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차이나쇼크 직격탄 맞은 사우디와 유가 흐름

딸기21 2015. 9. 15. 16:57
728x90


중국 경제가 심상찮습니다. 지난 6월 한 차례 상하이 증시 대폭락, 정부의 인위적인 ‘증시 부양’, 그리고 7월의 더 큰 폭락. 이어서 8월에는 중국의 석유화학 산업 단지이자 수출항인 톈진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중국 경제가 휘청거린다는 분석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세계의 공장’이 가동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전 세계로 그 여파가 미치게 되죠. 중국 경제의 찬바람, 그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입니다. 지난해부터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과 출혈경쟁을 벌여온 사우디는 중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더 큰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미국 셰일가스와의 경쟁도 경쟁이지만, 이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 이른바 P5+1과 지난 7월 핵협정을 마무리했습니다. 미국 의회가 협정안에 반대하고는 있습니다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의회가 반대안을 통과시키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했는데요.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다행스럽게도, 핵협정안은 미국에서도 시험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란이 세계무대에 복귀하게 됩니다. 이란산 석유가 국제시장에 풀리는 거죠.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사우디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분간 유가 하락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름값이 싸지면 우리야 좋은 게 아닌가, 언뜻 이런 생각이 듭니다만,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는 게 문제인데요. 



미-사우디 '치킨게임' 승자는 과연 누구?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는 석유 시장에 곧바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난 7월 27일, 주가가 하루 만에 8.5% 떨어진 중국 증시의 ‘검은 월요일’ 전후로 북해산 브렌트와 미 서부텍사스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40달러 안팎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후에 조금 반등하긴 했으나 여전히 유가는 낮은 편입니다. 지난 1년 동안의 유가 추이를 볼까요?


▲ 서부텍사스유▲ 서부텍사스유

 

▲ 브렌트유▲ 브렌트유


위 그래프를 보면 미국 서부텍사스유와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이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 수 있는데요. 둘 다 1년 전보다 많이 떨어졌죠.


미국 에너지부는 8월 25일에 올해 서부텍사스유의 배럴당 평균 가격을 49달러 정도로 추산했습니다. 7월의 예측치와 비교하면 6달러나 하향 조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내년 평균가는 배럴당 54달러로 예상됐는데, 이 또한 한 달 전의 예측치보다 8달러를 낮춘 것입니다. 


지난해 사우디는 유가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의 아우성을 무시한 채 감산을 거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려는 것으로 봤고, 사우디와 미국 기업들의 '치킨게임'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 회사들은 일부 타격을 입었는데요. 뉴욕타임스 7월 2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 최근 2~3년 새 석유 부문 일자리 10만 개가 없어졌습니다. 더군다나 중국 증시가 폭락하고 유가 하락이 계속되자, 셰일 가스업계로 들어가는 투자가 확 줄었다고 합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 9월 6일 보도에 따르면, 올 1~6월 미국 원유업체들에는 들어온 돈보다 나간 돈이 320억 달러(약 38조 원) 많았다고 합니다. 돈줄이 끊기고 자본유출이 심해진 거죠.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디폴트를 선언한 원유업체만 16개에 이른다고 집계했습니다.

▲ drilling


그런데도 미국의 산유량이 당장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타격으로 문을 닫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 예상보다는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이 생산비용을 재빨리 낮춰가며 수지 타산을 맞추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셰일가스 업계에서 부실한 쪽은 무너지지만 탄탄한 기업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고, 지금 상황은 정리와 개혁의 단계인 것으로 업계에서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씨티그룹 원자재 분석가 에드워드 모스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저금리 때 투자처를 못 찾은 돈이 흘러들어 가 미국의 산유량을 너무 뛰어오르게 하였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지금 조정국면을 겪고 있으니 어느 정도 산유량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미국 셰일가스 업계가 무너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사우디는 재정난으로 폭발하기 직전입니다. 사우디는 사실 국가 전체가 석유 수입에 목숨을 걸고 있는데요. 사우디는 세금이 거의 없고 참정권도 보장돼 있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전근대적인 절대왕정’이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그 대신 왕정이 석유 팔아 번 돈으로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치적 사회적 불만을 눌러왔는데 돈이 떨어지면? 왕정이 흔들릴 수 있는 거죠. 발등의 불이 떨어진 쪽은 사우디입니다. 이에 사우디는 쉽게 생산량을 줄일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중국이 석유를 덜 쓰면? 


지금 미국과 사우디 모두 하루 산유량이 1,000만 배럴이 넘고, 미국이 오히려 조금 앞섭니다. 사우디는 하루 산유량(통계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얼마 전 미 에너지국 통계로는 1,154만 배럴이었습니다) 중 70% 이상을 중국에 팔아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 하루 774만 배럴이던 대중국 수출량은 5월부터는 700만 배럴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사우디가 생산량을 유지하기로 했을 때의 기본 전제는 ‘중국의 끝없는 수요’였는데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죠. 


물론 중국이 당장 석유 수입량을 큰 폭으로 줄이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 국영 석유 기업들은 선물이 아닌 현물시장에서 값이 내려간 중동산 원유를 대거 사들이고 있습니다. 값이 쌀 때 비축을 해두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특히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G)의 자회사인 중국석유가 올해 들어 수입량을 크게 늘렸다고 합니다. 두바이산 원유 현물시장의 8월 거래 건수의 90%를 중국석유가 차지했다고 하네요. 


▲ oil production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의 석유 수입량이 고도성장을 거듭해온 지금까지처럼 계속 이어질 수는 없겠죠.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00~2014년 세계 석유 수요 증가분의 40%가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고속성장기가 끝나가면서 중국의 왕성하던 에너지 식욕도 둔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석유 수요 증가폭은 올해 전년 대비 3.6% 늘어나는 데 그쳤고, 내년에는 3.2%로 낮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사우디는 여전히 유가 하락에 따라 생산량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인 듯합니다. 사우디 석유부는 지난 24일 “석유값이 더 떨어진들 OPEC은 감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그 대신에 긴축하기는 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사우디 재무장관은 9월 6일 미국 CNBC 아랍어 채널과 인터뷰에서 “유가가 떨어진 만큼 정부 지출을 줄이고 일부 개발사업을 연기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직은 사우디의 외화보유액이 6,000억 달러로 여유 있는 편이지만 자칫 1980년대의 저유가 때처럼(1979년 이란 혁명의 여파로 1980년대 초반에 잠시 오일쇼크가 왔으나 그 뒤에는 2003년 이라크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줄곧 저유가였습니다) 재정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작지 않습니다. 


(실은 산유국 간의 경쟁도 유가를 끌어내린 요소였습니다. 사우디, 나이지리아, 알제리 등이 2000년대 이후 아시아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과열 경쟁을 해온 측면도 있다는 겁니다. 거기에 세계적인 저성장이 겹쳤고, 이제 중국 쇼크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돈 급한 이란 "어떤 값에라도 우린 증산" 


사우디가 결국 저유가 압력에 밀려서 OPEC이 감산을 논의하더라도 ‘이란 변수’라는 중요한 요인이 있습니다. 돈이 급한 이란은 OPEC 회원국이긴 하지만 산유 쿼터를 따질 처지가 아닙니다.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어떤 가격에라도 우리는 산유량을 늘려야 하며, 다른 대안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핵 합의에 따라 이르면 올해 말 이란산 석유가 세계에 풀릴 수도 있을 것으로 외신들은 보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OPEC이 올해 말까지 유가 추이를 지켜보고 이란 변수를 평가한 뒤 내년쯤 감산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OPEC이 산유량을 줄여도 기름값이 크게 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비OPEC 산유국들의 시장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 oil market share

 

북해유전이 개발될 때 OPEC은 시장에 미칠 효과를 평가절하했으나 1980~90년대 결국 저유가 시대를 맞았습니다. 유가는 2000년대 이라크전이 일어나고 신흥국 에너지 수요가 커진 뒤에야 다시 올라갔습니다. 저유가 때 생산을 멈췄던 비OPEC 산유국들은 기름값이 오른 지난 10여 년 새 생산량을 엄청나게 늘렸습니다. 


석유전문가 존 켐프는 8월 25일 로이터통신 기고에서 “사우디 등은 저유가 때문에 비OPEC 국가들의 산유량이 줄고 시장이 내년쯤 균형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앞날을 확신하기는 힘들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는 원유 감산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요. 9월 7일 파이낸셜타임스의 행사에 나타난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최고경영자(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기도 합니다)는 러시아가 OPEC에 합류하면 어떻겠느냐는 OPEC의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OPEC의 황금시대는 지났다”라는 세친의 말이, 지금의 석유 시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스네프트의 경우 지분 20%를 영국 BP가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유가의 영향은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베네수엘라, 이란, 나이지리아, 브라질, 러시아는 경제난과 함께 정치적 불안정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걸프 산유국들 보다는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고유가의 혜택을 복지와 맞바꾸어온 나라는 생각보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