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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하지' 순례객 압사사고, 최소 717명 사망

딸기21 2015. 9. 2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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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는 모든 이슬람 신자들의 ‘5대 기둥(의무)’이라고 부르는 것 중의 하나인 성지순례를 가리킨다. 하지 끝의 희생제인 ‘이드 알 아드하’는 이슬람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축제가, 대규모 참사와 함께 비극으로 변하게 됐다. 희생제 날인 24일 25년 만에 최악의 사고가 일어난 탓이다. 


사고가 일어난 길. 알자지라 화면 캡처


해마다 닷새에서 일주일 정도 진행되는 하지에는 순례객들이 대거 몰린다. 순례자들은 메카의 대(大)모스크 가운데에 있는 ‘카바’라는 검은 돌에 입을 맞추고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미나 계곡에서 밤을 보낸다. 마지막 날에는 메카 부근의 아라파트 평원에서 돌을 주워와 미나 계곡에 있는 ‘마귀 돌기둥’에 돌을 던지며 악마를 쫓는 상징적인 의식을 한다. 사고는 사람들이 마귀 돌기둥이 있는 쪽으로 이동해 가는 와중에 일어났다. 최소 717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가 800명이 넘는다. 


미나 계곡에는 순례객들이 묵을 텐트 16만개가 설치돼 있었다. 사우디 SPA통신은 돌기둥 쪽으로 순례자들이 이동하고 있던 중에 한 무리의 순례자 행렬이 끼어들면서 숙소와 숙소 사이 교차로에 갑자기 사람이 많이 몰렸고, 이 과정에서 여러 명이 한번에 넘어지면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전했다. 


사우디 구조요원들이 24일 압사사고가 난 미나에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사우디 당국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


사우디아라비아 중앙하지위원회의 칼레드 알파이살 위원장은 사고 뒤 “아프리카 국적을 가진 일부 순례자들로 인해 일어났다”고 알아라비야 방송에 말했으나, 구체적인 사고 정황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당국은 현장에서 구조요원들이 부상자들을 이송하는 모습을 트위터에 올렸으나 사고 직후부터 취재진의 현장 접근은 금지했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다. 


순례객들이 현장에서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과 동영상에는 미나의 성지가 아수라장으로 변한 모습들이 드러나 있다. 현장에는 옷가지와 신발, 소지품 따위가 널려 있고 실신해 쓰러진 순례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망자들의 국적과 신원은 아직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다. 이집트 정부는 최소 24명의 이집트인이 희생됐다고 밝혔다. 이란인도 최소 43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란 정부는 사우디 정부가 하지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맹비난했다. 이란 외교부는 사우디 대사를 소환해 사고경위를 물을 계획이라고 이란 IRNA통신은 전했다.


가뜩이나 역내 주도권을 놓고 경쟁 중인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 이번 사고로 갈등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1987년 하지 때 사우디 정부가 이란인 순례자들의 시위를 강경 진압, 이란인 275명이 사망한 일도 있었다. 


카바 /위키피디아


칼레드 알팔리 보건부 장관은 “순례객들이 당국이 짠 시간표를 따르지 않은 게 사고의 주된 이유”라며 “사람들이 지시만 따랐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올 하지에 근 200만명이 몰릴 것임을 알고 있던 사우디 정부가 안전 대책을 소홀히 해놓고 순례객들 탓만 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 참사는 메카 크레인 붕괴사고가 난지 보름도 안 돼 일어났다. 이란 측은 사우디 하지 관리당국이 갑자기 도로 2곳을 통제하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즉위한 살만 국왕은 여든 살의 고령에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많았다. 즉위하자마자 아들 무함마드를 국방장관에 앉히는 등 권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무함마드 주도로 이뤄진 예멘 공격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해 체면을 구겼다. 저유가로 재정은 흔들리고, 안팎에서 민주화 요구에 부딪히고 있다. 가뜩이나 역내 영향력에서 이란에 밀리고 있는 판에 참사가 잇따르면서 왕실은 더욱 난처한 상황에 몰리게 됐다. 


■이슬람 성지순례 때 벌어진 주요 사고 

2015.9.11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크레인 붕괴, 109명 사망

2006.1.6 하지 전날 메카의 숙소가 무너져 76명 사망 

       1.12 메카 부근 미나에서 돌 던지는 의식 중 364명 압사 

2004.2.1 미나에서 돌 던지는 의식 중 251명 압사 

2001.3.5 미나에서 여성 23명 포함해 순례자 35명 의식 중 사망 

1998.4.9 미나에서 118명 압사 

1997.4.15 미나의 순례객 텐트에서 불이 나 343명 사망 

1994.5.24 미나에서 돌 던지는 의식 중 270명 압사 

1990.7.2 미나의 보행자용 터널에서 환기장치 고장으로 1426명 사망 

1987.7.31 이란인 순례자 시위 강경진압으로 이란인 275명 등 400여명 사망 

1979.11.20 메카의 대모스크에서 왕정 반대 무장세력의 인질극으로 153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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