기를 들이마시면 산소의 34퍼센트는 폐에, 41퍼센트는 혈액에, 13퍼센트는 근육에, 12퍼센트는 다른 장기 조직에 공급된다. 일각고래는 나와 똑같은 공기를 단숨에 빨아들여 작은 폐를 완전히 채운다. 그리고 산소를 다르게 배분함으로써 15분이나 잠수를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산소를 끌어 쓸 수 있다. 산소의 41퍼센트가 혈액으로, 41퍼센트가 근육으로, 약 9퍼센트가 다른 장기 조직에 공급되며, 폐에 남는 산소는 전체의 9퍼센트에 불과하다.

일각고래의 혈액에는 질소가 적어서 수면으로 부상할 때 잠수병이 생기지 않는다. 호흡의 부산물로 생기는 이산화탄소는 효율적으로 비축돼 있다가 폭발적으로 배출되면서 신속하게 폐를 빠져나간다. (202쪽)


에스키모들은 엄니의 최대 장점을 나무 목재와 비슷한 용도에서 찾았다. 나무나 표류목을 얻을 수 없는 지역에서 일각고래들을 집중적으로 사냥했다. 그런 곳에서 엄니는 작살 자루나 천막 지지대, 썰매 가름대, 십자 버팀대 등 뭔가 곧고 긴 물건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활용됐다. 

내가 알기로 에스키모들은 일각고래에 (유니콘을 찾아헤맨 유럽인들과 달리) 별스럽게 대단한 영적인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났다. 카리부와 마찬가지로 일각고래는 쉽게 영혼, 키른니크를 달랠 수 있는 식용 동물이었다. 

그린란드인들은 일각고래의 엄니보다 가죽을 더 쳐줬다. 아주 추운 날씨에도 뻣뻣해지지 않고 젖었을 때도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개 목줄로는 그만한 가죽이 없었다. 등의 힘줄은 내구성도 내구성이지만 그 길이 때문에 실로 쓰기 적합했다. 가죽의 바깥층은 물범의 생간만큼이나 필수 비타민이 풍부한 중요한 비타민C 공급원이었다. 밝고 선명한 노란 불꽃을 내며 타는 지방은 겨울 이글루 안에서 낚싯바늘을 깎거나 벙어리장갑을 꿰맬 때 유용했다. 일각고래 한 마리면 한 떼의 개들을 한 달 동안 먹일 수 있었다. (215쪽)


책의 한 챕터는 '대이동, 숨결이 지나는 길'이다. 저자는 동물들의 이동을 땅의 호흡이라고 표현한다.


"동물들이 오고 가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땅이 그들을 만나러 부풀어 오르고 또 동물들이 떠난 뒤 가라앉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이동을 숨쉬기로, 땅의 호흡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북극의 대지는 봄에 빛과 동물들을 크게 들이마신다. 여름에는 오래 숨을 참는다. 그리고 가을에 숨을 내쉬면서 그 모든 것을 남쪽으로 몰아낸다." (234쪽)


세상의 특정 지역들, 그중에서도 특정 해협들은 이동하는 동물들을 한곳으로 모은다. 보스포루스 해협이나 지브롤터 해협이 그렇다. 육지의 새들은 남북으로, 바다 생물들은 동서로, 동물들은 마치 모래시계의 짧은 허리를 지나는 모래처럼 이런 곳을 거쳐간다. 

그러나 생명을 밀집시키는 면에서는 베링 해협이 독보적이다. 지구 땅덩어리들의 배치가 이렇다 보니 땅은 북방에 와서야 서로 가까이 만난다. 동반구의 축치 반도와 그에 딸린 새들과 동물들이 베링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반구의 수어드 반도와 역시 그에 딸린 새들과 동물들에 거의 닿을 듯 가까워진다. 무엇보다 북태평양의 해안들이 여기서 보이는데, 근해에서 이동하는 고래와 연안의 바닷새들, 해안에 붙어 이동하는 물범과 바다코끼리,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솜털오리 같은 새들도 함께 데려온다. (234쪽)


축치해, 동토가 녹아 사람들이 떠나야 하는 그 곳.


짧은 여름 동안 오고 가는 동물들이 북극에 독특한 리듬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 리듬은 특정한 장소들에서만 느낄 수 있다. 대개는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온 땅이 고요하다. 북극 탐험가인 조지 드 롱은 북극을 "인내를 배우는 눈부신 땅"이라 불렀다. 빛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시간은 지나가는 한 마리 동물과 같다. 시간은 털발말똥가리처럼 툰드라 상공을 떠돌거나, 심장 발작을 일으킨 새처럼 한 순간에 주저앉으며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는 정적을 남긴다. 

정지한 큰 세계 안에 숨어 있는 움직이는 세계, 그 안의 습지 평원과 비췻빛 계곡들로 이동하는 완보동물이라 불리는 아주 작은 불사의 생물. 수분은 겨울에 얼어버린다. 수분을 빼앗기면 완보동물은 천천히 쪼그라들어 분말 알갱이가 된다. 녀석은 이런 상태로 30~40년을 견디며 다시 자신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린다. (245쪽)


갑자기 한겨울에 아무 경고도 없이 거대한 해빙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육지 안쪽으로 수십 미터씩 들이닥친다. 에스키모들은 이것을 '이부'라고 부른다. 비어 있던 땅에 소리소문없이 카리부가 도착하는 사건도 있다. 물범의 얼음구멍에서 사냥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오랜 시간. 개수로가 닫히기를 기다리는 시간. 갑작스런 움직임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이런 종류의 긴 기다림을 이르는 에스키모 말이 있다. '퀴누이투크'. 깊은 인내. (250쪽)


강제된 시각이란, 아무리 무해한 것이라도 늘 약간의 진실을 은폐한다. 이곳에 다른 삶의 리듬이 있다는 증거는 내가 마주친 동물들의 표정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 지역이 왜 다른 지역과 다른가를 이해하고 본래적인 차이를 보여줌으로써 그 신비를 설명하는 일은 상상계를 오염시키고 다름에 대한 포용력을 억압하는 일종의 편견으로부터 그 지역을 지키는 일이다. (251쪽)


High North News



책에는 나이키 미사일 때문에 터전에서 밀려난 에스키모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가 유사시대 에스키모 집단들 간의 차이를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것은 그들과 다양한 시기를 함께했던 크누드 라스무센과 카 비르켓 스미트, 다이아몬드 제니스, 프란츠 보아스, 한스 스테엔스뷔와 같은 몇몇 뛰어난 문화기술학자의 덕이 크다. 서쪽에서부터 보자면 노스슬로프에스키모 부족은 다른 어느 곳보다 툴레 문화의 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누나미우트라고 불리는 내륙에 거주하는 일부 구성원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매켄지 강 삼각주 인근에 살았던 매켄지에스키모, 빅토리아 섬과 코로네이션 만 일대에 거주하면서 가즈머시 만의 인베스티게이터호와 보급품 은직처 사이를 오갔던, 지금까지 발견된 부족 중에서는 마지막 유사시대 집단인 코퍼에스키모, 배핀 섬과 멜빌 반도, 부시아 반도의 중앙에스키모, 허드슨 만의 북서쪽 툰드라에 살았던 카리부에스키모, 그린란드 북서부에서 가장 고립된 집단으로 살았던 폴라에스키모가 있었다.

집단의 규모가 작은 폴라에스키모들은 로버트 피어리와 프레드릭 쿡을 포함한 많은 북극 탐험가들을 보조했다. 1949년 그들의 주요 주거지인 우마르나크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전략 공군기지 건설 때문에 덴마크 정부의 의해 97킬로미터나 북쪽으로 이전되었다. (266쪽)


유럽과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남쪽에선 서로 멀리들 떨어져 있지만 북쪽에선 한데 모인다. 그래서 에스키모들은 거의 같은 언어를 쓴다고.


인류가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넘어간 때는 베링기아 연륙교가 열려 있던 3만5000년 전이든가 아니면 한참 후인 대략 2만5000년에서 2만3000년 전의 언제쯤일 것이다. 베링기아 연륙교는 약 2만5000년 전부터 약 1만1000년 전까지 존재했지만 인류가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의 중앙 평원까지 갈 수 있었던 때는 2만5000년 전부터 2만3000년 전까지의 기간 뿐이다. 위스콘신 빙기가 최고조에 달한 이후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쪽과 서쪽 대빙원이 만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차단하면서 미국 대평원은 북극과 격리됐다. 그 기간 서부 알래스카는 얼음에 덮이지 않았으므로 대빙원이 녹으면서 베링 해의 수위가 올라가고 연륙교가 잠겼다.

많은 고고학자들이 인류가 두 번에 걸쳐 북아메리카로 몰려갔다고 믿는다. 2만5000년에서 2만3000년 전 또는 그 전에 건너갔던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의 무스티에 도구들과 비슷한 얇게 조각낸 돌과 뼈로 만든 도구들을 가지고 갔다. 두 번째는 그로부터 1만3000년 후에 있었으며 크로먀뇽인들의 오리냐크 도구들과 유사한 보다 진보된 도구 문화를 가져갔다. (253-254쪽)


두번의 최적기후가 약 4500년 전~3500년 전 사이와 약 1100년 전~900년 전 사이에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두 번의 기회를 틈타 고위도 북극으로 이주했다. (이들 이전의) 고에스키모들은 가죽배를 타고 베링해의 개빙구역을 건너와 5000년 전 즈음엔 북극 알래스카에 거주하고 있었다. 약 2.5센티미터 길이에 0.64센티미터 폭으로 세심하게 쪼갠 규질암과 흑요석 도구들로 대표되는 이들의 문화와 그 변형들을 통칭해서 '북극권소형도구문화전통(ASTt)'이라 일컫는다. 

다음에 등장한 문화는 북극권소형도구문화전통의 일부인 선(先)도싯문화로, 약 3500년 전에 나타났다. 활석으로 만든 사발에 해양 포유동물의 지방에서 얻은 기름을 태워 열과 빛을 얻었으며, 소지품을 올려놓을 작은 나무 썰매를 만들었다. 약 2800년 전을 즈음해서 선도싯 유적들은 도싯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화의 증거들에 자리를 내준다. 지금으로서는 도싯 조각이 에스키모의 선사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발달한 예술품이다. (256-257쪽)


툴레인들의 집. 사진 위키피디아



서기 900~1100년의 최적기후가 도래했고, 이 기간 동안에 도싯 문화는 툴레라고 불리는 상당히 다른문화로 대체되었다. 베링 해협 지역에서 기원한 강력하고 고도로 숙련된 고래사냥 문화인 툴레 문화는 초기 베링해 문화에서 성장했다. 툴레인들은 우미악이나 카약을 타거나 해빙 위로 나가 고래와 바다코끼리를 사냥했다. 개가 끄는 썰매를 발달시켰고, 도싯인들의 작살 기술을 세련되게 다듬었다. 겨울용 집들은 따뜻한 반지하 형태로, 돌로 낮은 담을 쌓고 바닥을 깐 다음 벽의 위쪽과 지붕은 고래의 갈비뼈와 턱뼈로 받치고 가죽을 덮고 뗏장을 이었다. (261쪽)


에드먼트 카펜터는 <에스키모의 세계>에서 잘 알려진 현상 하나를 언급했는데, 에스키모들이 어떤 기계적인 문제든 그 본질을 재빨리 파악하고 해결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전혀 본 적이 없는 물체라도 에스키모들은 '쓰레기'나 '폐품' 중에서 적당한 인장 강도 또는 적당히 비틀리거나 늘어나는 성질과 열과 반복적인 냉각과 부식에 필수적인 저항성을 가진 뭔가를 고른 다음, 단순한 도구를 사용해 설사 영구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실용적으로 쓸 수 있도록 모양을 잡는다. 호주머니도 모자도 바퀴도 없이 만면에 웃음을 띤 이 사람들은 누가 말했던 것처럼 매우 총명하다. (271쪽)


뒷부분에는 유럽과 북미 탐험가들의 이야기, '탐험'이 아닌 '채굴'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 현대문명을 거부하지 않지만 고민하는 에스키모 이야기 등등이 나온다. 뒤쪽으로 갈수록 저자의 시선은 '문명비판'을 향해 간다.


기껏 대지 위를 돌아다니는 수고를 할 때조차 우리 모두는 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지각은 선입견과 욕망으로 채색돼 있다. 

형태와 색깔, 토착 생명의 다양성, 토양의 구체적인 성질과 그 위에 맹렬하게 쏟아지는 빗소리, 꽃봉오리들의 향기 같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불가사의하다고 믿으면, 대지가 불가사의한 조합이라고 믿으면, 땅에 다가가기가 쉬워진다. 누군가는 그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을 다른 누군가는 신비롭다고 느낄 수 있다. 수수께끼와는 구별되는, 생의 신비 말이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무얼 하느냐는 질문에 아낙투북패스의 한 남자가 했던 대답. "듣소." 그게 다였다. 땅이 하는 말을 듣는다. 그 속을 걸어다니며 온 신경을 집중해서 오랫동안 땅을 음미한 다음에야 비로소 말을 꺼내놓는다. 그런 조심스런 태도로 들어가면 땅이 스스로를 열어 자신을 받아들여준다고 그는 믿었다. (348쪽)


멋진 번역을 선보인 번역자는 알고 보니 내 친구. 책을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집어들고 보니 신해경의 번역이다. 지금껏 읽은 번역책 가운데 가장 맘에 드는 책이라고 말하고 시픔. 해경이 본 지도 오래됐네. 결국 봄날의책에서 나온 책 두 권을 더 주문하고야 말았다.


암튼 이 책,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인간 없는 세상>과 <핀치의 부리> 사이에 꽂아놓음.

그래도 나는 북극에는 못 갈 것 같아. 너무 추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