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왕국’ ‘행복한 나라’라 불리는 히말라야의 소국 부탄이 뿔이 났습니다. 이례적인 일이죠. 대상은 중국입니다.
1646년 지어진 부탄 파로계곡의 불교건축물 총(Djong). _ 위키피디아
발단은 도로 건설이었습니다. 부탄의 북쪽은 중국, 동·서·남쪽은 인도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부탄 서쪽, 인도의 시킴 주는 인도, 중국, 부탄, 네팔, 방글라데시 5개국의 국경이 만나는 복잡하고 미묘한 지역입니다. 이곳에 중국이 도로를 짓고 있는 겁니다.
중국과 인도는 히말라야의 국경지대를 놓고 오랜 세월 영토분쟁을 벌여왔습니다. 부탄 동쪽에 인도의 29개 주 가운데 하나인 아루나찰프라데시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중국은 아루나찰프라데시의 대부분 지역이 티베트의 일부에 해당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탄의 서쪽 지역에서까지 분쟁이 벌어진 겁니다. 중국이 시킴 바로 북쪽 티베트의 산악지대에 도로를 짓자 인도는 국경분쟁을 악화시킨다며 반발했습니다.
인도 주재 부탄 대사 벳솝 남기엘은 민감한 국경 지대에서 도로를 짓는 일을 멈추라고 중국에 요구했습니다. 인도 PTI통신에 따르면 벳솝 대사는 “중국 인민해방군에게 3국 국경과 가까운 지역에서 도로건설 공사를 중단하라는 항의문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부탄이 중국에 항의하는 건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중국 인구는 13억7000만명, 부탄 인구는 80만명입니다. 중국 영토는 960만㎢이고 부탄 영토는 3만8400㎢이지요. 경제력 차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탄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사실 두 나라는 수교국이 아닙니다. 부탄이 인도와 가까운 까닭입니다. 게다가 중국이 도로를 짓는 도클람이라는 지역은 부탄과 중국 사이의 국경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곳입니다. 부탄 대사는 “도클람은 부탄과 중국 사이에 국경문제를 놓고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지역이므로,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중국은 도클람을 ‘둥랑’이라는 중국식 지명으로 부르면서 자기네 땅이라 주장합니다. 중국과 부탄 사이에 영토분쟁이 남아 있는 곳은 도클람, 신출룸파, 기에우 등 여러 곳인데 다 합쳐도 면적이 300㎢ 남짓한 작은 땅입니다.
인도는 인도대로, 중국의 도로건설을 아루나찰프라데시 문제와 연관지어 보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 사이의 분쟁에 휩싸인 국경 길이가 4057㎞나 되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도클람 문제를 바라보는 겁니다. 비핀 라와트 인도군 사령관은 29일 시킴 주를 방문했습니다. 일종의 ‘시위’였지요. 그러자 중국은 인도 군대가 먼저 시킴 쪽에서 국경을 넘어 중국 땅인 티베트로 넘어왔다고 비난했습니다. 인도 언론들은 인도군과 중국군 부대 사이에 작은 마찰도 벌어졌다고 전했습니다.
부탄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됐습니다. 중국과 인도는 1962년 아루나찰프라데시를 놓고 전쟁을 벌인 적 있습니다. 2014년에도 중국군이 시킴에 진입해 인도와 대치했습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인도군이 중국에서 철수해야 한다며 29일 정례브리핑에서 인도를 비난했습니다.
루 대변인은 “진실은 가릴 수 없다. 우리는 인도가 역사적인 국경선을 지키고 중국의 영토주권을 존중해 군대를 철수시킴으로써 상황 악화를 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국이 말하는 ‘역사적인 국경선’은 1890년 중국과 영국 간에 합의된 ‘시킴-티베트 국경선’을 말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부탄의 항의는 거론하지도 않았습니다. 중국이 말하는 인도와의 ‘역사적 국경선’과 ‘진실’에 부탄이라는 작은 나라는 들어 있지도 않은 거지요.
부탄은 외부와의 교역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그 대부분을 인도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부탄의 전체 수입액 11억달러어치 중 78.6%가 인도에서 들어왔습니다. 부탄의 수출액 5억달러의 90.3%가 인도로 갔습니다. 그러니 부탄으로서는 인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인기 많은 부탄의 케사르 국왕과 제선 페마 왕비.
[사진으로 본 세계]부탄 국왕 부부 만난 영 윌리엄 부부
그렇다고 해서 중국에 밉보일 처지도 아닙니다. 부탄은 1971년 유엔에 가입한 이래 중국과 인도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대개는 인도 편에 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 문제에서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베이징 편을 들었습니다. 1974년에는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국왕의 즉위식에 인도 주재 중국 대사를 초대하는 상징적인 조치를 취했고, 1984년부터는 중국과 국경 문제를 놓고 정례 대화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중국은 1998년 부탄의 주권과 영토적 통합성을 존중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평화공존 5대원칙’이라는 것에 합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02년에는 다시 분쟁지역을 자기네 땅이라고 선언, 부탄을 자극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잠시 외교 마찰이 벌어졌다가 협상을 거쳐 일단 화해를 했습니다.
그러고 다시 이번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아시아의 두 패권국들 사이에 낀 부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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