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기후변화로 언어가 사라진다

딸기21 2010. 8. 1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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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령 그린란드 북서쪽에 있는 시오라팔룩은 사람 사는 곳 중 지구상 맨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곳에 이누이트 원주민 일족인 이누구이트 부족 70여명이 살고 있다. 겨울이면 석달씩 밤이 이어지고 기온이 영하 40도로 내려가는 혹독한 환경이지만 이들은 물개와 고래 등을 사냥하고 낚시를 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818년 스코틀랜드 탐험가 존 로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이누구이트족은 자신들과 다르게 생기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바깥 세상’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후 200년이 흘러 그린란드 대부분 지역이 유럽화, 기독교화됐지만 이누구이트족은 유독 자기네들 생활방식과 무속신앙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Inughuit - History and Cultural Relations 


‘이누크툰’이라 불리는 이누구이트족 언어는 수많은 이누이트 방언들 중에서도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언어의 화석’이라 불린다. 하지만 이들이 자기네 말로 자기네 문화를 지키며 살수 있는 시간도 길어야 10~15년 밖에 남지 않았다. 

이들의 삶의 기반은 얼음이다. 얼음 위에 천막집을 짓고, 얼음 위를 썰매로 돌아다니며 사냥을 한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다. 영구히 녹지 않을 줄 알았던 ‘만년빙’이 얇아져 물개 수가 크게 줄었다. 개썰매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힘들어졌다. 이대로라면 머잖아 고향을 버리고 남쪽 도시로 내려가 정착해야 한다. ‘주류사회’에 들어가려면 토착언어는 버리는 수밖에 없다.





영국 가디언은 13일 기후변화 때문에 위기를 맞은 이누구이트족 언어와, 이를 채록하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을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영국 캠브리지대 언어인류학자 스티븐 레너드는 이누구이트 마을에 1년간 들어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채록할 계획이다. 비록 문자기록은 없지만 이누구이트족은 태고의 지혜를 담은 풍성한 구전문화를 갖고 있다. 이 언어가 사라지면 그 안의 지혜도 모두 사라진다. 레너드는 “이누구이트 언어를 기록으로 남길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는 나오지 않은 내용이지만, 이누구이트족에게는 아픈 역사가 있다. 미국 진보사학자 마이크 데이비스의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라는 책에는 ‘미군 기지 때문에 쫓겨난’ 이누이트 부족 이야기가 나온다. 


“1953년 신형 나이키 미사일 배터리를 저장할 땅을 확보하기 위해, 미군 지휘관은 그린란드 북서부 툴레 사람들에게 나흘의 시간을 주면서 고향을 떠나라고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새로운 마을(몇몇 사람의 의견에 비추면 ‘즉석 슬럼’)로 강제로 추방되었다. 

덴마크와 미국 정부의 관료들은 이것이 ‘자발적인’ 이주였다고 전 세계에 거짓말을 했다. 이제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다수가 사회주의 성향의 이누이트 형제당(IA) 소속인 그 손자들은, 전 지구적인 전지전능의 군사력을 꿈꾸는 미국 청부의 ‘스타워즈’ 판타지를 실현하는 데 최대 건림돌이 되고 있다. 

2002년 12월 역사적인 선거에서 대다수의 그린란드인은 반(反)NMD 연합을 표방한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전진당 Siumut Party’과 급진 성향의 ‘이누이트 형제당’에 표를 던졌다. 두 정당 후보들은 덴마크 정부가 툴레를 놓고 일방적인 거래를 하는 데 반대하고, 완전한 독립을 위한 전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약속했다.” (136~137쪽)


이 글에 나오는 ‘툴레 사람들’이 바로 이누구이트족이다. 이들은 53년 미군 ‘툴레 공군기지’에 고향 땅을 내주고 시오라팔룩으로 밀려났다. 그런데 미국 등 개발된 나라들이 주범이 된 기후변화에 다시 또 밀려날 처지가 된 셈이다.)




녹아내리는 그린란드의 빙하/AP



북극권에서 36㎞ 남쪽에 있는 미국 알래스카의 시슈마레프 마을은 이제 두어가구 밖에 남지 않은 폐촌으로 변했다. 기후변화로 얼음땅이 녹자 바닷가 토양침식이 심해지고, 땅이 물렁물렁해져 마을이 가라앉는 지경이 됐다. CNN방송에 따르면 이 마을 열 세 가구는 내륙으로 이사를 가고 두어 집 밖에 남지 않았다. 셸튼 코케옥(65)은 고향을 뜨기 싫어 아내와 함께 나무집에서 버티고 있다. 이들마저 터전을 등지고 떠나면 코케옥이 속한 이누피아트 에스키모족의 언어는 몇년 못 가 사라질 것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것은 기상이변과 홍수만이 아니다. 지구 북단에서는 얼음땅에 살던 이누이트·에스키모 부족들이 생활 터전을 잃으면서 고유 언어가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이동과 언어의 소멸이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빈곤, 무분별한 개발, 식민주의 등이 토착언어를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들이었는데 지금은 기후변화도 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내셔널지오그래픽소사이어티가 올 2월 ‘세계 모국어의 날’(2월2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2주에 한 개씩 언어가 사라진다. 현재 세계의 언어는 6700여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속도대로라면 2100년에는 그 절반인 3500종이 없어진다. 세계의 언어 중 체계적으로 연구가 되어있는 것은 5%에 불과하다. 나머지 95%는 ‘전달자’가 없으면 역사 속에 묻히게 된다.


언어를 잃은 이들은 조상들과의 연계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러시아 시베리아 중부 예니세리 계곡에 사는 켓족은 독특한 고유언어를 갖고 있다. 이 언어를 연구한 미국 학자들은 북미 나바호 원주민의 언어와 비슷하다는 걸 알아냈다. 초창기 인류의 이동경로를 시사하는 것이었다. 언어가 절멸된다는 것은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끈들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볼리비아의 안데스 고산지대에 사는 칼라와야 부족언어는 사용자가 100명 안팎에 불과하다. 이들은 외부인과 말할 때에는 스페인어나 더 큰 부족언어인 아이마라어를 쓰지만, 약초와 전통의술을 이야기할 때에는 칼라와야어만 쓴다. 이 언어가 소멸되면 그들의 지식도 사라진다. 


세계 언어의 28%는 사용자가 1000명 미만인 ‘멸종위기 언어’다. 대부분 오지나 대륙의 변두리, 외진 섬에서 통용되는 부족언어들이다. 기후변화로 생활패턴이 파괴되기 쉬운 곳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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