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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세계]‘무슬림 입국금지’ 맞선 요르단 항공의 유쾌한 복수  

딸기21 2017. 3. 27. 15:50

로열요르단항공 트위터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와 국경을 맞댄 중동 국가다. 주민 980만명 중 92%가 무슬림이지만 세속국가다. 인구 60%가 팔레스타인계인 아랍국이지만 이스라엘과도 국교를 맺고 있다. 절대군주제와 입헌군주제의 절반 정도에 와 있는 군주국이지만 걸프의 왕국들과 달리 이렇다할 자원도 없다. 그 대신 오래전부터 ‘줄타기(rope) 외교’를 통해 지역 내에서 입지를 확보해왔고,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이 나라를 오랫동안 통치했고 ‘분쟁 해결사’로 불렸던 후세인 국왕이 1999년 2월 타계했을 때에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 등이 일제히 수도 암만을 찾아 조문했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무슬림 입국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트럼프의 두 차례 행정명령 모두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으나 갑작스런 발표와 시행, 효력정지 과정을 거치며 세계 곳곳에서 혼란이 벌어졌다. 그러자 요르단 항공사인 ‘로열요르단항공’은 인종·종교 차별로 비판받는 트럼프 정부의 조치에 재치 넘치는 광고와 안내문으로 대응, 눈길을 끌고 있다.


로열요르단항공 트위터


지난달 초 트럼프가 첫 행정명령을 내놓기 전 이 항공사가 띄운 광고는 “허용될 때 미국으로 날아가라(Fly to the US with RJ now that you‘re allowed to)”였다. 그러면서 이 회사는 ‘금지(ban)’의 철자를 바꾸고 ‘좋은 여행’을 기원하는 영어 문구(Bon Voyage)를 덧씌운 광고를 선보였다. 미국행 항공권 할인 이벤트도 했다.

 

로열요르단항공이 트럼프 시대 ‘맞춤형 광고’를 내놓은 것은 이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이 실시되기 전,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였을 때부터 트럼프 시대에 대비해 “그가 이기면... 갈 수 있을 때 미국 여행을 하라”는 홍보문안을 선보였다.

 

로열요르단항공 트위터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금지령은 시행되지 않고 있지만, 중동과 미국을 잇는 항공편에 대한 통제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국토안보부는 요르단 암만, 이집트 카이로, 카타르 도하 등 이슬람권 10개 국제공항에서 이륙하는 중동 국적 주요 항공사 항공기 탑승객들에게 휴대전화를 제외한 전자기기 기내 휴대를 금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영국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로열요르단항공은 이 조치에 맞는 또 다른 광고로 맞대응했다. “랩톱이나 태블릿 없이 12시간 동안 비행기에서 할 수 있는 12가지”라는 익살스런 안내문이다. 책을 읽거나 가벼운 스낵 먹기, 옆사람에게 인사하기, (기내영화를) 뭘 볼 것인지 1시간동안 고민하기,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원시적인 대화를 되살려보기, 좌석 앞 테이블이 키보드인 척 하기, 팔걸이 쟁탈전,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기, 왜 지금 랩톱이나 태블릿을 갖고 있지 못하게 됐는지 생각해보기 등이다.

 

랩톱이나 태블릿 없이 12시간 비행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 로열요르단항공의 안내문.


요르단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지만 혼란스런 이웃나라를 둔 덕에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리아 인구 2400만명 중 절반이 집을 떠나 국내 혹은 외국을 떠도는 난민이 됐다. 그 중 67만명이 요르단 북부 국경지대 난민촌에 머물고 있다. 요르단 정부는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에 난민 지원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생겨난 이라크 난민들도 요르단에 많이 산다. 

 

그런데 미국 새 정부는 난민들을 나몰라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슬림 전체를 잠재적 테러범으로 취급하며 무슬림 입국금지를 추진하고 있으니 요르단 입장에선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국 이민정책연구소(MPI)에 따르면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뒤 미국이 수용한 시리아 난민은 1만8000명뿐이다. 그나마도 버락 오바마 정부가 시리아 난민 재정착 프로그램을 도입한 2015년 이후에 들어온 사람이 거의 전부다.

 

1963년 당시 왕비의 이름을 따 ‘알리아항공’으로 출발한 로열요르단항공은 암만의 퀸알리아국제공항을 베이스로 삼고 있으며, 2000년 민영화됐다. 하루 110편의 항공기를 세계 60여개 도시에 취항시키는 중동의 대표적인 항공사 중 하나다. 또한 이 항공사는 유엔난민기구(UNHCR)와 시리아 내전에 발 묶인 이들을 수송하는 계약을 해, 난민·이주민 이송을 담당해온 회사이기도 하다. 이 항공사가 2월부터 내놓은 일련의 광고들은 상업적 목적에 맞춰 미국 정부의 조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국의 무슬림 차별을 접하는 불편한 속내가 그대로 읽힌다. 미국의 조치를 유머로 꼬집으며 광고로 승화시킨 셈이다.

 

파키스탄항공 트위터


미국의 전자기기 제한조치는 전문가들로부터도 실효성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CNN 등은 “중동의 주요 공항들은 미국 공항들 못잖게 엄격한 보안조치를 실행하고 있다”면서, 이 조치 대상에 포함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국제공항의 경우 앞서 미국 국토안보부가 안전성을 확인한 곳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 조치가 중동 공항들과 미국을 잇는 ‘직항노선’에만 적용된다는 것은 난센스다. ‘테러범’이 중동국가에서 폭탄테러에 쓸 전자기기를 들고 타는 대신 다른 지역, 다른 나라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탄다면 속수무책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파키스탄항공(PIA)은 바로 이 빈틈을 노리는 광고를 만들었다. 파키스탄은 전자기기 휴대금지 대상국가가 아니다. 파키스탄항공은 22일 트위터에 “아세요? PIA를 타면 미국에 갈 때 랩톱과 태블릿을 기내에 가지고갈 수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