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보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가 더 미래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예지력을 보여줄 때가 많다. 쥘 베른의 소설이 달 탐사를 예견했다거나, <터미네이터>가 기계와의 전쟁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는 식의 분석은 많다. 소설, 영화, 드라마에 나오는 ‘디스토피아(끔찍한 미래 세계)’의 모습 중에는 이미 현실화된 것들도 적지 않다.
미국 웹사이트 리스트버스닷컴에는 최근 한국의 ‘성형중독’ 현상을 비롯해 과거의 작가들과 드라마들이 묘사한 오늘날의 세계를 분석한 글이 실렸다. 멀게는 100년, 혹은 50년 전에 묘사된 것들이 현재를 정확하게 예고하고 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10 Sci-Fi Dystopias That Are Everyday Realities Today
■10위 한국의 성형수술 강박증으로 현실이 된 ‘12번이 당신과 똑같다(Number 12 Looks Just Like You)’
미국 CBS 방송이 1964년 1월 방영한 TV 시리즈 <트와일라이트존>의 한 에피소드다. 당시에는 성형수술이 거의 없었으며, 미용성형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극심한 부상으로 신체를 다친 이들을 위한 치료로서의 성형만 존재했다. 그러나 이 TV 시리즈 작가들은 장차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목적만으로’ 성형수술을 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시리즈 중 한 편인 ‘12번이 당신과 똑같다’는 18세가 되면 몇몇 극소수 모델의 외모를 그대로 본떠 성형수술을 하는 사회를 그렸다. 이 사회에서 여성들의 얼굴은 단 몇 명의 얼굴로 ‘통일’되는 것이다.
CBS·Twilightzone.wikia.com
당시만 해도 기괴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지금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리스트버스는 지적한다. 젊은 여성들 3명 중 한 명 꼴로 성형수술을 받는 상황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기에 여학생들이 성형수술을 우르르 받는 것도 영화 속에서 특정 연령이 되면 수술을 받는 설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성형수술을 많이 받는 연령대도 18세로 드라마와 같다.
■9위 영상에 중독된 아이들의 폭력을 예고한 <디벨트(The Veldt)>
1950년대 출간된 <디벨트>는 미국 작가 레이 그래드베리의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이 발표됐을 때는 미국에서 텔레비전이 가정마다 들어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브래드베리는 텔레비전으로 상징되는 영상물이 가족 관계, 특히 자녀 양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주목했다.
www.today.com
소설은 인터랙티브TV를 자녀 양육에 활용하는 한 가정의 이야기다. 이 집 아이들은 부모의 훈육보다는 TV라는 유모에 의해 길러진다. 아이들은 난폭해지고, 상황은 갈수록 악화된다. 부모가 TV의 양육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려 하자 아이들은 부모를 살해하고 만다. TV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났다. 2012년 미국에서 노아 크룩스라는 14세 소년이 엄마를 살해했다. 이 소년이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에 중독돼 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 내에서 거센 논쟁이 일어났다.
일본에서는 2004년 사세보의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동급생을 끔찍하게 살해했다. 이 소녀는 잔혹하기로 유명한 영화 <배틀로얄>에 심취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8위 페이스북 ‘친구맺기’가 묘사된 <기계가 멈춘다(The Machine Stops>
1909년은 전화가 이제 막 등장해 퍼지기 시작한 때였다. <인도로 가는 길>로 유명한 영국 작가 E. M. 포스터는 그 해 <기계가 멈춘다>라는 작품에서 정보통신 시대가 도래하면 공동체가 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가 소설에서 그린 것은 극단적인 미래다. 모든 사람은 집 안에 머물며 밖으로는 돌아다니지 않는다. 오로지 수백, 수천 개의 전화회선으로만 연결된 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친구’를 사귀고, 물건이나 현상에 ‘좋아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전화밖에 없던 시대에 오늘날의 페이스북과 거의 비슷한 미디어를 상상했다는 것은 놀랍다. 트위터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다. 작품 속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한 문장의 단문으로만 전달한다.
■7위 온라인 교육? <그들이 느낀 재미(The Fun They Had)>에 다 있다
세계 3대 SF작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미국 작가 아이잭 애시모프가 쓴 소설 <그들이 느낀 재미>는 1950년부터 신문에 연재된 것을 이듬해에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책에는 컴퓨터를 가지고 공부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지금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지만 당시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소설 속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으며 집에서 기계와 함께 공부한다.
아이들이 학교, 교실, 친구들에 눈을 뜨는 것은 기계가 고장난 이후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집 밖 외부세상에 교실이 있고 그곳에서 공부를 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이 나왔을 당시에는 개인용컴퓨터(PC)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6위 오타쿠들의 ‘와이푸’를 미리 보여준 <마리오네트(Marionettes, Inc)>
와이푸(Waifu)는 아내를 뜻하는 영어 단어 와이프(wife)를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다.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남자주인공이 여러 여성들을 섭렵하는 줄거리를 가리켜 ‘하렘물(harem物)’이라 칭한다. ‘와이푸물’은 하렘물과 달리 남성이 한 여성에게만 애정을 쏟아붓는 상황을 가리킨다. 여기서 ‘한 여성’은 실재하는 여성이 아닌 가상의 존재다.
레이 브래드베리의 <마리오네트>에는 두 남자가 나온다. 두 사람은 모두 아내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 두 남성은 자신들과 꼭 닮은 로봇을 산 뒤 집에서 자신들을 대신하게 한다. 문제는 두 남자의 아내들이 남편보다 로봇을 더 좋아하게 됐다는 점이다. 결국 남성들은 설 자리를 잃고, 로봇이 남편들 자리를 꿰찬다.
‘와이푸물’이 범람하는 일본에는 실제로 섹스리스 커플들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온다. 일본의 미혼 남성 61%는 한 번도 여성과 데이트를 한 적 없고, 16~24세 여성 45%는 성관계에 관심이 없다는 통계조사도 있다고 리스트버스는 소개했다.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지만 애정관계에는 관심 없는 ‘초식남’, ‘건어물녀’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미국에는 현실의 여성이 아닌 성관계용 ‘아이돌(인형)’들에 몰두하는 ‘아이돌레이터(iDollator)’라는 용어가 있다.
■5위 기계와의 일자리 경쟁 내다본 ‘위플의 브레인 센터(The Brain Center At Whipple’s)’
<트와일라이트존> 시리즈의 하나로 1964년 방영됐으며 로드 설링이 각본을 썼다. 월러스 V. 위플이라는 드라마 속 남성은 자신이 운영하던 공장의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하고 로봇 노동자들로 대체한다. 작품의 결말은 역설적이다. 위플 자신이 로봇 경영자에 대체돼버리는 것이다.
‘위플의 브레인 센터’의 한 장면. |twilightzone.wikia.com
전문가들은 앞으로 20년 안에 지금 존재하는 일자리의 50%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렇게 로봇이 대체하게 될 일자리는 흔히 말하는 ‘블루컬러’ 일자리들만이 아니다. ‘위플’이 보여주듯이, 인간이 고유의 영역이라 여겼던 이성적 사고와 예술적 감성으로 행하는 일들도 상당부분 기계가 가져갈 수 있다.
■4위 냉전을 경고한 <만족스럽지 않은 해법(Solution Unsatisfactory)>
미국이 핵폭탄을 일본에 떨어뜨리면서 세계는 ‘핵 이전의 세계’와 ‘핵 이후의 세계’로 나뉘었다. 동시에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는 동과 서로 갈라졌다. 지금은 벌써 4반세기가 지난 일이 돼버린 냉전은 ‘유일강국’ 미국의 부상으로 귀결됐으나 냉전 시기의 상흔은 곳곳에 남아 있다.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미국 핵폭탄이 투하된 뒤 버섯구름이 솟아오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미국 작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만족스럽지 않은 해법>은 미국의 핵무기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이전에 쓰였다. 책은 가공할 무기가 등장한 이후 늘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세계를 그렸다. 핵 공포뿐 아니라, 지구를 멸망시킬 정도의 무기를 보유한 미국이 ‘세계경찰’로 부상할 것임을 예견했다는 점에서도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하인라인은 ‘방사성 물질’이 무기로 쓰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출판편집자에게 듣고 이 소설을 구상했으나, 작가 자신은 핵무기가 아닌 가공할 생물학 무기가 등장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봤다고 한다.
■3위 현대인의 피할 수 없는 향수를 그린 ‘스태틱(Static)’
이 작품도 <트와일라이트존>의 한 편이다. 1961년 방영된 ‘스태틱’은 자신이 어렸을 적의 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방송에 심취한 50대 남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남성은 강박적으로 라디오에 매달리고, 방송을 듣는 것 말고는 어떤 행동도 하려 들지 않는다. 걱정한 친구들은 결국 라디오를 치워버린다. 각박한 사회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이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에 젖는 것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스태틱(Static)’의 한 장면 |WIKIPEDIA
■2위 <화씨 451(Fahrenheit 451)>와 리얼리티 TV의 범람
마이클 무어의 작품 <화씨 911>이 이 작품의 표제를 모방했다고 해서 논란이 벌어진 적 있다. <화씨 451>은 역시 레이 그래드베리의 작품으로, 1953년에 나왔다. 지금은 TV 리얼리티쇼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린 이런 장르를 내다보기 힘들 때였다.
작품 속 ‘밀드레드’라는 여성은 하루 종일 TV에 방영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밀드레드가 시청하는 프로그램은 어느 가정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하자면 지금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밀드레드는 이 프로그램에 너무 심하게 빠져 있어서 일상생활마저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미국 케이블TV 채널인 ‘브라보TV’의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베벌리 힐스의 주부들(Real Housewives of Beverly Hills)’에 나왔던 출연자 부부가 2011년 이혼소송에 들어갔다. 여성은 자신이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했다고 쇼에서 폭로했다. 그러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남편은 목숨을 끊었다. 리얼리티 쇼들이 범람하면서 현실과 TV의 경계가 무너지고, 출연자가 목숨을 끊은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1위 <양들이 보고 있다(The Sheep Look Up)>, 중국에서 현실이 되다
영국 작가 존 브러너는 1972년 SF 소설 <양들이 보고 있다>에서 대기오염으로 황폐해진 세계를 묘사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마실 물을 필터로 걸러 마신다. 외출을 할 때에는 스모그를 피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 물과 땅은 모두 독성 물질로 황폐해졌다.
중국의 극심한 대기오염. |경향신문 자료사진
설명할 필요도 없는, 지금 지구촌 곳곳의 현실이다. 중국에서는 연중 내내 마스크를 쓰고 외출해야 하는 ‘대기오염 경보’ 상태의 사진들이 쏟아져나온다. 수돗물조차 안심하고 마실 수 없는 상황이다. 극심한 대기오염(airpolution)에 묵시록(apocalypse)이라는 단어를 합친 ‘airpocalypse’라는 신조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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