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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총의 아버지’ 미하일 칼라슈니코프 사망  

딸기21 2013. 12. 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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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 발명품을 쥐고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의 회의가 든다.”

 

소총의 대명사인 칼라슈니코프소총(AK소총)을 발명한 미하일 칼라슈니코프가 지난 2006년 유엔 소화기(小火器)확산 방지회의를 앞두고 했던 말이다. 당시 그는 “조국을 지키려 만든 내 총이 오사마 빈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들 손에 들려있는 모습을 TV에서 볼 때면 ‘과연 내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만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회한을 토로했다. 




옛소련의 무기개발자였던 칼라슈니코프는 1941년 러시아 서부 브랸스크에서 나치 독일군과의 교전 중 박격포 공격에 부상을 입웠다. 병원에 후송돼 치료를 받으면서 AK소총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7년 실용화된 소총의 이름 ‘AK47’은 ‘자동소총 칼라슈니코프(Avtomat Kalashnikov)’와 당시의 연도에서 따왔다. 이 소총은 화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사용법이 간단하고 생산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 때문에 각광을 받았다. 개발 2년 뒤에는 옛소련군의 공식 소총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사용법이 간단하고 돈 적게 든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AK47은 ‘저주받은 무기’가 됐다. 국방용이 아닌 마피아와 무장조직, 테러범들의 무기가 돼버린 것이다. 유엔은 매년 소화기 공격으로 50만명 이상이 숨지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가 이 총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초반까지 소말리아와 르완다 등지에서는 1정에 30~125달러 선에서 밀매되던 AK47은 분쟁이 일상화되면서 가격이 더욱 떨어졌고, 10달러대에 팔리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늘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밀매되는 무기’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동유럽의 발칸 반도, 이라크, 소말리아 등 곳곳의 분쟁에서 이 총이 등장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AK47의 주무대였다. 옛 소련 점령시절 흘러들어간 이 무기들을 가지고 탈레반과 ‘북부동맹’ 등 여러 세력이 내전을 벌였다. 무기밀매 실태를 조사해온 영국 분쟁무기연구(CAR)는 지난 1월 “이란이 유엔의 무기 금수조치를 위반하고 아프리카에 AK47들을 공급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칼라슈니코프가
“전 세계에서 내 발명품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한 것은 자신의 발명품이 ‘적국의 군대’가 아닌 여성과 어린이 같은 약자들을 죽이는 무기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탓이다. 뒤에 AK47을 개량한 AK74, 101, 103 등이 개발됐으며, 여러 모델을 합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7000만정~1억정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개량형 모델은 러시아 내 공장에서 생산하지만 구형 모델은 여러나라에서 불법적으로 생산된다. 


스스로는 원치 않았지만 지구촌 숱한 분쟁지역의 게릴라들과 갱들 손에 총을 들려준 칼라슈니코프는 23일 지병으로 숨졌다. 이타르타스통신 등 러시아 언론들은 칼라슈니코프가 고향인 러시아 중부 우드무르티야 자치공화국 수도 이제프스크의 한 병원에서 장 출혈로 치료를 받다가 이날 94세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칼라슈니코프는 소총 개발 뒤 옛소련 정부로부터 여러차례 포상과 훈장을 받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살았던 탓에 경제적 보상은 별로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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