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구정은의 세상]김성주, 김광석, 가족

딸기21 2017. 10. 1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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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1년에서 350~360일은 정말 행복한데, 나머지 열흘이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다. 명절, 날카로운 말끝이 가슴에 닿아 생채기를 냈다. 가족을 설득하고 화내고 싸우는 일이 지겨워진 우리 부부는 왜 결혼이란 제도권으로 들어온 건지 후회가 된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몇 번 반복하면 이 짓이 익숙해질까."

 

지인은 페이스북에 저런 글을 올렸다. 결혼과 더불어 생기는 가족에 대한 고민들. 추석이 낀 달에는 한방병원에 찾아가 ‘화병’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연중 가장 많고, 그런 이들 가운데 여성이 남성의 4배라는 언론 보도도 눈에 띄었다. 여느 해보다 길었던 추석 연휴는 지나갔다. 가족의 존재 의미를 고민하게 하는 명절은 끝났다. 



추석을 앞두고 가족을 다시 곱씹게 만든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방송인 김성주를 둘러싼 일이다. 화면에 보이는 김성주는 재주 많은 방송인이었다. 그러면서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정이 가는 생활인의 모습을 보여줘서 좋아했다. 하지만 옛 직장 동료들이 권력에 맞서 힘겹게 싸울 때 그 빈자리에 들어가서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인기의 발판을 다졌다고 하니 그건 영 잘못된 것 같다. 어쨌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침묵하든 해명하든 그의 몫이다. 그런데 그의 일에 대해 옛 동료가 미디어에 글을 써서 일갈하자, 김성주의 누나가 전화해서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45세 남동생이 남에게 비난받는 것을 참지 못하고 개입하는 누나라니, 이건 너무나 코믹하지 않은가. 그 코미디 같은 일 뒤에 숨겨진 MBC 아나운서들의 고통과 눈물은 전혀 코믹하지 않지만.

 

두 번째는 김광석씨의 결혼과 불화와 죽음이다. 그 부인의 사생활에 대한 세간의 집착적인 관심. 저작권을 둘러싼 돈 얘기가 나오더니 불륜에 영아살해까지 거론된다. 의료계에 계신 분에게 들으니 7개월 이상 된 태아를 인공중절하면 산모의 생명이 몹시 위험하기 때문에, 출산한 뒤 죽게 하거나 죽도록 방치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그 시절’엔 그냥 낙태의 일부로 여겨졌단다. 지금의 시각이나 법으로 보면 물론 영아살해다. 법으로는 금지됐지만 낙태는 숱하게 이뤄졌고 지금도 이뤄진다. 낙태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속하는 일이 아닌 범죄로 규정된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내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던 건 낙태를 둘러싼 모순이나 가수의 죽음에 대한 의문보다는, 세상을 떠난 가수의 아버지와 아들의 아내 사이에서 재산권을 둘러싼 법정 소송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제 가정을 이뤄 살아가던 아들이 숨졌는데, 피를 나눈 가족과 나중에 이뤄진 가족 간에 사망자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놓고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 가수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딱히 알아야 할 이유도 없으나 이 사건엔 잘라서 곱씹을 단면들이 많다. 법과 가족이 엇갈리는 곳에서 생겨난 이색적인 마녀사냥의 냄새가 난다. ‘돈은 누구의 것인가’로 극명하게 드러난 가족의 맨 얼굴.


성차별을 없애는 건 가족이 족쇄가 되지 않게 만드는 첫걸음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성들이 남편 가족에게 무시당하고 불평등한 대접을 받고 명절마다 일꾼처럼 부림을 당하고 화병에 걸리는 것은 너무나 큰 문제이지만 그것만으로 가족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이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가족은 물론 중요하다. 애정과 신뢰의 공동체 없이는 누구도 사람답게 살기 힘들다. 하지만 가족이 ‘주의’가 되면 그것은 폭력이 된다. 내 가족은 물론이고 남의 가족에게까지 이래라 저래라, 아이를 낳아라 말아라, 동성끼리는 가족을 만들지 마라 등등.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소수자든, 어려서든 나이를 먹어서든,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온전한 성인으로 취급받는 것이 이 사회에선 참으로 힘들다.

 

정작 우리의 가족은? 가족의 미래는?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자식과 함께 사는 노인 비율은 크게 줄었고, 이미 2011년 노인 단독가구가 70%에 육박했다. 노인 5명 중 1명은 혼자 산다. 작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노인뿐 아니라 전체 가구의 4분의 1 이상이 1인 가구다. 홀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은 5년 새 80% 늘었다. 우리 대부분의 현재와 미래는 1인 혹은 2인 가구다. 그런 시대에 가족이란 무엇일까. 같이 밥 먹고, 안녕히 주무세요, 잘 먹겠습니다, 다녀왔어요 인사하는 사이 정도면 좋지 않을까. 일본의 저술가 우치다 다쓰루는 그렇게 말한다. 가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이젠 그 틀을 넓히고 핏줄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얘기다.

 

가족주의에 숨 막히는 개인들, 그러나 가족은 사라져가는 세상. 날마다 인사말과 공간과 시간을 나누는 ‘가족 비슷한 공동체’들이 늘어나는 것이 핏줄을 운운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좋지 않을까. 그래야 평등해지고, 평등해야 행복하다. 가족-가족주의를 깨뜨려야 복지가 싹튼다. 명절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수십명이 먹고난 그릇을 치우며 가족의 정을 나누라는 허황된 소리보다는 우치다의 말에 더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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