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에 막강한 권한을 주는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해 야당이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희생을 하고 나서 통과를 시키겠다는 이야기인지, 이거는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는 이미 로마 시대부터 있었던, 의회의 ‘정상적인’ 제도다.
필리버스터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대표적인 인물은 로마의 공화정을 수호하려 애쓴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기원전 95~46년)다. 같은 이름을 가진 증조부와 구분하기 위해 ‘소(小) 카토’라고 부르는 카토는 정부의 입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종종 밤까지 기나긴 연설을 했다. 당시 로마 원로원은 해질녘까지 모든 임무가 끝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카토의 지연전술은 표결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카토는 이런 방식으로 권한을 강화하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시도를 막곤 했다.
카이사르도 굴복시킨 카토의 연설
가장 유명한 사례는 기원전 60년 카이사르가 히스파니아 전쟁에서 이기고 개선장군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갓 마흔을 넘긴 카이사르는 법적으로 집정관에 출마할 수 있는 연령이었으나, 통상 대규모 무력을 거느린 로마의 개선장군들은 원로원의 승인에 따라 시행되는 개선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시내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데 카이사르가 집정관에 출마하려면 먼저 원로원에 나와야 했다. 카이사르는 원로원에 ‘궐석 출마’를 허용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카토는 필리버스터로 부결시켰다. 결국 카이사르는 개선장군으로서의 영예를 포기하고 원로원에 출석했다.
로마 공화정 시절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맞서 필리버스터를 했던 카토.
이듬해 카토는 집정관이 된 카이사르가 제출한 토지개혁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다시 기나긴 연설을 준비했다. 카이사르는 카토를 체포, 구금해버렸으나 이 조치는 오히려 반발만 샀다.
의회민주주의의 본고장인 영국 의회에는 “talked out”이라는 표현이 있다. 필리버스터로 부결된 법안이나 안건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1874년 조지프 비거라는 하원의원은 아일랜드를 탄압하기 위한 법안을 막으려고 긴 연설을 했다. 뒤에 아일랜드의회당의 당수가 된 젊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찰스 파넬도 동참했다. 이들의 전술은 성공적이었고, 결과적으로 아일랜드의 자치가 상당부분 허용됐다.
1983년 영국 노동당 의원 존 골딩은 통신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막으려고 11시간 동안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본회의장이 아니라 하원 소위원회에서 이뤄졌는데, 이 회의는 참석자들이 모두 서서 대화를 나누는 스탠딩 회의였다. 고통스럽긴 했지만 당시 골딩에게는 최소한 식사를 할 시간은 주어졌다.
현대 영국 의회에서도 필리버스터는 종종 일어난다. 2007년 의원들이 정보자유법을 적용받지 않아도 되도록 한 법안이 자유민주당 사이먼 휴즈와 노먼 베이커 두 의원에 막혀 무산됐다. 2012년 1월 스코틀랜드국민당(SNP)과 보수당은 영국의 표준시간을 중부유럽시간(CET)으로 변경하는 일광절약법안을 막으려고 필리버스터를 활용했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필리버스터가 의원들의 투쟁 수단으로 쓰이곤 한다.
58시간 의원 103명 돌아가며 연설
캐나다에서는 2011년 6월 ‘역사적인’ 필리버스터가 일어났다. 우편노동자들의 노동계약과 관련된 법안을 막기 위해 신민주당(NDP)이 장장 58시간 동안 의사진행을 지연시켰다. 103명의 NDP 의원들이 약 20분씩 돌아가면서 연설을 했고, 중간중간 10분씩 질의응답과 코멘트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집권 보수당은 끝내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트롬 서몬드 미국 상원의원이 1957년 미 의회 역사상 최장시간 연설 기록을 남긴 24시간 18분의 연설을 하고 있다.
필리핀 나시오날리스타(민족당) 상원의원이었던 로세예르 림은 1963년 4월 상원의장 선출을 앞두고 18시간 동안 연설을 했다. 미국에서 귀국할 예정인 동료 의원 알레한드로 알멘드라스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나시오날리스타는 군 출신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상원 의장이 되는 것을 막으려 했는데 의석을 마르코스의 당과 나시오날리스타가 정확히 양분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국의 필리버스터 사례는 많다. 너무 많아서, 상원이 필리버스터를 허용할 것인지를 안건에 따라 별도로 투표해야 할 정도다. 현행 규칙상 상원의원은 전체 100명 중 3분의 2인 60명의 동의가 있으면 원하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얼마나 긴 시간이든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하원에서는 필리버스터가 금지돼 있다.
역대 최장 연설 기록은 1957년 스트롬 서몬드 의원이 세웠다. 2003년 사망할 때까지 48년 동안 상원의원을 지낸 그는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민권법에 반대하기 위해 24시간 18분 동안 연설했다. 이란·리비아 제재법인 ‘다마토법’으로 유명한 알폰스 다마토 의원은 1986년 국방권한법에 반대해 23시간 30분 연설했다. 다마토는 1992년에도 15시간 14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한 전력이 있다. 웨인 모스 의원은 1953년 토지통합법에 맞서 22시간 26분간 지연전술을 펼쳤다. 민주당 대선 주자로 나선 버니 샌더스는 2010년 버락 오바마 정부와 공화당이 합의해 만든 감세법안에 맞서 8시간 동안 연설했다.
연설 대신 ‘개정안 무더기 제출’ 전술도
연설이 아닌 다른 방식의 필리버스터도 있다. 2006년 프랑스 사회당은 국영 에너지회사 가즈드프랑스의 정부 지분을 대폭 낮추려는 민영화법을 막기 위해 무려 13만7449건의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모든 개정안을 다 표결로 처리하려면 1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프랑스는 법적으로 의회에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에 나온 방법이었다.
비슷한 방법이 홍콩에서도 등장했다. 2012년 민주화운동 세력인 ‘인민역량(人民力量)’ 소속 입법원 의원인 앨버트 찬과 웡육만은 당국이 한번 사임한 의원의 보궐선거 재출마를 막는 방안을 추진하자 1306건의 개정안을 내는 방법으로 저항했다. 당시 홍콩에서는 민주화 개혁을 요구하는 의원 5명이 사퇴하고 재출마를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입법원 원장인 재스퍼 창이 입법원절차법을 근거로 개정안 토론을 종결시켰고, 결국 법안은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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