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구정은의 세상]작년 이맘때

딸기21 2017. 12. 3. 17:43

생각해 보면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어느 집 딸의 대학 불법입학으로부터 시작해 정권에 줄 댄 기업들, 그들에게 돈 받은 권력층, 청와대의 태반주사, 모두가 자기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태블릿PC, ‘사라진 7시간’의 실체가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섰던가. 모두가 공유했던 절박함과 동지애. 차마 탄핵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하던 야당과 헌법재판소를 움직이고 결국 정권을 바꿀 때까지, 점점 더 많아지던 사람들. 

 

영화 <국가에 대한 예의>


페이스북을 쓰다 보면 잊고 있던 기억과 매일 마주치게 된다. ‘추억 공유하기’라는 이름으로 몇 해 전 그날 올린 글들을 다시 보여주는 이 소셜미디어의 기능은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불편하다. 요즘엔 기분이 좀 이상하다. 지난해 12월의 사진이라며 띄워주는 거리 풍경, 스산한 겨울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도로를 메운 시민들 틈에서 아이들처럼 손에손에 촛불을 들고 선 모습이 추억이 되어 돌아온다.

 

극장 개봉 일정도 잡지 못한 독립영화, 권경원 감독의 <국가에 대한 예의>는 잔잔한 기타 선율이 흐르는 영화다. 모처럼 들른 독립영화제에서 이 작품을 만났다.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지고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에 성균관대생 김귀정씨가 목숨을 잃은 1991년의 5월로부터 시작해, 영화는 잊혀졌던 열사들의 시대를 그린다. ‘죽음의 굿판을 집어 치우라’던 시인, 학생들에게 달걀 세례를 받음으로써 보수세력의 영웅이 돼 정권을 구원한 총리의 모습이 뒤를 잇는다.

 

분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 대필 사건’이라는 사기극에서 범인으로 지목돼 오랜 세월 끔찍한 고통을 겪은 강기훈씨가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다. 오랜만에 1991년을 떠올렸고, ‘국가’와 ‘예의’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과 ‘폭력’에 대해. 또 인권과 범죄에 대해, 역사에 대해. 암 투병을 했던 강기훈씨는 기타를 연주하며 ‘강기타’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그의 목소리는 낮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서 그는 “시시한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명동성당에서 무죄를 외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은 당시의 자료화면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모습은 인형극으로 재연됐다. 생각해 보면 그를 둘러싼 스토리는 시시하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인형극의 소재로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 시시한 거짓이 한 시대를 지배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는 나오지 않는, 우리가 응답해야 할 우리의 과거. 아니, 반드시 저들이 응답하게 만들어야 할 과거. 감독은 아주 예민하게,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부드럽게 과거를 불러낸다.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는 겹쳐진다. 1991년 경찰은 노동자 박창수가 의문의 사망을 한 뒤 ‘자살’로 몰아갔고 주검마저 빼앗아갔다. 경찰의 시신 탈취로 뻥 뚫린 병원 벽. 그때 그렇게 동료를 잃은 노동자 김진숙은 20년이 지나 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갔다. 강기훈 곁에 서서 싸웠던 이석태 변호사는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이끌며 힘겨운 싸움을 했다. 숨져간 동지를 기리는 어떤 이는 농장을 만들어 이제 몇 분 남지 않은 장기수 선생님들에게 먹거리를 대준다. 강기훈의 딸은 조용히 악보를 넘겨준다. 26년 전 분신한 전남대생 박승희의 선배는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 걷는다. 

 

또 세월호냐고? 죽음은 죽음의 원인을 묻게 만든다. 죽음을 부르는 제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강기훈의 고통 뒤에는 여지없이 권력의 이름들이 숨어 있다. 공안검사 신상규, 지금은 자유한국당 의원이 된 곽상도, 그리고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기춘. 모두 출세의 길을 달렸다. 강기훈의 연주로 듣는 ‘사라반드’는 처연하다. 과거와 현재가 겹치는 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다.

 

영화 <국가에 대한 예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노동 존중’을 내세운 새 정부가 들어섰다. 정책을 놓고 이게 부족하네 저건 지나치네 공론이 한창이다. 원전을 계속 지을 것인지 시민들이 토론을 하고, 지진에 아이들이 다칠 위험이 있다 해서 연중 최대 행사인 수능이 연기된다. 비정규직들 처우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공영방송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데에 다들 목소리를 보탠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민주주의의 과정을 되찾고 나니 모든 게 아주 오래된 과거의 일 같다. 따지고 보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한때는 민주주의가 너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고, 이미 굳건히 세워진 시스템이 와르르 무너지리라 생각 못했다. 뒤이은 몇 년 동안에는 ‘우리의 민주주의란 얼마나 취약한가’를 한탄했다. 그리고 다시 민주적 절차와 시민의 소통 속에 숨통이 트이고 나니, 과거가 얼마나 뿌리 깊게 발목을 잡고 있는지 순식간에 잊게 된다. 하지만 잊는 순간 과거는 곰팡이처럼 피어오른다. 촛불시민들이 규탄했던 이름들이 20여년 후에 다시 울려퍼지는 일만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다짐해 본다. 작년 이맘때는 어땠었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연말이라니,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