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원주민들 쫓아내는 기후변화

딸기21 2008. 2. 2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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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알래스카 북부의 한 작은 마을이 엑손모빌과 BP, 셰브론 등 거대 에너지기업들을 상대로 기후변화 책임을 지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투발루가 선진국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 이어, 기후변화의 책임을 묻는 소송들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어 주목됩니다.


"누가 우리 마을을 가라앉히는가"

AP통신은 알래스카 해안 마을 키발리나가 엑손모빌을 비롯한 거대 석유회사 9개와 전력회사 14개, 그리고 석탄회사 1개를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27일 제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대신해 소송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원주민권리기금 등 2개 시민단체들은 이 기업들에게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를 방출해 마을의 존립을 위협한데 대한 책임을 지라"며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앵커리지에서 북서쪽으로 1000㎞ 떨어진 키발리나는 주민 수 390명에 불과한 전형적인 에스키모 마을이라는군요. 북극해의 일부인 축치해와 키발리나 강 사이 얼음 둑 위에 자리잡은 이 마을에는 미 연방정부가 `소수민족'으로 인정한 이누피아트 에스키모 일족인 키발리나 부족이 살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오랜 세월 이 곳에 거주하면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지켜왔대요. 위기가 닥친 것은 최근 몇년 새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부터.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고 따뜻한 계절이 길어지면서, 강둑 주변을 에워싸고 마을을 보호해 주던 얼음더미가 녹아내리기 시작한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원 안에 보이는 곳이 키발리나 마을이예요. 왜 마을이 침수당하게 됐는지 바로 이해가 되시지요?



얼음 땅에서 고래와 연어, 순록, 해마, 물개 따위를 잡으며 살아왔던 주민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된 것은 물론, 마을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얼음땅이 녹으면서 바닷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선 침식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당장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안될 처지가 됐다는 거죠. 재닛 미첼 키발리나 행정관은 "예전엔 10월이면 얼음이 얼었는데 이젠 12월이 돼도 우리 마을을 폭풍우에서 보호해주던 얼음둑이 생성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후변화 `법정 공방' 봇물

주민들은 둑 붕괴 위험 때문에 마을을 버리고 내륙으로 이주해야 하는데, 이주와 정착 비용으로 4억 달러(약 38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피해 사례가 알래스카 주 정부와 미군 공병대 보고서에서도 공식 확인됐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원고들은 또 키발리나가 기후변화의 유일한 피해사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주요 에너지회사들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도 별도의 소송을 냈습니다. 에너지회사들이 원주민 마을 파괴 책임을 져야할 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한 `왜곡된 선전'으로 세간의 인식을 호도했다는 점도 소장에 명시됐습니다.

최근 몇년 새 미국에서는 기후변화 문제로 인한 비슷한 소송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2003년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유례없는 `자진 쇄국'의 길을 선택하게 된 태평양 투발루 등을 대신해 미국과 호주 법원에 양국 정부를 제소했습니다. 미 코네티컷 주 등은 연방 환경청이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 실패해 지역 환경을 망쳤다며 같은 해 소송을 냈지요.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지난해 4월 온실가스 배출 규제 의무를 소홀히 하는 미 연방정부를 제소해 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상징적 투쟁'에 그쳤을 뿐 기후변화 피해 주민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판결이 내려진 적은 없지만, 키발리나처럼 `가시적인 피해'를 입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어 소송이 더욱 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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