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한국 사회, 안과 밖

[구정은의 세상] 동상이 문제다

딸기21 2017. 11. 19. 16:20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쪽의 케이프타운대학교(UCT)에서 재작년 세실 로즈의 동상이 철거됐습니다. 학생들이 오랜 세월 요구해온 겁니다.


Rhodes statue in Cape Town university removed -BBC

세실 로즈(1853~1902년). 영국 출신의 식민주의자이지요. 금 파고 다이아 파내어 자기 이름을 딴 제국을 만든. (여담이지만 이태 전 밀렵꾼들에게 죽음을 당한 사자 세실도 이 작자의 이름을 딴 겁니다. 이 작자의 이름을 따서 출발한 로디지아는 지금의 짐바브웨라는 나라이고요.)


세실 존 로즈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케이프타운대학교 학생들. 사우스아프리카투데이
세실 존 로즈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하는 케이프타운대학교 학생들. 사우스아프리카투데이

그래서 이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고, 학생들의 시위가 거셌습니다. 결국 UCT의 동상은 사라졌지만, 영국 옥스퍼드대에 있는 동상은 살아남았습니다. 


Cecil Rhodes statue to remain at Oxford after 'overwhelming support' -가디언


미국에서는 지난 8월에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영웅'이었던 로버트 리 남부군 총사령관과 그 심복 스톤월 잭슨의 동상이 논란거리가 됐습니다. 인종주의 노예제를 지키려던 남부군의 장군들을 지금껏 기리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은 거세게 철거를 요구했고, 반대편에선 폭력시위까지 벌이며 동상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이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이멘서페이션 공원에 서 있다.  이 동상의 철거를 두고 지난 8월 11일 백인 우월주의자 폭력 집회와 이에 맞서는 반대 집회가 일어났다. 미국은 이후 전국적인 남부연합군 동상 철거 움직임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누군가 동상 아래에 집회 도중 차량 돌진테러로 숨진 헤더 헤이어 파크를 기리는 문구를 가져다놓았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결론은? 이 동상이 있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시의회는 두 동상을 검은 천을 덮어 가리기로 결정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 점점 보수화하면서 인종주의가 노골화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 논쟁이었습니다. 


곧이어 러시아에서도 동상이 이슈가 됐습니다. 지난 9월 AK-47 소총을 만든 미하일 칼라슈니코프의 동상이 모스크바 도심 한복판에 세워졌습니다. 정부 인사들은 "러시아의 문화 브랜드"라고 주장했지만, 세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총기 개발자의 동상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세계의 분쟁이 이 총 때문이겠냐마는, AK-47이라는 '싸고 효율적인 무기'가 세계의 분쟁지역에서 널리 쓰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칼라슈니코프 총을 든 ‘안드레이’... 우크라이나의 소년병 


그의 동상을 모스크바에 세운 이들은, 2013년 세상을 떠난 칼라슈니코프가 "그들이 내 발명품을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의 회의가 든다"며 생전에 안타까워했던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자기 이름을 딴 보드카를 들고 있는 생전의 칼라슈니코프. _ 게티이미지



지구 위에는 70억명, 아니 이제는 80억명 가까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요. 세계 곳곳에 세워져 있는 동상은 대체 몇 개나 될까요. 누가 알겠습니까마는, 분명한 건 동상들은 끊임없이 세워지고 또한 시비를 부른다는 점입니다. 너무도 당연합니다. 동상은 누군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집니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새롭게 해석되는 법, 세상이 바뀌고 새로운 해석이 나올 때마다 과거사가 들춰지고 그 인물의 공과에 대한 평가도 바뀝니다. 


국내에서도 동상 논란, 아니 '역사 해석 싸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인공입니다. 한쪽에선 "친일파"라 비난하며 동상에 반대하고, 한쪽에선 박정희 동상에 반대하는 이들을 "빨갱이"라 비난합니다. 이 동상이 아니더라도, 전국에서 벌어지는 '박정희 기념사업'과 동상 세우기는 차고도 넘칩니다. 


11월 13일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서 열린 박정희 동상 기증식에 참석한 조각가 김영원씨가 자신이 만든 박정희 동상의 축소판 조각상을 바라보고 있다. _김창길 기자


이번 동상을 만든 이는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세운 김영원 전 홍익대 교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상의 모양을 보니... 데자뷔랄까요. 많이 보던 모습입니다. 


사진 모스크바타임스


러시아와 옛소련권 곳곳에 '유비쿼터스'로 남아 있는 레닌의 동상입니다. 2014년 초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반러시아 시위가 일어났을 때 거기 있던 레닌 동상 하나가 곤두박질쳐졌죠.


사진 위키피디아


위의 사진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레닌 동상이랍니다.


그 다음 소개(?)할 동상은, 굉장히 익숙한 장면으로 느껴질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사람 후세인 동상이 2003년 미군 점령 뒤 철거되는 장면입니다. 한 시민이 끌어내리려 시도했고, 미군이 중장비를 가져다가 결국 제거했습니다. 


사진 위키피디아


설명 안 해도 아시겠지요. 마오쩌둥의 동상입니다. 제 2의 마오가 되려는 시진핑 주석 시대가 됐으니, 당분간 마오의 동상들은 안전할 것 같습니다만. 언젠가는 마오도 땅으로 내려올 날이 올까요.


그 다음 동상 역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아무리 봐도 남북은 한 형제가 맞는 것같습니다.


누가 친절히 모아놓기까지 했네요.


사진 quora.com


위정자, 권력자들이 동상을 세우는 건 국가주의 민족주의 뭐 그런저런 '주의'들을 선전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공세의 일환이기 쉽지요. 바로 그런 이유에서, 두고두고 반발을 부르는 것이고요. 올 봄에는 경제난이 심해진 베네수엘라에서도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동상이 수모를 겪었다는 뉴스를 본 적 있습니다만. 


그래서인지, 근래에는 식민주의나 제노사이드, 분쟁 등의 희생자를 기리는 victim memorial 들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평화의 소녀상'도 그런 예이겠지요. 


사진 www.srebrenica.org.uk


위 사진은 옛 유고연방 내전 때 세르비아계가 저지른 '스레브레니차 학살' 피해자들을 기리는 추모공원입니다. 


억지 영웅들의 동상으로 국민을 세뇌하는 시대에서, 피해자들을 기리고 과오를 되새기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박정희 동상은 그런 면에서 봐도 참으로 구시대적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지금껏 제가 봤던 동상들 중에 "아 그래도 저 정도는 인정해줘야겠군" 했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15년전 바그다드 부근, 바빌론 가는 길에 보았던 동상(이라고 쓰고 보니 어쩌면 석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이랍니다. 저거 누구 동상이냐,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함무라비"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항, 여기는 바빌론 가는 길이구나 실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