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구정은의 세상] 아파트 외벽

딸기21 2017. 8. 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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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대구에서 팔 이식 수술이 이뤄졌다. 한국에선 처음이었다고 한다. 30대 남성이 손목부터 손가락까지를 이식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이 남성은 7월에는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까지 했다. 보건복지부는 법률을 고쳐, 그동안 이식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던 장기 등 신체부위에 팔까지 포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수술을 받은 남성은 회복돼 가고 있고, 새 직장도 얻었다 하고, 정부가 법을 고쳐 부족한 부분도 메우기로 했다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이 남성이 공장에서 일하다 한쪽 팔을 잃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팔 절단장애 판정을 받은 사람은 7500명이 넘는다. 아마도 그들 중 상당수는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힘들다는 팔 이식수술이 성공적으로 실시된 것은 의학기술의 개가라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공장에서 팔이 잘려나가는 사람이 많다면 노동환경의 개가는 언제 이뤄질까. 박노해 시인이 어린이날만은/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손목이 날아갔다고 했던 시절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온 걸까. 몇 걸음 나아진 걸까. 다치고 숨지는 노동자들의 삶은 왜 이렇게 계속되는 걸까. 30년 전의 시 속에선 프레스가 문제였다지만 지금은 반도체 생산 공장으로, 고공 크레인으로, 도로의 맨홀 밑으로, ‘산재라 불리는 부상과 죽음의 발생지가 오히려 더 넓어진 것 같다.


Kathe Kollwitz, 'Workers Going Home at the Lebrter Railroad Station' (1897)


군함도라 불리는 일본 미쓰비시의 옛 탄광터가 참혹한 징용노동의 현장으로 관심을 끌고 후대 사람들의 예술적 상상력까지 자극하게 된 데에는 분명 지하 1000m 갱도라는 상황, 일상과 동떨어진 극적인 장소였음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가 늘 걷고 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아닌,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보이지 않게 일하고 있던 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역사. 가려져 있던 것들이 튀어나오고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이 드러날 때 우리는 놀라며 그 드라마틱한 것들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었음에 몸서리를 친다. ‘실은 그런 일들이 주변에서 늘 벌어지고 있어라고 누군가가 귀띔한들 주변의 그런 일들은 우리의 주의를 끌기엔 너무나 상투적이다. 그래서 집배원이나 택배기사의 죽음, 공사장 노동자들의 죽음과 부상 같은 것들은 어쩌다 한번이 아니면 관심을 끌기 어렵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 늘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그곳이 실은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며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라면. 아파트 외벽이 그런 장소다. 지난 6월 경남 양산에서 한 주민이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 작업을 하던 사람의 밧줄을 끊어 숨지게 한 일이 있었다. 소식을 들은 모두가 경악했고, 어처구니없는 범죄에 희생된 이에게는 애도와 도움이 이어졌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729일에는 경기 광주의 아파트 신축공사장에서 외벽에 설치된 공사용 승강기를 해체하다가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같은 날 부산 용호동에 있는 중학교 건물에서도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공장도 아니고,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도 아니고, 지하 갱도도 아니고, 건물의 외벽이라니. 지난해 이정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 통계를 가지고 분석한 것을 보면 통신케이블·에어컨 수리기사들의 산재 사망사고 10건 중 9건이 추락사였다. 발 디딜 곳 없는 외벽의 사람들, 땅에 발 딛지 못한 공중의 노동. 허공에 매달려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가진 절박함은 무더위 속에 쉽사리 잊혀진다.


1986년 일본 시민단체들이 공개한 사료에 따르면 1925부터 1945년 사이에 군함도로 알려진 하시마의 탄광에서 숨진 이들 1295명 중 조선인이 122명이었다. 어떤 이들은 몰랐던 역사에 놀라고, 어떤 이들은 오히려 사망자가 생각보다 적었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표하기도 한다. 그들의 죽음이 작은 일이라 말하려는 건 아니다. 국내에서 산재 사망자 수가 매년 1800명이 넘는다는 사실도 우리의 시야에 들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그나마 유족급여를 받게 된 사람 수, 지방노동관서에 제출된 사망자 수만을 합한 것이니 일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 수는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군함도 노동자들은 그 섬을 지옥도라 불렀다고 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지옥, 헬조선이라 부른다. 눈만 돌리면 보이는 아파트들이 언제라도 재해와 죽음의 현장이 될 수 있는 곳. 아파트 외벽은 노동의 막다른 골목이고 지금 우리의 군함도다. 모두가 컴퓨터를 쓰고 너나없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다니게 되기 전까지는 첨단산업의 상징인 반도체 공장이 노동자들의 숨통을 막는 재해의 현장이 될 줄 몰랐다. 24시간 배달에 택배 천국이 되기 전까지는 집배원과 물류노동자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이 올 줄 몰랐다. 집집마다 에어컨을 달기 전까지는 아파트 외벽이 죽음의 외줄타기가 벌어지는 곳이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 안의 하시마가 늘어간다. 다음번 군함도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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