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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문 무덤 ‘비밀의 방’ 미스터리 풀릴까

딸기21 2015. 9. 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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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4일, 영국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집트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에서 투탕카문(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해 세계를 놀라게 했지요. 소년왕의 죽음을 둘러싼 숱한 수수께끼와 ‘신화’도 세계에 퍼졌습니다. 무덤을 발굴한 이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는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으나, 투탕카문의 무덤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지금도 끊이지 않습니다. 오래 전 이집트를 여행갔을 때 저는 참 무식하고 후회스럽게도 게으른 가이드의 꾐에 빠져 '왕들의 계곡' 씩이나 가놓고도 투탕카문 무덤 대신 다른 무덤들만 들어가봤다는 엉엉엉

 

‘투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파라오의 황금가면과 무덤은 이집트에 지금까지 막대한 외화를 벌어주는 ‘효자’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집트가 다시 투탕카문 미스터리로 시끌시끌합니다. 발단은 지난 8월 영국 출신으로 미국 애리조나대학 교수로 있는 고고학자 니컬러스 리브스가 “투탕카문 무덤 안에 네페르티티의 묘가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 것이었습니다. 


기원전 14세기 18왕조의 왕 아케나톤의 왕비인 네페르티티는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네페르티티라는 이름 자체가 ‘미녀가 온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왜 클레오파트라가 아니냐고요? 클레오파트라는 굳이 굳이 구분을 하자면 이집트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의 부하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에게서 시작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여왕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계인 거죠. 그리고 사실 뭐 기원전 1세기 정도는 이집트에선 고대 축에도 못 끼는;;)


네페르티티는 다신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아톤 신 유일신앙을 주장하며 남편과 함께 ‘종교개혁’을 단행한 주역이기도 했습니다(원래 아문호테프 3세였던 사람이 뒤에 아톤신 섬기면서 이름도 아케나톤으로 바뀌었음). 깎아놓은 듯한 미녀의 모습을 한 네페르티티의 흉상이 현재 독일 베를린의 노이에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지요. 


독일 베를린의 노이에스 박물관에 소장된 네페르티티의 흉상. AFP자료사진


네페르티티는 기원전 1370년경 태어나 40년 정도 살다가 숨진 것으로 추정되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네페르티티와 투탕카문의 관계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네페르티티는 15살에 결혼해 여섯 딸과 외아들을 뒀다고 합니다. 투탕카문은 아케나톤의 직후 혹은 그 다음의 후계자였으나, 선대 왕의 종교개혁을 뒤집어 아문을 최고신으로 섬기는 다신교 체제로 복귀시켰습니다. 


(암튼 룩소르에서 보니, 그 시절에도 정권 뒤집히면 옛 정권 흔적들 지우기 일쑤여서... 아케나톤 사후에 그의 얼굴 벽화 다 지워버리고, 아톤 흔적도 많이 없앴다고 하더군요. 지우고 없앤 흔적들이 지금은 유적으로 남아 있는 아이러니...)


투탕카문은 ‘살아 있는 아문신’을 뜻합니다. 역시 아케나톤 시절엔 잠시 '투탕카톤'으로 바뀌었다가 나중에 투탕카문으로 복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 파라오는 질병에 시달리다가 18~19세에 죽고 말았고... 투탕카문이 아케나톤의 사위였다는 설도 있고, 양아들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2013년에는 DNA 추적 결과 투탕카문이 네페르티티의 친아들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리브스는 지난해 스페인 전문 촬영업체 팍툼 아르테가 이집트 정부의 의뢰를 받아 투탕카문 묘실(墓室)에서 촬영한 디지털스캔 사진을 보고 비밀의 방들을 찾아냈다고 주장합니다. 당초 이 업체가 스캔을 한 이유는 무덤 옆에 묘실의 모사품을 설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을 판독해보니 묘실 북쪽 벽과 서쪽 벽에 숨겨진 방 2개의 흔적이 나타났으며, 그 안에 네페르티티의 무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투탕카문의 무덤이 다른 파라오들 것에 비해 유독 작은 이유도,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이 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뒤를 이었습니다. 


영국 출신의 고고학자 니컬러스 리브스(왼쪽 두번째)가 이집트 문화유산부의 맘두 엘다마티 장관(왼쪽 세번째) 등과 함께 지난 28일 룩소르 ‘왕가의 계곡’에 있는 투탕카문 무덤의 묘실을 살펴보고 있다.룩소르/EPA연합뉴스

그러나 이집트 최고유물위원장을 지낸 학계 권위자 자히 하와스는 18왕조 시기에 한 무덤에 두 묘실을 만든 경우는 흔치 않으며, 아문 신을 부정했던 네페르티티가 사후에 왕들의 계곡에 묻혔을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합니다. 


(자히 하와스... 황금가면 등등 이집트의 엄청난 유물들이 외국으로 순회전시를 나가면 돈을 쓸어모으는데, 그걸 결정하는 게 하와스였으니 그땐 위세가 대단했지요. 아랍의 봄 혁명이 일어나고 물러났습니다만.)

암튼 스캔사진만을 근거로 인류의 유산을 파손할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하워드 카터의 후계자를 꿈꾸는 한 고고학자의 영웅심리가 만들어낸 가설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리브스는 이집트 언론 알아흐람 인터뷰에서 “네페르티티의 또 다른 이름인 '스멘크카레'라는 글자가 당초 투탕카문 묘실 북쪽 벽에 씌여있었는데 뒤에 투탕카문이 묻히면서 덧칠된 것으로 보인다”“두 개의 묘실이 있는 무덤은 드물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런데 아케나톤의 후계자가 스멘크카레라는 젊은 왕이었다는 기록도 있어요. 워낙 오래된 ^^;; 일이다 보니 학자들 사이에서도 설이 분분하네요. 증거가 있다가 뒤집히기도 하고...)

 

결국 이집트 정부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지난 22일 문화유산부는 레이더 탐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하투시레이더(GPR) 탐사법을 활용하면 레이더파의 반사를 통해 묘실 벽을 부수지 않고도 벽 뒤편 땅속의 구조와 재질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뇌 CT촬영을 하듯 단면도의 층을 쌓아 내부를 파악하는 것이죠. 


이집트 중부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에 있는 투탕카문의 무덤 앞에서 지난 28일 한 관광객이 걸어가고 있다. 룩소르/AFP연합뉴스


맘두 엘다마티 문화유산부 장관은 28일 리브스와 함께 투탕카문 묘실을 방문한 뒤 “북쪽과 서쪽 벽 뒤에 긁힌 흔적과 특이한 표식이 있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알아흐람은 1922년 카터가 무덤을 발굴했을 때 묘실 정문에도 같은 흔적과 표식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정부는 카터의 발굴을 기념, 오는 11월 4일에 레이더 탐사 결과를 공식 발표할 계획입니다. 


(또 샛길로 가자면... 작년 봄에 알아흐람 신문사를 방문했는데, 진짜진짜 정부의 나팔수... ㅎㅎ 암튼 알아흐람은 피라미드를 뜻한다고 합니다)


비밀의 방이 확인된다고 해도, 곧바로 그것들이 네페르티티의 무덤인지 아닌지 알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엄청 관심이 쏠리겠지요. 만일 네페르티티의 무덤일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다면? 투탕카문의 무덤은 다시 한번 파헤쳐질 것인가~~ 


무덤에 보관돼 있는 파라오의 황금관 얼굴 부분. AFP연합뉴스


투탕카문의 미라는 여전히 무덤에 안치돼 있습니다. 더 좋은 상태에서 보존하기 위해 카이로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으나 지난 8월 당국은 미라를 섣불리 움직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묘실 옆방으로 옮기고 미국 게티 재단의 후원 하에 보존상태를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그 유명한 황금가면은 카이로 박물관에 있는데 지난해 8월 직원들이 파손된 부분을 공업용 접착제로 붙인 사실이 들통났지요. 문화유산부는 지난달 “독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장기간에 걸쳐 원래대로 복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집트가 유적, 유물 관리 하나는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밥줄이기도 하고요. 혁명 일어나고 쿠데타 일어나고 정정이 뒤숭숭하니 영 뭐가 제대로 안 굴러가나봐요 ㅠㅠ)